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주민 이주시키고 ‘휴양지 개발’ 구상
NYT “국방부 비롯 실무진 회의도 없어”
기자회견장에 있던 이스라엘 총리도 깜짝
전쟁 현안을 ‘부동산 개발’ 시각으로 접근해
논란 커지자 트럼프 “전혀 서두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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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로이터] |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자지구 소유 발언이 파장을 낳은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진의 도움 없이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가자지구 점령·소유’ 구상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전혀 서두르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익명의 소식통 4명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는 가자지구에 대한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한지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다며 오직 “대통령도 머릿속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다른 지역에 재정착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이 가자지구를 장악할 것”이라며 “미국이 가자지구를 소유하겠다”고 말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지게 했다. 가자지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으로 황폐해진 지역으로, 해당 주민들은 2023년 10월부터 시작된 전쟁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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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이시다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가운데 이에 앞서 진행된 취재진의 질문에 가자지구 구상과 관련해 “전혀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EPA] |
전쟁 분쟁 지역을 미국이 소유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이 나오기까지 국무부나 국방부 차원에서 회의가 열리거나, 별도 실무진 회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국방부는(가자지구에 미군을 투입하기 위해) 필요한 병력이나 비용 추정치, 심지어 작동 방식에 대한 개요조차 제시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을 듣고 백악관과 정부 고위 관계자들조차도 충격을 받았다고 NYT는 전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역시 기자회견에서 해당 발언을 처음 들었다.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던당일 “가자에 대한 구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기자회견에서 문제의 발언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사적인 자리에서 가자지구 소유에 대한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의 행정부 관계자는 NYT에 “지난주 가자지구에서 돌아온 중동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가 가자지구에 끔찍한 상황을 설명한 뒤로 트럼프의 구상은 더욱 가속화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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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서 트럼프 정책을 비판하는 시위가 열렸다. [AFP] |
해당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행정부는 진압에 나서기도 했다.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NYT에 “트럼프 대통령이 가자지구를 점령하겠다는 제안은 철회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을 이용해 영토를 정리하기로 약속하지 않았고, 주민들의 강제 이주는 일시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가자지구는 철거 현장 같으며 수돗물도 없다”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 주민들이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며 그는 대담한 새 계획을 통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미군 투입에 대해서는 “가자지구 지상에 군대를 투입한다는 것도, 미국의 세금을 쓰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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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고 있다. [AP] |
가자지구를 개발해 ‘중동의 리비에라’로 만들겠다는 발언도 비판받고 있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지역을 리비에라(지중해 휴양지)로 바꾸겠다는 구상은 외교 현안을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시각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동산개발업자로서의 이력을 이력을 보유하고 있고, 현재도 가족들이 부동산 사업을 하고 있다.
NYT는 트럼프 1기 당시 북한 개발에 관심을 보였던 시각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난 그(김정은)가 엄청난 콘도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많은 해안을 갖고 있다”며 관심을 보였다. 또 여러 차례 북한의 부동산 입지가 훌륭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구상은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미국 대통령의 역할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부동산 거래적 구상이 “사실상 21세기식 식민주의”라고 비판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19세기 제국주의 전통에 따라 세계 지도를 다시 그리는 노골적인 아이디어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미국이 다른 나라의 영토를 일방적으로 통제할 법적 권한이 없으며 인구 전체를 강제로 이주시키는 것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