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어진동에서 자욱한 안개를 뚫고 시민들이 출근길을 서두르고 있다. [뉴시스] |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최근 기획재정부 소속 공무원들이 한바탕 술렁였습니다. ‘닮고 싶은(베스트) 상사’(닮상)와 ‘안 닮고 싶은(워스트) 상사’(안닮상) 투표 결과를 놓고서입니다. 닮상에 뽑힌 사람은 애써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안닮상에 뽑힌 공무원은 풀이 죽습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공감하는 닮상과 안닮상의 기준은 뭘까요.
지난달 16~17일 진행된 투표 결과를 보면 닮상에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를 포함해 국장급 이상 3명, 과장급 10명이 선정됐습니다. 리더십·능력·소통·인격 등 평가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닮상에 세 차례 선정되면 명예의 전당에 올라 후보군에서 제외됩니다. 기재부 공무원 대부분 닮상 명단을 보고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견이 없다는 의미로 보였습니다.
술렁이거나 쑥덕이는 이유는 닮상 때문이 아니라 안닮상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안닮상은 당사자에게만 공지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별도 정리된 명단이 직원들의 메신저를 타고 퍼집니다. 한 기재부 사무관은 “안닮상이 국과장인 부서에 배치되면 한숨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여러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안닮상의 공통적인 특징은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업무 스타일이 ‘이랬다 저랬다 한다’는 건데요.
이렇다 보니 실무자 사이에선 ‘눈칠보삼’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나옵니다. 안닮상 부하 직원이 됐을 때 무탈하고 안온한 일상을 맞는 조건이 ‘눈치 70%(七), 정갈한 보고서 30%(三)’란 뜻입니다. “기분 좋은 타이밍 잘 잡아서 보고하라, “아무리 보고서를 잘 써도 눈치 없이 보고했다가 깨질 수 있다” 정도로 해석됩니다.
안닮상으로 지목된 이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을 마주한 수용자들의 심리적 반응에 관한 이론으로 알려진 ‘분노의 5단계’(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를 빌려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 안닮상으로 지목됐던 A 과장은 사무실에서 “나만 워스트인 것 같냐(너희도 워스트다)”며 역정(부정)을 냈다고 합니다. B 과장은 직원들에게 전화해 “네가 나를 지목했느냐. 이유가 뭐냐”고 따져 묻기(분노)도 했습니다.
우울 단계로 넘어간 C 국장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안닮상에 몇 차례 지목된 D 실장은 매번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심리 상태가 ‘수용’ 단계로 넘어간 것으로 해석됩니다.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뉴시스] |
닮상도 안전지대는 아닙니다. 직원들 사이에선 “닮상도 100% 믿어선 안 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실국 차원에서 소위 ‘밀어주는’ 상사가 있다 보니 세평과는 다소 괴리감 있는 인사가 명단에 오르는 일도 있다는 겁니다.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특정 실국에 닮상과 안닮상이 몰리지 않도록 실국별 인원을 고려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고 합니다.
닮상·안닮상 제도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를 놓고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현재로선 유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더 큽니다. 조직 문화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안닮상을 선정하는 것이 공직사회에 팽배한 상명하복 분위기에 ‘경종’을 울리는 유일한 수단이란 평가도 나옵니다.
하지만 안닮상 선정이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분명 배울 점 많은 능력자인데도 굳이 안닮상으로 뽑아 기를 죽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안닮상이 닮상이 되면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주는 등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도 필요하다”면서 “조직 문화 개선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