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 부자만의 전유물 아냐”…‘아이돌 셰프’의 철학[미담:味談]

안녕하세요,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입니다.


이진곤 시미베 오너셰프. 본인 제공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미식의 행복, 부자만의 전유물이 아니잖아요.”

2014년 당시 최고의 인기 예능프로그램이었던 ‘스타킹’에 출연해 아이돌 닮은 셰프로 화제가 된 이진곤 셰프, 이후 여러 프로그램에 등장해 유명세를 탔지만 어느날 홀연히 TV에서 사라졌다. 11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는 TV 속 스타 셰프가 아닌, 음식으로 사랑받는 진짜 셰프로 돌아왔다.

최근 을지로에 있는 이자카야 시미베에서 이진곤 셰프를 만났다. 어느새 30대 후반에 접어든 이진곤 셰프에게 과거의 앳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길게 기른 머리, 180대 후반의 큰 키, 떡 벌어진 어깨는 남성적인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이돌에서 영화배우에서 닮은 꼴이 변한 느낌이랄까.

이진곤 셰프는 어릴적 회사를 나가신 부모님을 대신해 어린 동생에게 밥을 해먹이며,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조리학과에 진학했다. 군대에서는 취사병으로 2000명이 넘는 장병들을 위한 밥을 지으면서도, ‘요리가 너무 즐겁다’고 느꼈다. 그렇게 셰프의 꿈을 키워 나갔다.

2014년 SBS 예능 ‘스타킹’에 아이돌 닮은 꼴 셰프로 출연한 이진곤 셰프. [SBS 캡처]


군 전역 후 유명 이자카야에서 일하던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다. 손님으로부터 SBS 방송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 출연 제의를 받은 것이다. 그는 ‘스타킹’ 제작 PD의 지인이었다. 얼떨결에 시작한 방송이었지만, 떨리는 마음만큼 행복했다. 하지만, 불운의 사고로 방송을 더는 할 수 없게됐다.

“방송에 나가고 나서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셨어요. 제가 강원도 시골 출신인데, TV에 나오면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하셨나봐요.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모습에 저도 너무 행복했어요. 스타킹 이후로도 여러 방송을 했었고요. 3년 전까지 아침방송 등에 나갔었요. 방송 자체가 좋았어요. 심장이 뛰고 긴장김이 드는 기분이 좋았던 거 같아요. 저를 알릴 수 있는 좋은 홍보 수단이기도 했고요. 방송을 통해 유명하신 셰프님들과 연을 맺은 것도 행운이었죠. 운동을 하다 사고로 아킬레스건이 두 번 파열됐어요. 걸을 수가 없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방송도 모두 끊기게 됐어요.”

음식을 만들고 있는 이진곤 셰프. 본인 제공


아픔이 치유될 즈음, 2021년 8월 그는 을지로에 자신의 이자카야 시미베를 오픈했다. 일본어 같은 어감의 시미베는 사실 ‘심플 이즈 베스트’를 줄인 말이다.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시미베는 단순하면서도 대중이 가장 좋아하는 맛을 지향한다.

“돈이 많지 않아도 편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만들고 싶었어요. 직장인들 또는 연인들, 젊은 친구들이 비싸지 않은 가격에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그런 곳이요. 직관적으로 맛있겠다고 생각이 드는 요리를 지향하고 있어요. 복잡하고 어려운 파인다이닝이 아니에요. 대중이 진짜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러 식당을 돌아다니며, 이것 저것 먹어보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은 조언을 들었죠.”

이진곤 셰프가 만드는 오리 라멘. 본인 제공


비용을 줄이려고 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대충 조립해 만들지 않는다. 재료 하나 하나를 정성을 들여 직접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시미베에서는 매주 목, 금, 토에는 11시부터 라멘을 판매하고 있다. 딱 1시간 판매하는 라멘을 위해 육수를 직접 우려낸다고 한다. 돈코츠, 오리, 아부라소바 세 가지 메뉴의 가격은 1만1000원. 쌀국수가 메뉴에 있을 때는 양지육수를 매일 우려냈다고 한다. 이 시간에는 3000원만 내면, 밖에서 사온 소주를 콜키지 할 수 있다.

시미베의 대표 메뉴 ‘사시미케이크’. 광어, 도미, 참치, 연어 등 6가지 해산물과 김초밥으로 구성됐다. 본인 제공


이곳의 대표 메뉴인 ‘사시미케이크’는 기념일을 장식할 메뉴로 손색이 없다. 야마모리스시(山盛り司)를 이진곤 셰프 스타일로 변형한 이 메뉴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광어, 도미, 방어, 참치, 관자, 삼치, 안키모 등 6가지 해산물과 김초밥으로 구성했다. 사시미는 시오지메(締め) 방식으로 숙성해 식감과 단맛을 끌어올렸다. 가격은 4만원으로 업계 최저 수준이다. 맛은 결코 고급 식당에 뒤지지 않는다.

“저렴하다고 질까지 낮추고 싶지는 않아요. 좋은 음식을 편하게 대접하고 싶으니깐요. 앞으로도 그 철학은 계속될 거에요. 토요일 늦은 밤이면, 더 저렴한 구성으로 사시미 메뉴를 제공할 계획도 가지고 있어요. 더 많은 사람이 음식을 통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방송으로 다시 유명세를 탈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롯이 음식으로 대중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는게 그의 꿈이다.

“저는 스타를 꿈꾸지 않아요. 많은 사람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식당을 운영하는 셰프로 남고 싶어요. 언젠가는 바다가 보이는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싶어요. 6석 정도의 작은 규모의 술집도 운영하고 싶어요. 저와 손님이 모두 편하고 행복한 그런 식당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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