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AI전쟁 속 사법리스크 발목 우려
법조계 “대법 가도 결과 뒤집기는 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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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재계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것에 우려를 보내고 있다. 사진은 이 회장이 3일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연합]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혐의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이제 관심은 검찰의 상고 여부에 쏠리고 있다.
재계 및 법조계, 학계에서는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해도 1·2심에서 나온 19개 혐의 전부 무죄 판단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이 회장으로선 지난 2020년 9월 기소된 이후 4년 5개월째 법정을 오가며 사법 리스크에 발이 묶였던 만큼 더 이상의 경영 공백을 막기 위해 검찰이 기계적인 상고는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공지능(AI) 산업을 둘러싸고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가 속도전으로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검찰의 상고로 사법 리스크가 연장될 경우 자칫 투자 적기를 놓쳐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또 다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실상 위법 시비가 해소된 상황에서 이 회장이 세계를 누빌 수 있도록 제약 요인을 말끔히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검찰은 서울고등법원의 항소심 선고 결과가 나온 지난 3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의한 그룹 지배권 승계 목적과 경위, 회계부정과 부정거래행위에 대한 증거판단, 법리판단에 대해 항소심 판결을 면밀히 분석해 상고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검찰의 상고 기한은 오는 10일까지다. 대검 예규에 따르면 1·2심 모두 무죄로 나온 사건에 대해 검찰이 상고를 제기하고자 하는 경우 상고심의위원회를 열어야 한다.
상고심의위원회는 법학교수와 변호사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검사는 상고심의위원회에서 제시한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야 하지만 강제력은 없다.
법조계에서는 1심과 2심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심리 결과 모두 무죄가 나온 만큼 상고심에서 기존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다. 1·2심이 사실관계를 다루는 사실심인 반면 3심은 법률 적용과 법리 해석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해서만 심리하는 법률심이다.
인천지검 초대 형사상고심의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백원기 대한법학교수회 회장은 “이 회장에게 적용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사실 심리는 끝난 것”이라며 “대법원으로 가면 법률 적용이 잘못됐는지 여부를 따지는 데 기존 하급심에서 나온 결과를 뒤집는 것은 힘들 것으로 본다. (검찰로서는) 실익이 없다”고 말했다.
백 회장은 이어 “상고심의위원회에 회부를 해도 이번 사건처럼 1·2심 모두 무죄가 나온 경우라면 ‘상고하지 말자’라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며 “실제 심의하면서 다뤘던 상고심 사건이 대법원에서 파기돼 환송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고 강조했다.
앞서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지난 2020년 6월 이 회장에 대해 수사중단 및 불기소를 권고했지만 검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같은 해 9월 이 회장을 재판에 넘겼다.
이후 3년 5개월 만인 지난해 2월 1심에서 모두 무죄가 나왔으나 검찰은 항소를 결정했다. 그리고 다시 1년 만에 2심에서도 재차 무죄를 선고하면서 검찰의 당시 기소를 두고 무리한 결정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총 4년 5개월에 걸쳐 진행된 1·2심 재판 기간 이 회장은 총 102회(1심 96회, 항소심 6회) 법정에 출석해야 했다. 매주 법원을 드나들면서 이 회장의 현장 경영행보도 제약을 받았다.
매년 명절 때마다 해외 사업장을 찾았던 이 회장은 올해는 2심 선고를 앞두고 설 연휴기간 국내에 머무르며 해외 현장경영을 쉬어가야 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AI를 둘러싸고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합종연횡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총수의 사법 리스크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는 것에 우려를 보내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직접 등판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등 빅테크 대표들과 주기적으로 만남을 가지며 AI 협력을 다지고 있는 반면 이 회장은 그동안 재판 준비와 법원 출석 등에 시간을 쏟아야 했다.
삼성전자가 AI 반도체 사업을 둘러싼 경쟁에서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총수의 적극적인 대외 행보가 여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검찰이 상고할 경우 미래 불확실성은 더욱 커져 기업 가치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사실심리 결과 문제 없는 것으로 나왔다면 이제는 사건을 종결해서 삼성이 AI 사업 등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열어주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4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이 회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샘 올트만 오픈AI CEO의 3자 회동에 주목했다.
홍 교수는 “총수가 법원을 드나드는 모습보다 이제는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모습을 부여줘야 한다”며 “그제 열린 3인의 만남이 좋은 예”라고 꼽았다.
이 회장은 항소심 무죄가 나온 바로 다음날 손정의 회장, 샘 올트만 CEO를 한꺼번에 삼성전자 서초사옥으로 불러 깜짝 회동을 가졌다. ‘한·마·일 AI 동맹’으로 주목받으면서 삼성전자가 미국이 추진하는 초대형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스타게이트’에 합류할지 주목을 받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스타게이트 참여가 그간의 위기론을 털어내고 반등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종합반도체회사(IDM)로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보유한 만큼 스타게이트 참여 시 반도체 기술 분야에서 주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이번 항소심에서 무죄가 나오면서 재계에서는 책임경영 차원에서 이 회장이 등기이사에 복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여전히 검찰의 상고 가능성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재판이 3심까지 이어질 경우 여전히 불확실성이 있는 만큼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검찰이 상고를 하면 등기이사 복귀도 미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회장에 대한 재판의 장기화 우려 속에 정치권에서도 검찰 상고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나온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일 페이스북을 통해 “법사위에서 두 차례 대법원 행정처장과 서울고등법원장에게 우리 경제를 위해 신속하고 공정한 사법부의 판결을 촉구했고 답변도 긍정적이었다”며 “이제 검찰도 신중한 판단으로 상고를 재고하길 바란다. 아니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이 회장의 무죄 선고는 침체된 우리에게 이재용, 올트먼, 손정의 ‘AI 3국 동맹’ ‘스타게이트’의 희망을 안겨준다”면서 “이 회장도 딥시크의 혁신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