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유실·유기되는 동물 11만 이상
반려동물을 유기하면 ‘300만 원 이하의 벌금’
전문가 “동물 등록 제도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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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된 유기견 구정이와 신정이. 두 강아지의 이름은 보호센터에서 지어줬다. [동물권행동 카라] |
[헤럴드경제=김도윤 기자] 설 연휴의 시작이었던 지난달 27일. 새벽부터 눈·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사람이 폐쇄회로(CC)TV 화면에 잡혔다. 손에는 뭔가를 들고 있었다. 주변을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건물 현관에 손에 든 물건을 두고 반대편 인도로 사라졌다.
그곳은 서울 마포구에 있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가 운영하는 더불어숨 센터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두고 간 것은 반려동물 케이지. 거기엔 작은 포메라니안과 푸들이 한 마리씩 놓여 있었다. 낮은 기온에 부들부들 떨고 있던 두 강아지는 그로부터 2시간이 지나서야 센터 직원에게 발견됐다. 이름이나 나이 따위를 알 수 있는 쪽지는 없었다. 센터 건물 입구에는 ‘동물 유기는 범죄입니다’라고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다.
센터 직원은 따뜻한 곳에서 강아지들을 안정시켰다. 씻기고 나니 두 강아지 모두 다리를 절고 있었다. 센터에서는 두 강아지에게 각각 ‘구정이’이‘와 ‘신정이’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명절에 복을 받아 처음 주인을 만나진 못해도 더 예뻐해 주고 아껴줄 새로운 가족을 만났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구정이’와 ‘신정이’는 현재 정밀검사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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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의 시작이었던 지난 1월 27일 오전 6시 52분께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카라 더봄 센터 앞에 동물을 유기하는 모습. [동물권행동 카라] |
동물권행동 카라의 전진경 대표는 유기된 강아지들의 재입양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대표는 “반려동물에 대한 책임 의식 없이 필요에 따라 키우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동물의 탓으로 돌려 유기하고서 ‘센터에 뒀으니 살길을 찾아줬다’는 잘못된 합리화를 멈췄으면 좋겠다”며“특히 아픈 동물에 대한 책임까지도 처음부터 고려해야 하지만, 명절 기간에는 유기되는 비율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명절에 구조된 구정이와 신정이는 6세 이상으로 추측된다. 고령은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입양이 쉽지 않은 애매한 연령대다. 전 대표는 “국내에서는 한두 살 미만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 나이가 있는 동물의 입양이 더욱 어려운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반려동물과 사는 인구가 1500만명을 넘은 가운데 해마다 유실·유기되는 동물은 11만 마리를 웃돌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에 등록된 유실·유기 동물 구조 현황에 따르면 국내 유실·유기동물 발생은 2019년 13만 5791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매년 감소하는 양상을 보이지만 ▷2021년 11만 8273마리 ▷2022년 11만 3440마리 ▷2023년 11만 3072마리 등으로 여전히 매년 11만 마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가 작성한 ‘2023 유실·유기동물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설 연휴 직후였던 2023년 2월 유실·유기동물 발견 건수는 7272건으로 전년(6432건)보다 13.1% 증가했다. 추석 연휴가 있던 그해 10월에는 1만312건으로 전년보다 5.2% 증가했다.
각 지자체 차원에서 버려지는 동물을 줄여보겠다고 나름대로 묘책을 내놓고 있다. 명절을 앞두고 ‘반려견 돌봄 쉼터’를 운영하거나 농림축산식품부가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을 통해 유실·유기동물 제보를 받고 있으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단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동물 등록 제도 개선과 동물 유기 처벌 강화를 지적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현재 동물은 너무 쉽게 사고파는 구조”라며 “온라인 판매망이 호기심만을 자극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반려동물을 키우게 만드는 취약한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키우지 못할 사정이 생길 수 있지만, 입양을 위한 노력이나 커뮤니티 활용 등 책임 있는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행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유기할 경우 3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2020년 2월 이전까지는 유기 시 과태료가 부과됐으나, 이후 형사 처벌이 가능한 벌금형으로 변경됐다. 2022년 4월 전부 개정된 동물보호법에서도 같은 수준의 벌금형을 유지하고 있다.
권유림 변호사(법무법인 선경)는 동물 등록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기 행위가 형사 처벌 대상으로 변경되면서 인식이 일부 개선됐지만, 여전히 유기된 동물의 소유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이를 해결하려면 동물등록 제도가 정착돼야 하고, 소유자 확인이 가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내장형 칩과 외장형 이름표 부착 방식이 모두 인정되지만 실효성을 높이려면 내장형 등록 방식으로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어 권 변호사는 “법적으로 3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규정돼 있지만, 실제로 최대 형량이 적용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처벌 강화를 포함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