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섭 전국정수기 시민감시단 대표가 제시한 A사의 ‘정수기 성능검사 성적서’. [사진=전국정수기 시민감시단] |
[헤럴드경제(부산)=임순택 기자] 국내 모든 정수기가 ‘국가통합인증마크(KC인증마크)’ 인정 기준을 위반한 ‘불법 제품’이고, 환경부는 이를 묵인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파장이 예상된다.
이근섭 전국정수기 시민감시단 대표와 김성용 재단법인 방재문화진흥원 원장은 지난달 23일 이 같은 사실을 주장했다.
‘KC인증마크’는 안전·보건·환경·품질 등의 법정강제인증제도를 단일화한 국가인증통합마크로, 지난 2011년부터 도입돼 시행 중이다.
이근섭 대표는 정수기에 부착되는 KC인증마크가 어떠한 기준이나 제한 없이 지금까지 부착돼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대표는 “정수기 필터 교환주기는 염소, 색도, 탁도, 클로로포름(발암물질) 등 항목을 검사한 뒤 책정되고, 그 주기를 따라야만 KC인증마크를 부착할 수 있다”며 특히 “20여년간 2급 발암물질인 클로로포름이 신체에 축적되면 간이나 폐 등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의사협회의 보고서가 있다”고 알렸다.
이어 “KC인증마크 부착을 위한 정수기 필터 교환 주기의 품질검사기관은 ‘한국정수기공업협동조합(COWPIC)’이 지난 2004년부터 2020년까지 맡아 왔다”며 “조합은 정수기 제조사의 이익단체로, 이는 자체적으로 ‘셀프 품질검사’를 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품질검사기관은 ‘정수기의 기준·규격 및 검사기관 지정고시’ 제9조(2020년 4월 24일 개정)에 따라 한국물기술인증원이 맡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020년까지 정수기 품질검사를 맡은 조합이 품질검사 결과를 조작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 ‘정수기 성능검사 성적서’를 제시하면서 “‘유리잔류염소’의 제거율 기준이 90%가 될 때까지 물을 흘려야 필터 교체 주기를 판단할 수 있는데, 그 주기 내에서 100% 제거된다는 성적서 결과대로라면 정수기 제품 수년 5년이 끝날 때까지 필터를 교체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품질검사결과는 조작됐고, 엉터리로 품질검사를 시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어 이 대표는 “이같이 엉터리로 품질검사를 통과한 제품에 KC인증마크를 붙이게 되면 조합은 정수기업체로부터 장당 500원의 이익을 받는다”면서 “연간 정수기가 판매·렌탈되는 양은 약 250~270만 대인데, 이는 조합이 최소 12억5000여만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셈”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조합 관계자는 “정수기는 국가에서 정한 규정에 따라 안전성, 성능 인증 등 검사를 한다”며 “개별 필터나 부품마다 성능이나 안전 등에 대한 기준은 마련돼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현재 정수기 필터 교환 주기에 대한 실질적인 규정이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현행법인 ‘먹는물관리법 시행규칙’ 제2조의2에 따르면 정수기 관리방법으로 “필터는 해당 정수기의 ‘사용방법 설명서’에 따라 정기적으로 교환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즉 일관된 필터 교체 주기나 기준이 없이 정수기 회사마다 자체적으로 필터 주기를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설정된 필터 교체 주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때 이를 제재할 수 있는 근거 법령 등도 없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 2020년 4월까지는 조합이, 현재는 한국물기술인증원이 유효정수량 검사를 하고 있는데, 이는 필터 교체 주기에 상관관계는 있지만 주기를 설정하기 위한 검사는 아니다”며 “개별 상품의 특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업체가 적절한 교체 주기를 설정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정수기 품질검사를 신청하면 품질검사기관에 산정해 제출하는데, 기관은 필터 교환주기 확인도 하지 않은 채 회사에서 제시한 기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며 “정수기 회사가 임의로 정한 기간을 환경부가 묵인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는 “18년 전에 없어진 규정·질의 내용이 담긴 평가서가 정수기 품질심의위원회에서 사용된 적도 있다”며 “심지어 한 정수기업체는 클로로포름 기준치는 0.25인데, 클로로포름 기준치의 5분의 1 수준인 0.05로 산정해 측정했다”고 설명했다.
정수기 관련 문제에 대해 김성용 방재문화진흥원 원장은 “그야말로 한국판 ‘워터 게이트’ 사건”이라며 “대국민을 상대로 한 행정 사기극이자 범죄”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