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현 안돼도 중동 흔들기 충분 ‘충격요법’
외신 “뱀들 놀라게 하려 풀 때리는 전략”
급진정책 내부 반발, 외부로 시선 돌리기
전문가들 “국제법 위반에 전쟁범죄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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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한 뒤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다른 지역에 재정착시켜야 한다면서 “미국이 가자지구를 장악할 것(take over)”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5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팸 본디 법무장관 취임을 앞두고 연설하고 있는 모습 [AP]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자지구 점령·소유’ 구상을 놓고 국제사회가 일제히 비판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을 뒤흔드는 이같은 충격 발언을 한 속내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주요 외신들은 가자지구를 실제로 장악할 의도라기 보다 이번 발언에 따른 충격 요법으로 국면 전환용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또 관세와 이민정책, 정부 개혁 등 급진적인 정책에 따른 국내 반발을 외부로 돌리려는 의도도 담겨있다고 짚었다.
그러나 국제법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가자 구상’에 대해 “국제법에 위반되는 전쟁범죄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트럼프 취임 16일 만에 “탄핵안 발의”을 거론하며 가자지구 강제 이주는 “인종청소”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중동 흔들기’로 유리한 협상 유도…‘정부 개혁’ 여론 분산 해석도=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에도 전날 밝힌 자신의 가자지구 ‘장기 소유 및 개발’ 구상이 전방위적으로 환영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팸 본디 법무장관 취임과 관련해 언급하는 계기에 자신의 ‘가자 구상’에 대한 국제사회 반응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을 받자 “모두가 그것을 사랑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가자 구상’은 국제 사회의 거센 후폭풍에 직면했다. 논란이 된 트럼프의 ‘가자 구상’은 참모진의 도움 없이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날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의 소식통 4명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는 가자지구에 대한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한지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다”며 오직 “대통령도 머릿속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가자지구 구상이 일부 철회될 것이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의 ‘가자 구상’에 대해 중동 국가들로부터 유리한 협상을 이끌려는 ‘계략(ploy)’이라고 분석했다. 하마스의 영향력을 억제하는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두 국가 해법을 고집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WP는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지구 장악’ 발언이 현재 미국에서 정부 개혁을 감행하는데 뒤따르는 여론을 잠재우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고 짚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정부 부처인 교육부를 해체하는 행정명령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해외 개발 원조를 담당하는 국제개발처(USAID)도 대폭 축소할 계획이다.
크리스 머피 민주당 상원의원은 “우리는 가자지구를 점령하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언론은 며칠간 이문제에 집중할 것이고, 트럼프는 대중의 관심이 억만장자들이 정부를 장악하고 대중을 착취하는 실제 이야기에서 멀어지도록 하는 데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매체 예루살렘포스트는 ‘트럼프가 가자지구의 뱀들을 놀라게 하려고 중동에서 풀을 때리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가 순전히 발언한 것과 목표는 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는 말은 옛 중국의 병법서 삼십육계에 나오는 36가지 계책 중 타초경사(打草驚蛇)를 인용한 것으로, 미끼를 던지거나 도발함으로써 상대를 움직여 원하는 행동을 유도한다는 의미다.
매체는 “그의 급진적인 정책을 본 역내 일부 국가들이 가자지구 사안에 더 솔직하게 접근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지난 약 20년간 국제사회의 관여가 줄어든 사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가자지구 통치권을 장악하며 분쟁이 악화했는데, 이런 국면을 뒤집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진짜 의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벌써부터 “트럼프 탄핵”…민주 “인종청소” 등 거센 비판=미국내에서도 트럼프 ‘가자 구상’에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을 옹호했지만, 야당인 민주당은 “인종청소”라며 취임 한달도 채 안된 상황에서 탄핵 소추안을 발의할 것이라는 거센 비난이 일고 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가자지구 재건 및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임시 이주를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곳은 철거 현장 같으며 수돗물도 없다”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 주민들이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며 그는 대담한 새 계획을 통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가자지구에 미군을 투입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에는 “그것은 가자지구 지상에 군대를 투입한다는 것도, 미국의 세금을 쓰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민주당에서는 ‘탄핵소추안’까지 거론하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앨 그린 민주당 하원의원은 이날 하원 본회의에서 “인종청소는 반인륜적”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도 발의하겠다고 공언했다.
또한 하원 외교위 간사인 그레고리 믹스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그는 이 사황을) 전혀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라면서 “생각하지 않고 아무 말이나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러면서 공화당이 가자 지구 재건에 개입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합리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라고 주장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반발이 나오고 있다. 저스틴 아마쉬 전 공화당 하원의원은 “미국이 가자지구에서 무슬림과 기독교인을 강제로 추방하기 위해 군대를 배치한다면 또 다른 무모한 점령에 휘말릴 것”이라며 “뿐만 아니라 인종 청소 범죄 유죄를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도 국제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지구 구상이 1949년 제네바 협약, 1998년 로마 협약 등 전쟁범죄를 규정하는 대표적인 두 국제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제네바 협약은 전쟁 때 민간인과 군인을 어떻게 처우해야 하는지를 규율하는 가장 보편적인 ‘전쟁법’이다.
두 협약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가자지구 주민에 대해 언급한 임의적이고 영구적인 강제 이주를 범죄로 간주하고 있다.
사라 싱어 런던대 난민법 교수는 “군사적 필요성이나 생명 보호를 위해 긴요한 경우에만 민간인을 일시적으로 이주시킬 수 있는 단서가 있다”면서 “점령지 외부로 이주는 안 되며 가능한 최단 시간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영철·김빛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