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회 그래미, 비욘세와 위켄드…어필하라, 그러면 받아들일 것이다[서병기 연예톡톡]

비욘세[로이터연합뉴스]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지난 2일(현지시간) 열린 ‘제67회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는 엄숙하고 경건하면서 감동을 주었지만 재미도 있었다. 그 어느때보다 풍성하고 다채로운 공연 무대까지 선사했다.

이번 시상식은 최근 로스엔젤레스(LA) 현지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기금 마련과 소방관들의 헌신을 기리는 특별한 메시지를 담아 진행됐다. 최고상인 ‘올해의 앨범상’도 LA 소방구급대원들이 무대에 올라 시상했다.

이번 그래미 최고의 주인공은 11개 부문에서 최다 노미네이트된 비욘세였다. 비욘세는 정규 8집 앨범 ‘카우보이 카터’로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비욘세는 그래미에서 기록을 갈아치우는 아티스트다. 이전까지 32차례나 그래미를 수상했지만 ‘올해의 앨범’상만은 받지 못했다. 비욘세는 이밖에도 흑인 아티스트로는 이례적으로 ‘컨트리앨범’상과 ‘컨트리듀오·그룹 퍼포먼스’상까지 받아 올해 그래미 3관왕을 차지하면서 통산 그래미 35회 수상이라는 기록도 수립했다.

그녀의 남편인 제이지가 지난해 그래미의 힙합공로상인 ‘닥터 드레 글로벌 임팩트’ 상을 받고 무대에 올라 “비욘세는 많은 그래미상을 수상했지만 ‘올해의 앨범’ 하나만은 수상하지 못했다. 이건 말이 안된다. 상을 도둑맞은 거다”라고 실랄하게 말했다. 분위기가 썰렁해지자 “제가 긴장하면 솔직해지는 버릇이 있다”라고 했다. 그래서 남편의 일침이 효과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김영대 평론가도 “비욘세가 ‘레모네이드’때 수상했다면 더 큰 감동이었을 것이다. 이번 앨범이 비욘세 최고작품은 아닐 수도 있어 아쉬움도 남는다”고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아카데미 시상식과 관련한 봉준호 감독의 “자막의 1인치 장벽” “아카데미는 로컬”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아카데미가 ‘배타성’에 빠질 수 있었던 점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지만, 칭얼대는 게 아니라 레토릭과 맥락이 살아있는 화법을 구사한 것이다. 상을 달라고 떼를 쓰는 게 아니라 유머와 여유로 전해 흥행과 이슈에 목마른 아카데미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이렇게 문화적으로 어필하면 효과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캐나다 출신 가수 위켄드도 그래미로 돌아왔다. 4년전인 2021년 자신의 초히트곡인 ‘블라인드 라이츠’가 그래미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자 투명성이 부족하다며 그래미 불참을 선언했다. 하지만 올해는 ‘크라이 포 미’를 부르며 멋지게 그래미 무대를 장식했다.

켄드릭 라마[연합]


이 같은 그래미에 대한 비판과 지적을 그래미 주최측인 미국 레코드 예술과학아카데미(Recording Academy)는 겸허히 수용했다. 하비 메이슨 주니어 그래미 회장은 “그래미를 향한 비판은 괜찮다. 귀담아 들었다. 미래를 위해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아카데미에는 3천명 이상의 여성투표인단이 있고 젊어졌다. 아카데미에는 66%가 새 멤버로 들어왔다. 올해에는 1만3000여명이 후보를 정하고 투표했다”고 밝혔다.

올해 그래미에서 눈에 띈 또 한명의 스타는 서부힙합의 실력자이자 대세인 래퍼 켄드릭 라마였다. ‘힙합계의 마틴 루터 킹’으로도 불리는 켄드릭 라마는 ‘낫 라이크 어스’(Not Like Us)로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노래’ 등 5관왕으로 올해 그래미 최다관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켄드릭 라마는 실력에 비하면 그래미와의 인연은 그리 끈끈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중요부문을 의미하는 제너럴 필드(본상)에서 무려 2개를 ‘작은 거인’ 켄트릭 라마가 가져갔다는 사실은 큰 의미를 갖는다.

‘낫 라이크 어스’는 캐나나 출신 래퍼 드레이크와의 디스전의 산물이어서, 드레이크는 본의 아니게 의문의 1패를 당한 셈이다.

사브리나 카펜터[연합]


이날 ‘에소프레소’ 등 멋있는 무대를 보여준 ‘작은 요정’ 사브리나 카펜터는 정규 6집 ‘쇼트 앤 스위트’(Short n‘ Sweet)로 ’베스트 팝 보컬 앨범‘ 등 2관왕이 됐다.

또한 미국의 래퍼이자 싱어송라이터 도우치(Doechii)는 ‘앨리게이터 바이츠 네버 힐’로 베스트 랩 앨범상을 받았다. 도우치는 플로리다주 템파라는 고향에 대한 헌사를 표시했다. 노래 제목도 ‘악어한테 물린 곳은 낫지 않는다’는 의미이지 않는가. 그래서 도이치는 ‘스웜프 프린세스’(늪공주)로도 불린다. 베스트랩앨범 시상식은 작년에 수상한 카비디가 맡았다. 남성이 강세인 힙합신에서 2년 연속 여성이 베스트 랩 앨범상을 받았다는 의미가 있다.

베스트 라틴팝 앨범상은 샤키라가 루이스 폰시, 카니 가르시아 등과 경쟁해 수상했다. 샤키라에 대한 시상은 라틴팝 영화의 디바인 제니퍼 로페즈가 해 의미를 더했다. ‘최우수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상은 브루노 마스와 레이디 가가가 듀엣곡 ‘다이 위드 어 스마일’로 받았다.

‘브랫’으로 큰 반응을 일으킨 찰리 XCX는 ‘베스트 댄스/일렉트로닉 앨범’ 등 3관왕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게스’ 등을 메들리로 해 무대를 펼치기도 했다.

제너럴 필즈중 하나인 신인상은 채플 론이 받았다. 채플 론은 뒤늦게 대박이 났다. 도넛가게에서 알바를 하기도 했고 배우 일도 병행했다. 특이한 분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온 채플 론은 수상소감에서 초기 의료보험도 없이 음악작업을 하는 등 음악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가하면서 아티스트의 처우개선을 요구했다.

채플 론[연합]


올해로 3회째를 맞는 ‘닥터 드레 글로벌 임팩트 어워드’상은 앨리샤 키스에게 돌아갔다. 앨리샤 키스는 “이 상은 모든 여성 동료들을 위한 상이다.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세계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봐왔다. 외부세력이 공격해와도 우리는 뭉칠 것이다. 음악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리암 페인, 토비 키스 등 지난해 하늘의 별이 된 아티스트들을 추모하는 시간도 가졌다. 콜드플레이 보컬리스트 크리스 마틴은 피아노 연주와 함께 마지막 싱글곡 ‘올 마이 러브’를 부르며 그들을 추모했다.

지난해 11월 91세로 별세한 음악 프로듀서 퀸시 존스의 헌정무대도 있었다. 윌 스미스는 퀸시 존스가 자신을 유명하게 해줬다며 마이크를 잡고 ‘퀸시존스 트리뷰트’를 진행했다. 신시아 에리보, 스티비 원더가 각각 허비 핸콕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했다. 마지막 헌정공연은 R&B 가수 자넬 모네가 ‘돈 스탑 틸 유 겟 인어프’(Don’t stop ‘til you get Enough)’를 춤과 함께 부르며 멋있게 장식해주었다. 퀸시 존스는 마이클 잭슨의 앨범 ‘스릴러’ 등을 프로듀싱했다. 자넬 모네의 무대는 또 다른 마이클 잭슨을 보는 것 같았다. ‘팝 거장’ 퀸시 존스의 출발은 재즈였다는 점도 강조했다.

지난해 통산 4번째 ‘올해의 앨범’ 상을 수상했던 팝여제 테일러 스위프트는 올해는 상을 받지 못했지만 동료들을 축하해주면서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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