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회 승부수 필요…능동적 조직으로 개혁
새로운 가치·후원사 권한 늘려 500억 유치
지방체육회 자립·학교체육 부활 현안 해결
문체부와 관계개선·“일 잘하는 회장” 평가 원해
![]() |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당선인이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RSM스포츠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조범자 기자] “기업인들에게 ‘스포츠 후원으로 사회공헌 하셔야 합니다’ 하면 과연 누가 할까요? 과거엔 가능했던 얘기지만 지금은 아니죠. 기업 입장에선 차라리 자체 재단을 통해 후원하는 게 훨씬 속 편할 겁니다. 저는 새로운 방향으로 접근할 계획입니다. 임기 동안 최소 500억원은 유치해야죠.”
유승민(43) 대한체육회장 당선인은 거침이 없었다. 겉으로는 “많은 기대에 부담이 되기도 한다”고 했지만, 인터뷰 내내 ‘변화’ ‘승부수’ ‘공격’ 등의 단어를 자주 사용하며 대한민국 체육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채비를 마친 듯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단식 금메달리스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대한탁구협회장에 이어 이젠 대한체육회장까지. 보통 사람이라면 이 중 하나도 이루기 어려운 성과를 그는 짧은 시간에 모두 성취해 냈다. 그것도 대다수가 패배를 예상한 승부에서 거둔 기적 같은 승리였다.
최근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역대 최연소 체육회장에 오른 유 당선인을 헤럴드경제가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RSM스포츠 사무실에서 만났다. 오는 28일 정식 취임하는 유 당선인은 “중요한 경기에서 안정적으로만 가면 못 이긴다. 아테네 올림픽 결승 때도 99% 공격으로 갔다”며 “이제껏 그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승부수를 던질 때는 무리해서라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대한민국 체육은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라고 힘주어 말했다.
![]() |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당선인이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RSM스포츠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이번 선거에서 승리를 예상한 이들이 많지 않았다. 올림픽 금메달, IOC 선수위원 당선 때와 비슷한 양상인데, 기적의 아이콘으로 불러야 하나.
▶‘부지런함의 아이콘’으로 불러 달라. 이런 도전이나 기회도 사실 부지런하지 않으면 놓친다. 이번에도 나이가 어리니 다음 선거에 나가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혼자서만 고민했다면 선뜻 결정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부지런히 원로 그룹과 스승님들을 찾아다니면서 조언을 구한 끝에 출마를 결심했다. 부지런해야 방향성을 찾고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걸어왔던 삶이 나를 게으르게 두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지난해 파리 올림픽 이후 체육계의 부조리한 관행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사회적 지탄을 받았는데, 출마 결심에 영향을 미쳤나.
▶솔직히 그렇다. 지난해 5~6월쯤 체육회장 선거에 대해 생각은 했었지만 깊이 고민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파리 올림픽을 계기로 이제 뭔가 바뀔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당선되지 못하더라도 나의 도전이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실제로 선거 전후 학교 체육교사 등 우리가 주목하지 않은 현장 체육인들의 응원 문자가 많이 왔다. 여전히 현장의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힘든 문화가 있다며, 자신들의 의견이 묻히지 않도록 체육계 문화를 바꾸고 정책에 잘 반영해 달라는 메시지였다.
![]() |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당선인이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RSM스포츠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탁구 라켓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젊은 회장의 당선으로 기대가 크다. 2025년 한국 체육계가 원하는 리더십은 어떤 모습일까.
▶변화에 두려워하지 않는 리더십이다. 여전히 체육계의 많은 분들이 변화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시도해 보지 않고 ‘50’의 성과를 내느냐, 시도를 해보고 ‘0’이나 ‘100’ 둘 중 하나를 얻겠느냐 하는 문제다. 올림픽 같은 중요한 승부에서도 안정적으로만 가면 이길 수 없다. 체육회 예산 1200억원이 날아간 지금은 대한민국 체육이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다.
-아테네 올림픽 결승에서 6전6패의 중국 왕하오를 만났을 때 승부수는 뭐였나.
▶그때는 99% 공격이었다. 무조건 공격이었고 수비는 없었다. 내가 잘하는 기술을 무리해서 쓰지 않고서는 상대를 이길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려운 기술은 상대도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승부수를 던질 때는 무리해서라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 스폰서십 유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겠다고 약속했다. 국내외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후원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다. 어떤 매력을 보여줘야 할까.
▶스포츠 후원을 통한 기업이미지 제고, 사회공헌 효과를 노리는 시대는 지났다. 홍보 매체도 너무 많고, 우리나라 대기업 정도면 세계가 다 안다. 기업 입장에선 굳이 큰돈 쓸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나는 한국 스포츠에 ‘가치’를 얹어 보겠다. IOC 최상위 후원자(TOP)인 삼성전자, 테니스 메이저대회 호주오픈을 후원하는 기아 등은 단순한 이벤트 이상의 ‘가치’를 보고 스폰서십을 오래 이어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체육이 갖고 있는 가치를 잘 녹이는 한편, 기업이 후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권한을 대폭 늘려주겠다. 그렇다면 기업들도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주시지 않을까 기대한다. 후원금으로 최소 500억원은 유치하고 싶다.
![]() |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당선인이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RSM스포츠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탁구라켓을 들고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한국 스포츠의 경기력이나 이를 즐기고 응원하는 국민은 선진국 수준인데 체육 행정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있다. 대한체육회 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능동적인 조직으로 변화해야 한다. IOC와 마찬가지로 체육회에도 31개 분과위원회가 있다. 하지만 IOC 분과위는 1년에 한 번 커미션 위크(commission week)를 열고 각 분과위에서 올라오는 모든 내용을 모니터링하고 집행하는 능동적 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체육회 31개 분과위 중 9개는 회의 한 번 열지 않았다. 조직을 좀 더 효율적이고 기동력 있게 만들고 싶다.
-당선 후 지방체육과 학교체육의 변화를 가장 빨리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어려운 공약이지만 민선 지방체육회 자립과 학교체육의 부활이 시급하다. 하지만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회와 정부가 도와주셔야 한다. 특히 법 개정을 통해 학생 선수들이 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줘야 한다. 학생 선수들은 수업 끝나고 오후 5~6시가 돼야 훈련을 시작할 수 있다. 학교 훈련 시간이 부족하니 사설 개인지도를 받으러 간다. 부모들에게도 큰 부담이다. 유망주들이 사라져가는 절체절명 위기다.
-두 아들이 축구선수로 뛰고 있어 현장의 목소리를 좀 더 가까이서 들을 수 있겠다.
▶첫째는 운동과 공부 둘 다 열심히 하는 반면, 둘째 아들은 운동만 하고 싶어 한다. 운동할 때 항상 웃는 얼굴이다. 아빠 입장에서 뭘 시켜야 맞는 걸까. 아이들이 전문적인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시간 투자를 자유롭게 해달라는 얘기다. 운동을 시키는 동료 학부모를 만나도 모두 같은 생각이다. 학교 체육이 살아야 실업, 프로까지 튼튼한 줄기가 이어진다.
-전임 회장 시절 대한체육회는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갈등을 빚어왔다. 새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해 보이는데.
▶이미 문체부와 관계 설정이 끝났다. 유인촌 장관님과 두 번의 만남을 통해 많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사실 문체부와 체육회는 싸우는 관계도, 또 수직적 관계도 아니다. 체육회는 문체부에서 받은 예산을 투명하게 집행해서 국민과 체육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면 되는 것이고, 문체부는 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예산을 면밀히 검토해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면 되는 것이다. 장미란 차관도 선수 출신이라 학교 체육과 지방 체육을 살려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체육계 현안을 푸는 데 에너지를 모아야 할 때다.
![]() |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당선인이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RSM스포츠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당선 후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유 당선인은 2019년 조 회장의 별세로 공석이 된 대한탁구협회 후임 회장에 올라 5년간 협회를 이끌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제게 애정을 아끼지 않으셨던 분이다. 제가 2010년 광주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선발전에서 탈락했을 때 조 회장님이 무척 좋아하셨다.(웃음) “너는 좀 떨어져 봐야 해. 이제 정신 차리겠다”고 하셨다. 사실 그때 내가 2004년 올림픽 금메달, 2008년 단체전 동메달을 따고 좀 느슨해졌던 걸 보신 것 같다. 조 회장님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덕분에 2012년 올림픽에서 단체전 은메달을 따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항상 견문을 넓히라고 격려해 주시고 IOC 선수위원 선거 때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신 감사한 분이다.
-‘대한체육회장 유승민’은 임기를 마친 뒤 어떤 평가를 받고 싶은가.
▶여기저기서 일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정도로 ‘일 잘하는 회장’으로 남고 싶다. 사실 워낙 기대를 많이 해 주셔서 부담이 크다. 마치 올림픽 개막 전 ‘금메달 0순위’라고 주목받으면 더 긴장되고 부담되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들었던 목소리, 8년간 IOC에서 쌓았던 경험을 한데 모아 열심히 해보겠다. 100%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60% 이상은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