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집 ‘형님(정유)’보다 잘나간 ‘아우(윤활유)’…“올해도 존재감 톡톡” [비즈360]

정유업황 부진 속 윤활유 부문 실적 선방
러우 사태 당시 가격 뛴 이후 수요처 늘어
액침냉각 등 신사업으로 윤활유 영역 확장


챗GPT를 이용해 제작한 이미지.


[헤럴드경제=고은결 기자] 국내 정유업계가 지난해 정유업황 부진으로 실적이 주춤한 가운데, 정유사의 대표적인 비(非)정유사업 중 하나인 윤활유 사업은 버팀목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활유는 기계 마찰면에 생기는 마찰을 줄이거나 열 발생을 최소화하고, 부품 마모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기초유와 첨가제로 만든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제품 가격에 원유 가격보다는 기술력과 품질의 영향이 커 마진율이 높고 수익성이 안정적인 편이다. 업체들은 액침냉각유 사업 등으로 관련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한편 품질 경쟁을 이어갈 전망이다.

정유업황 부진 속 윤활유 선방


8일 업계에 따르면 2024년 연결기준 연간 잠정 실적을 발표한 업체 정유사들은 지난해 일제히 윤활유 부문의 영업이익이 정유 부문보다 높았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연간 기준 윤활유 영업이익(6867억원)이 석유 부문(4611억원)보다 2200억원가량 높았다. 특히 에쓰오일은 윤활유 영업이익(5712억원)이 정유(-2454억원) 대비 7000억원 이상 높았다. HD현대오일뱅크도 윤활유 영업이익이 1681억원으로 정유 부문(956억원) 대비 2배에 달했다.

이들 업체가 주력 사업인 정유 부문에서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것은 수익성 지표인 국제유가와 정제마진이 나란히 추락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해 3분기 기준 정제마진은 배럴당 평균 3.5달러에 그치며 손익분기점(약 4~5달러)을 훌쩍 밑돌았다.

정유 부문 실적이 출렁일 때 윤활유 부문의 존재감이 본격 나타난 시점은 2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앞서 정유업계는 지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정제마진이 동반 상승하며 상반기 합산 영업이익만 12조원을 넘기는 등 사상 유례없는 실적을 거뒀다. 야권에서 “정유사는 예기치 않게 얻은 이익에 대한 ‘횡재세’를 내야 한다”는 주장을 꺼내든 시점도 이때다.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울산CLX) 전경. [SK이노베이션 제공]


대외 변동성에 강점…러·우 사태 거치며 수요 늘어


그러나 2022년 하반기 주요 각국의 금리 인상으로 경기둔화 우려가 불거지며 두 지표도 하락세를 보이며 실적이 급감했고, 1년 만인 2023년 상반기 적자 전환하는 등 경영실적이 크게 뒷걸음질쳤다. 이후 등락은 있었지만 경기침체 기조가 길어지면서 주력 사업 대신 비정유사업인 윤활유 사업이 숨은 효자 노릇을 해왔다.

윤활유 사업은 휘발유나 경유 같은 연료 제품을 생산하는 정유 사업과 비교하면 매출 규모는 작다. 그러나 원유 가격 변동과 정제 마진이 수익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유 사업과 달리, 대외요인에 따른 변동이 적다. 제품 자체의 부가가치가 높아, 원유 가격보다는 제품 가격 결정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동차·항공기·기계 등에서 정기 유지보수가 필요하다보니 수요도 꾸준히 발생해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췄다는 평가다.

특히 윤활유는 경우와 같은 공정에서 생산되는데, 러시아 우크라이나 사태 당시 경유 생산 증대로 윤활유 생산이 줄며 공급 부족에 가격이 뛴 영향도 있었다. 이후에는 전기차용 윤활유, 고급 윤활유 등 시장 확대로 윤활유 사업의 입지가 더 탄탄해졌다.

에쓰오일 직원들이 서울 마곡 TS&D 센터에서 액침냉각유 성능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에쓰오일 제공]


올해도 수요·수익성 견조할 듯


정유업계는 올해도 윤활유 부문의 수익성이 탄탄할 것으로 본다. 에쓰오일은 최근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윤활유 제품 스프레드(마진)는 2023년 하반기 이래 꾸준히 50달러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수요도 안정적”이라며 올해도 수익성 추세에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1분기에는 윤활유의 전통적인 교체기를 맞아 수요 회복이 전망되며, 중국 경기 부양 정책에 따라 전반적인 수요 개선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정유사들은 윤활기유(윤활유의 주원료)를 활용한 액침냉각유 시장 진출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대표적인 신사업인 액침냉각 제품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에서 수요 급증이 예상된다. SK이노베이션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에너지저장장치(ESS)용 액침 냉각 제품을 개발해 실증 중이며, 에쓰오일도 작년 10월 e-쿨링 솔루션을 선보였다.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12월 액침 냉각 시스템 기업 GRC로부터 일렉트로세이프 프로그램 인증을 받았고, GS칼텍스는 액침냉각유 킥스 이멀젼 플루이드S를 출시한 바 있다.

한편 휘발유·경유처럼 기술력보다는 규모의 경제가 중요하고 가격 경쟁이 치열한 정유 제품과 달리, 윤활유는 향후 ‘품질 경쟁’이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가령 고급 자동차용 윤활유 같은 프리미엄 제품은 브랜드 가치와 고객 충성도가 관건이며, 원유 가격과 무관하게 가격을 이어갈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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