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男, 온라인 커뮤니티서 분노 키워
정치·주식시장 패닉 주도…다음 타깃은 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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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일론 머스크 테슬라·X·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 [로이터]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 2025년 1월,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혐의로 구속되자, 이에 반발한 극성 지지자들이 분노를 터뜨렸다. 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방법원이 그들의 타깃이 됐다. 격앙된 이들은 서부지법을 습격해 판사를 찾았다. 창문을 산산이 부쉈고, 스크린도어를 깼고, 집무실을 침탈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쇠파이프를 손에 쥔 채 법정 안을 난폭하게 헤집던 이들의 절반 이상이 20~30대 남성이었다.
#. 2021년 1월, 비디오게임 소매회사인 게임스톱의 주가가 폭등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20~30대 남성이 주축인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주식 토론방인 ‘월스트리트베츠’ 회원들이 조직적으로 매수에 나섰기 때문이다. 거대 금융 기관으로 구성된 공매도 세력을 응징해야 한다는 이들의 거대한 분노가 동인이 됐다. 결국 주가 하락에 베팅했던 헤지펀드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일부는 파산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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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윤석열 대통령의 극성 지지자들의 폭력 사태가 벌어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의 현판이 파손돼 있다. [뉴시스] |
서로 다른 상징적인 두 사건,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같다. 최근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집단적 분노가 현실 세계에서 통제 불능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 미국 블룸버그의 뉴스 편집자인 저자는 이번에 국내 번역된 ‘분노세대’에서 기존 시스템에 대한 젊은 남성 세대의 반발이 오늘날 금융 시스템과 정치 질서를 뒤흔드는 기이한 현상에 주목한다.
저자는 여러 세대에 걸쳐 먹이사슬의 최상위를 차지했던 20~30대 젊은 남성들이 언제부터인가 젊은 여성들에게 뒤처지고 있다는 증거가 감지됐다고 분석했다. 학교에서는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려워졌고 취업 시장에서도 예전만큼 유리하지 않았다. 이런 변화는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숫자로도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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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스톱 주가 폭등 사태를 주도한 키스 질의 인터넷 방송 화면. [로이터] |
게다가 진보적 시민운동이 확산되고 정치적 올바름(PC주의)이 강조되면서 젊은 남성들의 사회적 입지도 상대적으로 줄었다. 과거에는 당연시 됐던 남성의 특권이 오늘날에는 사회적 비판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이에 이들은 불만이 쌓여갔다.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가 강화된 데 비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 주는 목소리는 없다고 느꼈다.
이렇다 보니 월스트리트베츠와 같은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는 현실에서 좌절한 젊은 남성들에게 만족스러운 피난처가 됐다. 익명의 가면 뒤에서 이들은 거리낌 없이 욕설을 퍼붓고 음담패설을 나눴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이곳에서 사회적으로 억눌린 분노는 점점 커져 갔다.
젊은 남성들의 감정을 가장 잘 대변한 인물은 바로 대표적인 기성세대인 도널드 트럼프였다. 그는 거침없는 공격적 언행과 반체제적인 태도로 이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단순한 소통 공간을 넘어 인종 차별과 여성 혐오가 만연한 집단 문화를 만들어냈다. 일론 머스크 역시 이들의 영웅이었다. 머스크는 ‘트롤링’(인터넷에서 공격적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도발하는 행위)을 무기로 젊은 남성들의 지지를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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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향한 다음 대상은 금융 시장. 이들은 자신을 소외시킨 폐쇄적이고 복잡한 기존 시스템을 뒤엎을 무언가를 찾았다. 그 답이 디지털 화폐였다. 그들에게 암호화폐는 기존 관습을 깡그리 무시할 수 있는 도전이자, 한순간에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처럼 보였다.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는 자연스럽게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소셜 미디어나 인터넷 방송 등과 얽히게 됐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들의 욕망은 걷잡을 수 없는 새로운 투기 열풍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특정한 목적 없이 온라인상의 유행에 따라 만들어지는 ‘밈(meme) 코인’ 시장의 시가총액이 최근 한 달 새 2배 이상 폭등했을 정도다.
“현재 분명한 사실은 새롭게 떠오른 이 기이한 금융 생태계를 구성하는 세대가 미국 역사상 과거의 그 어떤 세대와도 다르다는 것 뿐이다. 금융 생태계의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기에 월스트리트베츠 이야기보다 더 좋은 출발점은 없다.”
실제로 지난해 5월 게임스톱 주가 폭등의 주역이었던 월스트리트베츠의 ‘대장 개미’ 키스 질이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의 복귀 소식이 퍼지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게임스톱 주가는 하루 만에 136% 급등했다. 마치 4년 전 열기가 다시 살아난 듯했다. 이 모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분노세대/너새니얼 포퍼 지음·김지연 옮김/웅진지식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