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억 약속 47억만 썼다면…‘공약 이행 안했다’ 허위사실 아니다 [세상&]

“예산 이행 안 됐다” 지적…허위사실 공표 혐의
실제 80억 중 47억원만 투입
1·2심 무죄…“공약 전체 이행되지 않아”
대법, 무죄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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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선거를 앞두고 경쟁 후보가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공보물을 배포했더라도 허위 사실을 공표한 게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실제 공약을 전부 이행하지 않았다면 지적한 내용을 허위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엄상필)는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은 천창수 제주축협 조합장에게 이같이 판시했다.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한 원심(2심) 판결이 정당하다며 확정했다.

사건은 2023년 2월, 제주축협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발생했다. 당시 천 조합장은 유력한 경쟁 후보의 공약 이행 여부를 지적하는 내용의 선거공보를 배포했다. 공보물엔 ‘4년 전 조합장의 공약! 실현된 것이 무엇입니까?’, ‘공판장 현대사업? 불이행, ‘공약을 실천하지 않는 조합장’ 등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선거 결과, 천 조합장이 당선됐다. 하지만 경쟁 후보가 “천 조합장이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고 고소하면서 검찰 수사가 이어졌다. 검찰은 천 조합장을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공보물 내용은 허위”라며 “후보는 조합장 재직 당시 축산물 공판장에 대한 현대화 사업을 진행했다”며 “레일 교체, 탈모기 등을 신규 교체하는 등 사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1심과 2심의 판단은 무죄였다. 검찰 주장대로 공약을 일부 이행한 건 맞아도 공약을 전부 이행한 건 아니라고 보이므로 공보물 내용이 허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1심을 맡은 제주지법 형사2단독 배구민 판사는 지난해 7월, 이같이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공소사실과 같이 공약을 이행했다고 볼 여지가 있긴 하다”면서도 “공약의 핵심 내용은 80억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한 것이었으나 실제론 감액돼 47억원만이 투입됐다”고 밝혔다.

이어 “물론 어려운 사정에서 공약 이행을 위해 노력했으므로 공약을 이행했다고 주장할 순 있으나 최선의 노력을 했다는 사정만으로 공약의 이행(완성) 여부를 좌우한다고 볼 순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공보물 내용을 ‘허위 사실 공표’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검사가 항소했지만 2심의 판단도 같았다. 2심을 맡은 제주지법 1형사부(부장 오창훈)는 지난해 10월, “1심 판단은 정당하다”며 “더욱이 ‘공판장 현대화사업’이란 표현 자체가 광범위해 의견 표현에 가까우므로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라 단정할 수 없어 허위사실 공표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 역시 “원심(2심) 판결은 정당하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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