트럼프 1기 관세전쟁땐 코스피 9개월만에 24% 추락

외국인 코리아 엑소더스 9.2조 순매도
1기 1년동안 코스피 16% 하락 충격파
관세전쟁, 대외 의존 한국기업 악영향

2기 관세 압박에 코스피 한달 전 회귀
금리인하 제동에 환율 부담 투심 취약
韓 직접 겨냥 우려 반도체·鐵·車 긴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발(發) 글로벌 ‘관세 전쟁’이 결국 현실화하면서 대외 경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의 주가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과거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벌어졌던 관세 전쟁 때 2600포인트를 넘어섰던 코스피 지수가 약 9개월 후 2000선이 무너졌다. 이에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국내 증시에 대한 하방 리스크가 클 것이란 예측에 힘이 실린다.

▶트럼프發 관세 위협에 1월 코스피 상승분 삭제=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코스피 지수는 전장 대비 2.52% 내린 2453.95에 마감했다. 지난달 3일 종가 2441.92에 근접해 사실상 한 달 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코스피를 비롯해 아시아 증시를 얼어붙게 만들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캐나다·멕시코에 대한 관세 부과는 4일(현지시간) 시행 직전 정상 간 통화로 한 달 유예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의 통화 역시 예고된 상황이지만, 합의가 불투명한 상황인 만큼 관세 전쟁 지속 리스크도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전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종가는 전 거래일보다 14.5원 상승한 1467.2원을 기록했다. 주간 거래 종가 기준으로 지난달 13일(1470.8원) 이후 3주 만에 최고치다. 대(對) 멕시코 관세 유예 소식이 전해진 오전 2시 원/달러 환율은 전장 대비 9.30원 상승한 146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 데이마켓 종가와 대비해선 5.20원 낮아지며 관세 전쟁 압박이 완화된 모습이지만, 여전히 1460원대 아래론 내려오지 않은 모양새다.

대내외적인 경제·외교 리스크가 커진 데다, 환율까지 요동치면서 코스피 시장에서 ‘큰손’으로 통하는 외국인, 기관 투자자는 전날 각각 8707억원, 3729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2기 행정부 관세 정책이 온건할 것이란 예상이 어긋나자 금융시장에 변동성이 확대됐다”고 짚었다.

▶트럼프 1기때 9개월간 ‘코리아 엑소더스’=지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발생했던 무역 전쟁에 따른 코스피 지수 흐름을 돌이켜본다면 현재 상황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우려 섞인 시선도 있다.

관세 등을 통한 무역 전쟁이 본격화됐던 2018년 1월 29일 장중 2607.10까지 올랐던 코스피 지수는 2018년 10월 29일 종가 기준으로 1996.05까지 내려앉았다. 고점 대비 저점까지 주가가 23.83%나 빠졌던 셈이다. 1년이 지난 2019년 1월 29일 코스피 지수는 종가 기준 2183.36으로 낙폭을 15.97%로 줄였지만, 여전히 두 자릿수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2018년 1월 29일부터 9개월간 외국인 투자자는 9조2137억원 규모의 코스피 주식을 순매도했고, 기관 투자자도 4조4193억원어치 주식을 내다 팔며 지수에 하락 압력을 가했다. 원/달러 환율이 6.80%(1069.95→1142.74원) 오른 것도 국내 증시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매력도를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첫 표적이 되진 않았지만,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역대 최대 규모인 556억9000만달러(약 81조원)로 중국, 멕시코, 베트남, 독일, 아일랜드, 대만, 일본에 이어 8위에 올랐던 만큼 트럼프 2기 관세 폭탄을 피하지 못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관세 부과로 기업들의 피해가 본격화하면서 트럼프 1기 당시 발생했던 주가 급락세가 재발할 우려가 상당하단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관세 전쟁 발 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으로 인해 추가적인 금리 인하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을 비롯해 1500원 선이 머지않은 원/달러 환율 등은 트럼프 1기 무역 전쟁 시기보다 현재 주식 시장에 대한 투심이 더 취약할 수 있는 요인”이라며 “관세 충격에 코스피 지수 변동성이 과거보다 더 클 가능성도 있다”고 꼬집었다.

▶韓 직접 겨냥 관세 위협 사정권…반도체·鐵·車 긴장=단기적으로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CA) 혜택을 통해 미국 시장을 공략하려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생산 거점을 확대해 온 국내 기업들의 주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유예 조치로 한숨 돌린 형편이다.

관세 부과가 임박했던 전날 국내 증시에선 관련주의 하락세가 선명했다. 낮은 인건비가 장점인 멕시코에서 TV 등 가전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 LG전자의 주가는 전날 각각 2.67%, 7.13% 하락했다. 완성차 및 부품 공장을 운영하는 기아(-5.78%), 현대모비스(-2.47%), HL만도(-7.42%) 주가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캐나다에서 스텔란티스와 합작 공장을 설립해 배터리 모듈을 양산 중인 LG에너지솔루션(-4.40%), 제너럴모터스(GM)와 배터리 양극재 합작 공장을 건설 중인 포스코퓨처엠(-9.66%)의 낙폭도 두드러졌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당장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 관세 리스크가 한 달 뒤로 미뤄진 것일 뿐”이라며 “주어진 한달 간 기업들의 가장 효과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투자자들 역시 리스크에 대비한 투자 전략을 재정비할 여유가 생긴 것”이라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조만간 추가 조치로 구체화할 것으로 보이는 한국에 대한 관세 부과가 주가엔 더 직접적인 타격을 입힐 것이란 전망도 한다. 집중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이는 섹터는 반도체, 철강, 자동차가 대표적이다.

▶“전면전 대신 ‘관세→협상’ 시나리오 가능성 높아” 희망적 전망도=한편으로는 트럼프 1기 시절과 같은 관세 전쟁이 전면전으로 비화하진 않을 것이란 희망 섞인 전망도 국내 증권가에선 나온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번 3개국에 대한 관세 부과는 지난해 11월 대선 이후 여러 차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사안으로 증시에서도 해당 수위의 관세 우려를 선반영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미국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높고 법적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지적도 있는 만큼 무역분쟁 전면화라는 최악 시나리오보다는 일부 관세 부과 후 협상의 시나리오에 높은 확률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도 “이번 관세 부과의 근거가 된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의회에서 취소할 수 있다”며 “주초 의회의 행보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골드만삭스 등 일부 투자회사들이 전망하듯이 이번 조치가 단기간에 끝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 연구원은 또 “미국의 경우 높은 밸류에이션을 고려하면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하지만 저평가된 한국 증시는 추가적 하락이 진행될 경우 반등 여력이 충분하다”며 “올해 기업 영업이익이 둔화 국면임을 고려할 때 반등이 제한될 수도 있지만 단기적 추가 하락보다는 반등에 무게를 두고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동윤·신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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