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FTA 한국엔 무역불균형 문제삼을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편관세에 이은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하며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관세전쟁’ 사정권에 들어갔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로 이미 관세를 대부분 폐지한 한국과 같은 나라에는 불리한 규제를 고치라는 식의 비관세 장벽을 압박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이 이달 4일 부과하기 시작한 대중 추가 10% 관세에 대해 중국이 베이징 시간으로 10일 0시(미 동부시간 9일 오전 11시)를 기해 ‘대미 보복 관세’에 나서자 트럼프 대통령이 또 다른 ‘관세 폭탄’을 줄줄이 예고했다.
1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중국 수출액은 1300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19.5%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미국 수출액은 1278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18.7%다. 두 나라를 합치면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38.1%에 달한다. 지난해 수출 제품 10개 중 4개 가량이 중국과 미국으로 간 셈이다. 우리로서는 어느 하나도 잃을 수 없는 시장이다. 특히 미국이 중국에 10%의 추가관세를 부과하면 중국의 중간재 수요 감소로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 감소가 불가피하다. 중간재는 철강, 자동차 부품 등 완성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부품이나 반제품 등을 말한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중국 수출 중 중간재는 1142억4000만달러로 전체 대중국 수출의 85.9%로 절대적이다. 같은 기간 대중국 수출 중 반도체는 465억7000만달러로 전체 대중국 수출의 35%로 이른다.
미국의 대중국 관세부과로 중국의 수출이 줄면 중국 경제가 침체돼 한국산을 포함한 수입 전반이 감소하는 것도 문제다.
여기에다 트럼프 대통령이 11일 혹은 12일 발표를 예고한 상호관세도 글로벌 관세전쟁을 부추기는 데 설상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한국의 경우 그 파장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제기되지만, ‘트럼프식 상호관세’가 일반적인 상호관세의 의미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도 사정권 안에 들어갈 수 있다.
한미 FTA를 체결하면서 한국은 품목 수 기준으로 99.8%, 금액 기준으로 99.1%의 상품에 대해 대미 관세를 최종 철폐하고, 미국은 품목 수 및 금액 기준으로 대한국 관세를 전면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2022년 3월 발간된 한국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자료에 따르면 그 당시 품목 수 기준으로 양국 모두 98% 이상의 상대국 상품에 대해 관세 철폐를 완료했다. 그러나 미국이 무역적자를 이유로 상호주의에 어긋난다고 주장할 경우 주요 대미 무역 흑자국 가운데 하나인 한국도 표적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 작년 한국은 대미 무역 흑자액 557억달러(약 81조원)를 기록해 미국 무역적자액 ‘8위’ 국가에 올랐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FTA의 일종인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이 발효되고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도 25%의 관세 부과 카드를 빼든 바 있다.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사상 최대 수준인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비관세 장벽을 문제삼을 가능성이 높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상호 무역’ 문제를 굉장히 강조한 바 있다. 이는 관세뿐만 아니라 비관세 장벽까지 포함해 무역적자 불균형을 보겠다는 뜻으로 읽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의미다.
비관세 장벽은 관세 외 방법으로 규제 등을 통해 특정국가의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로, USTR은 매년 무역장벽보고서(NTE)에서 발표하고 있다. USTR은 지난해 한국의 자동차 무역장벽에 대해 배기가스 부품(ERC) 인증 규제가 모호하고 환경부의 수입 차량 무작위 검증 절차로 출시 지연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외에 ▷유전자변형농산물(GMO) 승인 절차 복잡·비효율적 ▷30개월 미만 소에서만 수입 허용하는 임시 조치 지속 ▷미국산 블루베리(오레곤 외 지역), 체리, 사과, 배, 텍사스산 자몽, 캘리포니아산 석류류 등 한국 수출을 위한 검역 승인 요청이 장기 보류 ▷외국 클라우드서비스업체의 공공입찰 참여 제한하는 클라우드서비스보안인증(CSAP) 의무화 ▷위치 기반 데이터 수출 제한으로 외국 기업 경쟁 제한 등도 주요 무역장벽 사례로 꼽았다. 이는 미국 기업들이 오랜기간 문제제기를 해왔던 사안으로, 그리어 후보자는 이를 우선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문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