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EU에 10% 관세 검토
EU 정상들, 한목소리로 우려 표명
미 LNG 가스 수입, 방위비 증액 등 옵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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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상반기 순회의장국인 폴란드의 도날트 투스크 총리(왼쪽), 안토니오 코스타 유럽 정상회의 의장(가운데), 우르슐라 폰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비공식 EU 정상회의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로이터] |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연합(EU)산 상품에 10%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EU 정상들이 한목소리로 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3일(현지시간) 다수의 소식통을 인용, 트럼프 미 행정부가 EU에 10%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소식통은 “아직 폭넓은 합의는 없지만, 일부는 EU에 10% 관세를 매기기를 원한다”며 “모든 EU 수입품에 부과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EU산 철강 제품에 25%,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EU는 위스키, 오토바이, 청바지 등 미국산 수입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며 맞대응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 당국자들이 지난해 여름부터 트럼프발 무역 전쟁에 대비한 비상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면서, 협상이 실패해 트럼프 행정부가 EU에 대한 관세를 밀어붙인다면 EU가 50%의 보복 관세로 대응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이 계획안에 따르면 EU는 액화천연가스(LNG) 등 더 많은 미국 상품을 수입해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는 협상을 하는 것이 우선이다.
일부 국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으로 방위비 지출을 요구하는 점을 수용해 방위비 증액을 약속하는 방안도 고려한다.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이런 노력이 모두 무위에 그칠 경우 50% 이상 관세를 부과할 미국산 수입품의 목록을 작성하는 데 수개월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이러한 보복 조치의 세부 사항은 비밀에 부쳐왔다고 FT는 전했다.
EU 정상들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비공식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관세 부과 위협에 대해 일제히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EU 상반기 순회의장국인 폴란드의 도날트 투스크 총리는 정상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완전히 불필요하고 바보 같은 관세전쟁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스크 총리는 EU가 가장 가까운 동맹인 미국에 의해 ‘시험’을 받는 동시에 러시아의 위협과 중국의 확장에 대처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다면 이는 “잔인한 역설”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무역전쟁에는 승자가 없다”며 “미국이 (우리를 상대로) 무역전쟁에 나서면 한쪽에서 이를 보고 미소 지을 나라는 중국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미국이 필요하고, 미국도 우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EU가 자체 관세로 대응할 수는 있겠으나 협력이 더 중요하다”며 “무역에 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더 낫다”고 강조했다.
페테리 오르포 핀란드 총리도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해야 한다”며 “나는 전쟁이 아닌 협상을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관세폭탄이 현실화하면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잇따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만약 우리가 무역 분야에서 공격당한다면, 유럽은 진정한 강대국으로서 스스로 일어나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유럽에 경종을 울린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EU는 더 단합하게 됐다”고 말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동맹끼리 다투는 것을 결코 지지하지 않지만, 만약 미국이 강력한 관세를 유럽에 부과한다면 우리는 공동의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뤽 프리덴 룩셈부르크 총리는 “관세는 언제나 나쁘다고 생각한다. 무역에 나쁘고, 미국에 나쁘고, 관세를 부과받게 될 나라에도 나쁘다”면서 “똑같은 행위로 대응하는 것이 관세에 대한 답”이라고 주장했다.
유럽 각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프랑수아 빌르루아 드갈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이날 라디오 프랑스 앵포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관세 부과 결정은 경제 불확실성을 증가시킬 것”이라며 특히 자동차 부문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드갈로 총재는 이어 가능한 보복 조치에 대해 그러한 대응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핵심은 우리 경제를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를로스 쿠에르포 스페인 경제장관은 현지 라디오 RNE와 인터뷰에서 EU의 단결을 촉구하며 역내 기업을 보호해야 하며, 다른 나라의 기업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 위치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EU에 대한 관세를 ‘틀림없이’ 부과할 것이라고 예고한 데 이어 전날 미국의 대EU 교역액이 “3000억 달러 이상 적자”라며 대책이 필요하다고 거듭 주장했다.
다만 그의 주장처럼 ‘3000억 달러 적자’를 뒷받침할 증거는 없으며, EU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대EU 상품 무역적자는 1558억 유로(약 234조원)였다고 폴리티코 유럽판은 짚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트럼프 미 대통령이 EU에 관세를 부과하는 건 미국-EU 간 상품 교역 적자가 1566억 유로(약 236조원)에 달하기 때문이라면서 2023년 기준으로 작성된 유로스탯 통계를 인용했다.
이에 따르면 서비스 교역에서는 미국이 EU에 1086억 유로(약 163조원)의 흑자를 냈지만, 상품 교역에서는 1566억 유로 적자였다.
또 미국은 영국을 상대로 상품 교역에서는 25억 파운드(약 4조5000억원) 적자, 서비스 교역에서는 689억 파운드(약 124조원) 적자를 내고 있었다.
신문은 미국은 2023년 기준 수입액이 3조 달러(약 4300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수입국이며, 상품 교역 적자 규모가 1조 달러(약 1450조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단일 국가 중 상품 교역에서 최대 적자를 보고 있는 국가는 중국으로 적자 규모가 2790억 달러(약 406조원)에 달하며, 중국 다음으로 적자 규모가 큰 상대는 EU(2080억 달러: 약 303조원)라고 전했다.
신문은 미국이 EU에 관세를 부과하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유럽 국가로는 독일과 아일랜드를 지목했다.
독일은 미국에 1580억 유로(약 238조원) 수출하고, 720억 유로(약 108조원) 수입해 EU 국가들 중 가장 큰 대미 교역국이고, 아일랜드는 미국을 상대로 510억 유로(약 76조원) 수출, 220억 유로(약 33조원) 수입하는 가운데 독일 등 다른 나라의 대미 교역 규모가 전체 교역액의 10%대인 반면, 아일랜드는 25%로 매우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EU 집행위는 전날 낸 입장에서 “부당하거나 자의적인 관세를 부과하는 모든 무역 파트너국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