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모두 한국에서 보낸 후 한체대 합격
트레이너 꿈꾸고 7군데 합격 했지만 ‘비자’문제로 좌절
정부 시범 운영 외국인 ‘요양보호사’가 한줄기 빛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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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육대학 졸업식 때의 제이드 폴 파티노. [본인 제공] |
[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생각한대로 안 됐지만, 그래도 기회가 생겼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는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한 청년의 취업 도전기다.
꿈을 위해 달려왔지만 촘촘하지 않은 제도 탓에 좌절을 맛봤던,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달리고 있는, 한 청년이 부르는 희망가(歌)다.
필리핀 청년 제이드 폴 파티노(26)의 이야기다. 지난달 31일 간담회 차 서울시청을 찾은 그를 만났다.
그는 지난해 9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유학생 요양보호사 자격’은 법무부가 지난해부터 2년간 운영을 시작한 시범사업이다. 외국인 유학생도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요양시설에 취업할 경우 특정활동(E-7) 비자 취득이 가능한 것이 핵심이다. 이 사업은 2024년 1월부터 올해 말까지 운영된다. 특히 서울시 등 지자체도 법무부가 지자체에게 비자 발급 권한을 주는 ‘광역형 비자 시범사업 운영안’을 지난해 12월 발표하면서 이에 대비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에는 현재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2명의 외국인이 있다. 파티노도 그 중 한명이다.
파티노는 “대학 졸업 후 취업이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기회가 생긴 만큼 다시 도전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7살인 2006년 선교와 외국인노동자이주 지원을 위해 한국행을 한 필리핀 부모님과 함께 대전에 정착했다. 초중고, 모두 한국에서 나왔다. 국제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서 정규 교육 과정을 모두 마쳤다. 반석고에 재학중이던 2016년에는 ‘꿈’을 주제로 열린 이중언어말하기 대회에서 교육부 장관상을 탔다. 파티노는 그렇게 한국에서의 정착을 위한 단계를 밟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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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드 폴 파티노(사진 오른쪽)는 반석고 재학시절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에서 교육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대전시 제공] |
고등학교 때부터 최고의 스포츠 트레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꿨다. 다른 길은 보지도 않았다. 부모님 부담을 줄여들이기 위해 국립대 정시를 노렸다. 그리고 ‘대한민국 체육엘리트 교육의 산실’ 한국체대에 합격했다. 운동건강관리학을 전공해, 스포츠의학과 스포츠과학을 배웠다.
그리고 한체대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자랑이 됐다. 그는 아직 6년전 받은 합격 통지 문자를 아직 간직하고 있다.
대학 내내 꿈을 위해 달렸다. 2023년 2월 졸업후 여느 청년과 마찬가지로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스포츠센터에서 실습을 다녔다. 병원에서 운동처방도 배웠다. 바디플로우(맨몸운동) 및 소도구 운동, 스포츠마사지, 체형관리사 등의 자격도 수료했다.
결국 2023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서울클럽 트레이너 등 7군데 트레이너 자리에 합격했다. 대부분 국내 최고의 ‘트레이너’들이 가는 곳이었다. 특히 정동구락부라고 불리기도 한 ‘서울클럽’은 조선시대 고종 때 만들어진 ‘사교모임’으로 지금은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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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드 폴 파티노 씨는 2018년 받은 한국체육대학 합격 통지 문자를 아직 간직하고 있다. [본인제공] |
꿈을 키우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고, 그리고 합격 통지를 받을 때까지 파티노는 알지 못했다.
그가 한국에서는 ‘트레이너’로는 결코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비자가 문제였어요. 구직비자에서 전문취업 비자(E-7:90개에 가까운 직종에서 외국인이 일 할 수 있도록 규정한 비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외국인은 트레이너로 취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전공을 선택할 때도, 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학교에 다닐때도 당연히 노력하면 될 줄 알았어요.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취업 길 자체가 막혔다고 했을 때 많이 힘들었어요. 부모님도 같이 힘들어하셨습니다.” 파티노의 말이다.
‘E-7’ 코드에 ‘트레이너’ 항목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숙박 여행 오락 및 스포츠 관련 관리자’(코드 1521)로 스포츠 관련 항목이 있지만, 이는 감독, 코치만 해당된다. 외국인 선수는 E-6 비자를 따야 된다. E-7 비자는 신청하는 ‘직종과 관련 있는’ 전공 석사 이상 학위를 가지거나, 학사 학위와 1년 이상의 경력을 가지고 있거나, 5년 이상 경력을 소지하고 있어야 신청가능하다. 그외 외국인이 딸 수 있는 취업 비자는 단기취업비자(C-4), 교수비자(E-1) 등이 있지만 파티노는 해당사항이 없다.
그렇다고 영주권을 따고 귀화를 하기도 쉽지 않다. 귀화는 ‘한국인’이 되는 것이고, 영주권을 따게 되면 취업에 제한이 없다. 18년 동안의 거주로는 부족하다. 모두 ‘직업’이 있어야 가능한 얘기다. 파티노 입장에서는 딜레마다.
그러던 중 보도를 통해 ‘외국인 유학생 요양보호사 시범운영 ’소식을 접했다. 지난해 3월부터 5월까지 매일 6시간씩 요양보호사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같은해 6월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이후에도 취업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난해 서울의 한 요양시설(데이케어센터)에서 ‘요양보호사’를 채용한다는 소식에 지원했고 면접에서 “바로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얘길 들었지만 결국 무산됐다. 파티노는 “채용하는 분이, 비자 문제로 공단 측에서 연락이 갈 거라고 해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쪽에서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해도 현재는 ‘요양원’만 된다는 말을 했습니다. 결국에는 안됐습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언론을 통해 배포한 자료에서 자격증 소지가가 취업할 수 있는 곳을 요양시설로 발표했다.
대학 졸업 후 2년 가까이 구직 활동이 계속되도, 새로운 도전 앞에 선 파티노의 목소리는 여전히 씩씩하다.
“트레이너라는 꿈에서 멀어지긴 했지만, 꼭 그렇게만은 생각하지는 않아요. 스포츠건강광리 분야도 고령사회에 맞게, 트렌드가 바뀌고 있습니다. 제가 학교때 배운 것들이 요양보호사를 하면서도 활용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달에 다시 도전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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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육대학 체육관에서 제이드 폴 파티노. [본인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