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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성동구 21%랩에서 교환한 정장 재킷과 바지. 김광우 기자. |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새 옷 안 사도 되겠는데”
브랜드 정장 재킷과 바지. 얼핏 봐도 10만원대는 넘어 보이는 이 옷들의 가격은 모두 ‘3000원’. 흔한 미끼 상품도 아니다. 해당 매장에서는 모든 옷이 같은 가격이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입지 않는 옷을 가져와야 한다. 원칙은 1:1 교환. 옷과 참가비만 있으면 최대 3벌까지 다른 사람이 맡긴 옷으로 바꿔갈 수 있다.
실제 판매 가치를 따지지도 않는다. 유명 브랜드 상품은 물론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옷도 건질 수 있다. 무료 수선 서비스는 덤이다.
이곳의 정체는 ‘21%랩’ . 지속 가능한 의류 소비를 추구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의류 재사용 문화를 도입해, 과도한 옷 생산·소비로 인한 환경 파괴를 막는 게 이 공간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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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서울 성동구 21%랩에 각종 의류가 전시돼 있다. 김광우 기자. |
비영리 스타트업 다시입다연구소는 지난 1월 8일 서울 성수동에 의생활 실험 공간 ‘21%랩(Lab)’을 열었다. 방문객들이 가져온 옷들로 채워진 체험 공간이다.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직접 의류를 교환·수선하며 재사용 문화 경험할 수 있다.
6일 오전 찾은 21%랩은 여느 옷 매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족히 봐도 수백개의 의류와 악세사리가 전시돼 있었다. 의류는 종류별로 정돈돼 있었으며, 탈의실도 두 곳이 마련돼 있었다. 여느 옷 매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에, 발길을 멈춘 행인들이 방문하는 일도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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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서울 성동구 21%랩에 각종 의류가 전시돼 있다. 김광우 기자. |
하지만 아무나 들어올 순 없다. 준비물이 있다. 바로 ‘교환’이 원칙이기 때문. 방문객들은 최대 3벌까지 본인의 옷을 가져올 수 있고, 여기에 참가비 3000원만 내면 매장 내의 어떤 상품으로든 교환 가능하다.
실제 판매 가격이 어떻든 상관없다. 실제 유명 브랜드 상품부터 저렴한 보세 옷까지 다양한 상품이 전시돼 있다. 하지만 ‘헌 옷’을 받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 줄 수 있을 정도로 하자가 없고, 깨끗하게 세탁된 옷만 취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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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서울 성동구 21%랩을 찾은 시민이 사연 태그를 작성하고 있다. 김광우 기자. |
‘남이 입던 옷’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려는 노력도 돋보인다. 특히 방문객들이 가져온 옷에 대한 소개 글을 직접 적도록 하는 게 눈에 띄었다. 언제 어떻게 구매했으며, 얼마나 썼는지, 왜 이제는 쓰지 않는지 등을 적어 구매자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이다.
다시입다연구소 관계자는 “이 옷이 얼마나 쓰였는지 등 옷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게 중고 의류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라며 “전 소유자가 직접 옷에 관해 설명한 태그를 부착하면, 구매자의 거부감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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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서울 성동구 21%랩에 전시된 의류. 옷에 사연 태그가 걸려 있다. 김광우 기자. |
실제 21%랩에 전시된 옷들에는 모두 ‘사연 태그’가 달려 있었다. “쇼핑몰 모델과 착용 모습이 너무 달라서”, “사이즈가 커서” 등 이유는 다양했다. “더 잘 어울리는 주인을 만나라” 등 옷에 전하는 덕담도 적혀 있었다. 아울러 3~4회 정도로 착용 횟수가 적은 옷들이 대부분이었다.
공간을 찾은 방문객들도 계속해서 들어왔다. 이날 21%랩을 찾아 2개의 의류를 교환한 김지연(29) 씨는 “예쁘다는 이유로 샀지만, 결국 몇 번 입지 않게 된 옷들이 적지 않았다”면서 “결국 버려질 옷을 가져왔는데, 새 것같은 옷들을 새로 얻을 수 있어 뜻깊었다”고 말했다.
다시입다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1월 약 3주간 행사를 진행한 결과 21%랩에는 1137명의 방문객이 모였다. 이들은 총 1700개가량의 옷을 가져왔으며, 그중 75%(1288개)가 다시 교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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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서울 성동구 21%랩 방문객이 직접 손상된 의류를 수선하고 있다. 김광우 기자. |
21%랩에서는 의류 교환과 함께 무료 수선 이벤트도 진행되고 있었다. 손상된 옷을 가져오면, 전문가와 함께 직접 옷을 수선하는 이벤트다. 이날 밑단이 찢어진 바지를 가져온 직장인 김모(29) 씨는 전문가의 도움으로 직접 재봉틀을 작동해 옷을 수선했다.
김 씨는 “평소 아껴 입던 바지가 찢어져 속상했는데, 마침 수선 이벤트가 있다는 소식에 옷을 가져왔다”면서 “전문가의 도움으로 재봉틀을 처음 써봤는데 생각보다 쉽고, 오히려 더 예쁘게 수선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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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서울 성동구 21%랩에서 수선한 바지의 전후 모습. 김광우 기자. |
이달 8일부터는 ‘수선 예술 워크숍’도 진행된다. ▷기초 바느질 ▷천연염색 ▷치앙마이 바느질 등 전문가들의 기술을 무료로 배울 수 있는 셈이다. 이밖에도 과도한 소비에 따른 환경 파괴 등을 주제로 한 영화 상영 등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한편, 다시입다연구소는 지난 2022년부터 21%랩 팝업 공간을 열어 왔다. 그간 방문객들은 21%랩을 통해 총 1만1316벌의 의류를 교환했다. 이를 통해 감축된 탄소 배출량만 약 43톤. 서울-부산 간 비행기로 445회 왕복할 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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