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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가지안테프 성 |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튀르키예 남부 가지안테프는 미식의 도시로 유명하다. 동쪽에는 3대 종교의 조상으로 일컬어지는 아브라함의 고향 샨르우르파가, 서쪽에는 지중해변 알렉산드로스가 거쳐갔던 항구도시 이스켄데르가 있다.
가지안테프가 미식의 도시가 된 이유는 실크로드 대상(大商)들의 쉼터였기 때문이다. 피렌체가 메디치 가문이 아니라도 도시로서 틀을 갖추게 된 것은 로마군의 쉼터, 바티칸 가는 순례자들의 쉼터였기 때문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돈 많은 상인들은 가지안테프에 머물며 고단했던 여정의 피로를 풀고, 미식을 즐겼으니, 고대, 중세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가지안테프가 낳은 디저트 바클라마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이고, 가지안테프 성채와 그 일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미식 도시 이전 가지안테프의 도시 형성 역사는 1만2000년된 신전 괴베클리테페를 가진 샨르우르파, 9000년전 차탈회위크 신석기 유적이 있던 콘야 만큼이나 깊다. 샨르우르파와 콘야의 오래된 유적 지역이 고스란히 도시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선사시대 공동체 형성은 샨르우르파가 빨랐고, 상거래와 정치행위가 이뤄지는 도시로서의 면모는 가지안테프가 더 탄탄한 역사를 갖고 있다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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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안테프 사힌베이 |
이미 7000년전 수메르 시절부터 지금의 자리에 도시가 형성돼 있었다. 3500년전 히타이트 시대에는 한타프라 불리었고, 4~15세기 로마 제국시대(중양인들은 비잔틴제국이라 지칭)에는 ‘타르수스 맞은편의 안티오키아’로 불리었다가, 이슬람의 정복 이후 아이은타프(Ayıntab, Ayıntap)로 불렸다.
지금의 이름은 15세기 오스만 투르크(돌궐)가 로마군을 제압한 뒤, 이스탄불과 소아시아를 정복한 것을 기념하고, 프랑스,그리스,아르메니아군을 격퇴함으로써 튀르키예의 자주적 위상을 확실히 정립한 1921년,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대통령 겸 장군이 ‘가지’(수호자)라는 영웅 호칭을 붙이면서 형성되었다.
지역 주민 190만명 중 경제활동인구의 60%가 미식 분야에 종사하며, 무려 49%의 기업이 향신료, 곡물, 말린 과일을 비롯한 식품 생산을 전문으로 한다. 나아가 가지안테프에서 미식 문화는 축제, 문화 간의 대화, 사회적 결속을 상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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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인 바클라바 미식 및 제조 문화 |
튀르키예 요리 문서에서도 볼 수 있지만, 바클라바, 수십 종류의 케밥들이 이 지역에서 탄생했으며, 가지안테프의 바클라바는 지리적 표시제/유럽연합에도 등록되어 있다. 201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에 가지안테프의 전통 요리가 등록됐다.
실크로드의 쉼터라는 족적은 수많은 시장 숙소에서 엿볼수 있다.
수공업이 특히 발전한 곳으로 동기공예(Bakırcılık), 자개공예(Sedefilik), 쿠트누(Kutnu)라고 불리는 비단과 면을 혼방한 전통 옷감과 가죽신(Yemeni), 레이스 공예로 이름나 있다.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 가지안테프 피스타치오 문화 예술 축제(Gaziantep Pistachio Culture and Art Festival)는 미식, 음악, 문학과 민속 예술을 결합한 다채로운 공연으로 대표적인 행사로 자리잡았다.
시라 축제(Shira Festival)에서는 주민 대부분이 모여 사흘 간 고대 실크로드에 자리잡은 가지안테프에서 유래한 다양한 지역 요리를 나누며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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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안테프의 양고기 수프, 베이란 초르바스 |
가지안테프의 향토 요리는 고기(특히 양고기)를 주로 쓰며, 고기를 쓸 때도 한식처럼 뼈부터 내장, 기름까지 하나도 버리는 부위 없이 모두 요리에 쓰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여러가지로 범벅된 향신료를 사용하는 다른 남동부 지방 요리들과 달리 대체로 한 가지, 혹은 두 가지 정도의 향신료만을 쓴다. 예를 들면 같은 케밥을 만들 때도 가지와 함께 꼬치에 꿸 때는 단지 소금과 후추만으로 양념을 하고, 양파와 함께 꼬치에 꿸 때는 석류 농축액(Nar ekisi)과 소금만으로 간을 한다.
가지 케밥(Patlıcan kebabı)은 숯불에 꼬치로 꿰서 구운 것과 오븐에 구운 것 두 종류가 있다. 가지안테프의 아침을 책임지는 국밥 베이란(Beyran)은 한국의 육개장 같은 것이다. 레몬즙을 넣는 것만 육개장과 다를 뿐, 거의 흡사하다.
가지안테프에는 가지안테프 성, 에미네 괴위시 가지안테프 향토 요리 박물관,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 메두사 유리공예 박물관, 귐뤼크 한(Gmrk Han) 살아있는 박물관, 진지를리 베데스텐(Zincirli Bedesten), 동기 장인들의 시장(Bakırcılar arısı), 하산 쉬제르 민속박물관, 가지안테프 동물원(Gaziantep Hayvanat Bahesi), 뒬뤼크바바 숲, 상코 공원 등 관광지가 많다. 성채는 지진피해를 당했다가 최근 완전히 복구됐다.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은 필수 방문지이다. 벨키스 마을에서 댐고사를 하던 도중 고대 도시인 제우그마(Zeugma) 모자이크 작품을 대거 발굴해 전시하고 있다.
메두사 유리공예 박물관에선 튀르키예 유리공예가 남서유럽 못지 않게 이른시기에 시작됐고, 고품격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로마 방식대로 향수병 같은 유리 공예품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으며 직접 체험해볼 수도 있었다.
이스탄불의 그랜드바자르를 연상케하는 진지를리 베데스텐은 여행자에게 참새방앗간 같은 곳이다. 동기(구리그릇)공예 장인시장도 그 옆에 붙어있다.
뒬뤼크바바 숲은 가지안테프 서북쪽에 자리잡은 방대한 휴양림으로, 소풍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피해 그늘진 숲과 개울가에 앉아서 케밥을 굽고,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하는 등 흥겹게 노는 가지안테프 특유의 사흐레 문화를 목도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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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안테프 인근 세계유산 렘루트 |
튀르키예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가지안테프는 뛰어난 지리·문화적 위치를 활용해 자매 도시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실크로드 시장단 포럼(Silk Road Mayor Forum)은 빈곤과 환경 문제 해결을 통한 지속가능한 도시 개발 촉진을 목표로 한다.
가지안테프 지자체에서는 기후 변화 행동 계획, 환경 보호 계획, 생태 공원 조성 등 다양한 환경 및 생태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 생활의 질을 개선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추구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특히 생태 공원 조성 연계 사업으로, 지금까지는 사용되지 않았던 피스타치오 껍데기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해 산업 및 주거 모두에서 이용될 수 있는 혁신적인 에너지원을 구축할 예정이다.
미식 분야 창조 도시로서 가지안테프가 계획 중인 프로젝트는 네 가지로 요약된다. ’동네 부엌(Kitchens in Districts)’을 통한 문화 간 대화 촉진, ‘장해물 없는 워크숍(the Atelier Without Obstacles)’을 통한 사회적 포용 강화, 다른 미식 분야 창조 도시와의 협력, 국제 미식 문화 페스티벌 주최로 다른 미식 분야 창조 도시와 경험 및 노하우 공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