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도 한때야” 미묘하게 달라진 반도체 시장…‘넥스트 히트’ 찾기 분주 [김민지의 칩만사!]

급변하는 반도체 시장, “뭐가 뜰지 아무도 모른다”
스타게이트로 분위기 쇄신 나선 삼성
“HBM 안주 안돼” 차세대 준비하는 SK


[ SK하이닉스 제공]


<김민지의 ‘칩(Chip)만사(萬事)’!> 마냥 어려울 것 같은 반도체에도 누구나 공감할 ‘세상만사’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 그 안의 말랑말랑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촌각을 다투는 트렌드 이슈까지, ‘칩만사’가 세상만사 전하듯 쉽게 알려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반도체 시장의 예측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때입니다. 전문가들도 당장 6개월 뒤 반도체 업황을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산업의 역동성이 극대화된 탓입니다.

중국발 ‘딥시크’ 쇼크와 미국의 730조원 규모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논의가 여기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엔비디아 주도의 AI 열풍은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워낙 기술 전환 속도가 빠른 탓에 반도체 기업들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제2의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먼저 예측하고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합니다. 오늘 칩만사에서는 각 업체들이 눈여겨 보고 있는 차세대 먹거리를 살펴보겠습니다.

다시 뛰는 삼성, ‘스타게이트’로 분위기 쇄신 시도


반도체 기술 경쟁력 약화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삼성전자는 이재용 회장의 사법리스크 해소와 함께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데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지난 3일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백강진)는 이 회장의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에 대해 “검찰의 공소사실을 입증하기에는 합리적 증거가 충분하지 못했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검찰의 상고 가능성이 남아있긴 하지만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가 나오면서 대법원에서 결과가 뒤집힐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10년째 이어진 사법리스크가 드디어 해소된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 회장은 무죄를 선고 받은 바로 다음날인 지난 4일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을 만났습니다. 손 회장보다 40여분 빠르게 서초사옥에 온 샘 올트먼 CEO를 먼저 만난 이 회장은 AI 반도체 분야에서 양사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전영현 DS부문장을 포함해 DS부문의 주요 경영진들이 동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어 손정의 회장이 도착하며 글로벌 AI거물 3인방의 회동이 진행됐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730조원 규모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협력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전반적인 진행상황과 ‘한미일’ AI 동맹의 가능성에 대해 검토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삼성에게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매우 중요합니다. HBM으로 구긴 자존심과 침체된 조직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을 대형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향후 4년 동안 약 730조원을 투입해 미국에 거대한 차세대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데이터센터와 AI 반도체, 생성형AI 등 AI 혁신 기술이 총동원되는 만큼, 다양한 기업들의 파트너십이 필수적입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뿐 아니라 스마트폰과 PC, TV, 가전 등을 아우르는 강력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AI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오픈AI와 소프트뱅크에겐 더할 나위 없는 협력사인 셈이죠.

이재용 회장과 평택캠퍼스 [헤럴드DB]


HBM 시장에서 한 번 밀리기 시작한 삼성은 1년 넘게 엔비디아에 HBM3E을 납품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D램 기술력 약화가 여실히 드러나면서 근원적인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위기의식이 짙습니다.

이미 HBM에서는 SK하이닉스를 앞지르기는 어려울 거란 목소리가 나옵니다. 일부 엔지니어들은 엔비디아 AI 가속기의 한계가 분명하다며 HBM 중심의 AI 메모리 시장이 내년까지만 이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하기도 합니다. AI 서비스가 학습해야 하는 데이터의 양은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텐데 현재 엔비디아 AI 가속기의 에너지 효율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겁니다.

여기에 최근 딥시크를 계기로 가성비 AI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죠. 지금으로서는 엔비디아 AI 가속기가 유일무이한 옵션이지만, 향후엔 더 경량화되고 저전력 구현이 가능한 대안이 분명히 부상할 전망입니다. HBM 외에 LPDDR이나 LPCAMM(저전력 압축 메모리 모듈), GDDR(그래픽메모리) 등의 수요도 눈 여겨봐야하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LPCAMM과 LPDDR의 공급 가능성을 검토하며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한편, 이 회장은 당분간 위기 극복을 위한 경영 점검에 나설 전망입니다. 이달 중 해외 사업장 점검에 나설 거란 분석도 나옵니다. 사법리스크 해소 후의 첫 출장지로 어느 곳을 선택할지 관심이 쏠립니다.

HBM 신화 쓴 SK, “안주하지 말라” 경고


HBM의 최대 수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SK그룹은 어떤 상황일까요.

SK하이닉스는 조직 내부에서 “HBM의 성공에 안주해서는 안된다”라고 끝없이 강조하며 새로운 수익 모델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8월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를 방문해 “SK하이닉스가 지금은 HBM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지만 내년에 6세대 HBM(HBM4)이 상용화되면 더욱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며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차세대 수익 모델에 대해 지금부터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8월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를 방문한 모습 [SK하이닉스 제공]


특히, 최 회장은 유리기판이나 SiC 웨이퍼 등 차세대 소부장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SKC가 맡고 있는 유리기판 사업은 향후 5년 내 반드시 개화할 시장으로 꼽힙니다. 기존 유기 소재의 기판을 사용한 반도체는 트랜지스터를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유리기판은 칩을 더 얇게 패키징할 수도 있고, 발열 문제 해결도 가능합니다.

기업들은 이르면 내년 또는 내후년에 본격적으로 유리기판 양산이 시작될 것으로 보고 시제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SKC는 2021년 미국 장비업체 어플라이드머터리얼즈와 합작해 자회사 ‘앱솔릭스’를 세우고 지난해 상반기 미국 조지아주에 세계 최초의 유리기판 양산 공장을 준공했습니다. CES 2025에서 기존 기판 대비 데이터 처리 속도를 40% 향상하고 전력 소비와 패키지 두께를 절반 이상으로 줄인 유리 기판을 선보였습니다.

최 회장은 전력 반도체의 핵심 소재인 실리콘 카바이드(SiC) 웨이퍼도 점찍었습니다. 온도 상한선이 175도인 기존 실리콘 웨이퍼와 달리 SiC 웨이퍼는 최대 400도에서도 견딜 수가 있습니다. 전압은 실리콘 웨이퍼 대비 최대 10배까지 높일 수 있어 고전압, 고온에 강한 것이 특징입니다.

SK그룹 내에서는 SK실트론이 SiC웨이퍼 사업을 맡고 있습니다. 미국 자회사인 SK실트론CSS를 통해 2027년가지 6억3000만 달러를 투자해 미시간주 공장을 증설할 예정입니다. 연내 8인치 SiC 웨이퍼 생산이 목표입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최근 3년 간의 반도체 시장을 보면 어떤 기술이 핵심으로 부상할지 한치앞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변동성고 크고 기술 발전 속도도 빠르다”며 “기업들은 여러가지 후보군을 두고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이 광범위하게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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