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준의 크로스오버] 산불이 꺼진 뒤…분노와 원망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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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데나의 레이크길가 교회가 불에 탄채로 골조만 남아 있다.<heraldk.com>

로스앤젤레스(LA) 산불이 발생한 지 한달이 지났다.

태평양이 바라보이는 퍼시픽 팰리세이드의 주택가 인근 산기슭에서 연기가 피어오른 게 1월 7일 오전 10시께. 비슷한 시간 40여마일(약 64km) 동쪽 이튼 계곡 인근의 알타데나 주택가에서도 산불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두 곳의 산불이 100% 진화된 게 지난 1월 31일. 24일만이다.

희망을 얘기하기에도 모자랐을 1월 첫달은 고스란히 최악의 재난이 뿜어낸 벌건 화염과 시커먼 연기, 뿌연 잿더미와 흉하게 남은 골재로 채워졌다.

인구 4만여명의 알타데나와 2만여명의 퍼시픽 팰리세이즈는 총 960여만명인 LA 카운티 전체 인구의 1%에도 안되지만 그 피해규모는 널리 알려지다시피 역대급이다.

이튼산불은 알타데나 지역의 상당부분과 패사데나 일부 등 22평방마일(약 57.98㎢)을 태웠다. 퍼시픽 팰리세이즈와 산타모니카,말리부 일부를 휩쓴 팰리세이드 산불은 36.5평방 마일(약 94.47㎢)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두개 산불이 태운 면적을 합하면 서울시의 1/4 크기, 파리의 두배,뉴욕 맨해튼의 2.5배, 샌프란시스코의 1.2배라고 하니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두 지역에서 파괴된 건물이 1만6천249채, 일부라도 훼손된 건물이 2천46채로, 산불 피해를 겪은 건물은 총 1만8천295채에 달한다.

그 가운데 주택만 이튼산불에서 6천116채, 팰리세이드 산불에서 5천546채가 전소됐다. LA지역의 가구 당 평균인구가 2.89명이라는 센서스의 자료를 바탕으로 추산하면 3만3천703.2명이 집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아 있다는 얘기다.

인명피해는 사망자가 29명, 실종자가 14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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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튼산불이 지나간 알타데나 현장에 불에 탄 지동차가 참사를 알려주고 있다.<heraldk.com>

숫자로 말하는 경제적 손실규모는 미국 재난 사상 거의 최대에 달한다.

최근 캘리포니아주립 로스앤젤레스(UCLA)대학의 경제연구소가 낸 보고서에서는 LA지역 2건의 대형 산불로 인한 재산과 자본 손실이 최소 950억달러(약 138조원)에서 최대 1천640억달러(약 238조원)에 달할 것으로 계산했다. 지역매체 LA타임즈는 각종 분석을 토대로 손실규모가 2천500억달러(약 363조원)라고 주장하고 있다.

불이 꺼지고 나자 LA지역에는 뒤늦게 비가 내렸다. 2월들어서만 열흘 동안 약 5인치(약 127㎜)의 강우량을 기록했고, 앞으로도 그 이상 내릴 것으로 예보되고 있다.

재난상황이 진정되자 바야흐로 복구와 재건의 목소리가 드높다.

LA의 산불 구호기금은 곳곳에서 6억5천만달러(약 9천442억원) 이상 답지했다.지난 1월 30일 팝스타들이 대거 참가한 산불구호 모금 자선콘서트를 통해서 약 1억2천500만달러(약 1천816억원) 이상 모았다. 온라인 모금플랫폼 ‘고펀드미(GoFundMe)를 통해서만 2억달러(약 2천900억원) 이상이 산불피해 주민들에게 전달됐다고 지역매체들이 전하고 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차원의 복구지원금은 수십억달러에 달하겠지만 집행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LA에서 내로라하는 재력가와 사업가 등 유명인사들이 저마다 비영리재단을 만들어 산불로 망가진 커뮤니티를 재건하는 데 앞장 서겠다고 나서고 있다.

프로농구NBA의 전설인 매직 존슨, LA다저스 마크 월터 구단주, 2028LA올림픽 조직위원장 케이시 와서맨, LA타임즈 사주인 억만장자 패트릭 순시옹, 2022년 시장선거에도 출마한 개발업자 릭 카루소,사진공유앱 스냅챗 창업자 에반 스피겔 등이 개별적으로 피해복구 사업을 위한 재단 설립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그 와중에 구설수도 빠지지 않는다. 산불이 터진 날 하필 아프리카 가나 대통령의 취임 사절단으로 출장여행 중이었던 캐런 배스 LA 시장은 초기 대응에서 리더십을 발휘 못한 ‘실책’을 만회하려다가 잇따라 자충수를 둬 빈축을 사고 있다. 봉쇄된 산불 지역의 조기 해제령과 피해복구 총책임자에 대한 50만달러 보수 지급 등이 알려져 변명하느라 쩔쩔 매고 있다.

무엇보다 산불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한인동포들의 피해규모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LA한인회에 접수된 피해신고 사례는 300여건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LA한인회가 1월 중순부터 모금한 구호성금은 2월 10일 기준 16만달러(약 2억3천260만원)를 조금 넘겼다. 한국정부가 100만달러(약14억5천300만원), 지역 한인은행이 20만달러(약 2억9천만원)를 기부했지만 LA시와 피해지역에 직접 전달한 것이어서 피해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한인사회의 성금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지난 주말 찾아간 알타데나의 산불현장은 아직도 탄내가 가득했다. 폭격 당한 우크라이나 시가지나 다를 바 없는 폐허 그 자체였다. 건질 게 하나 없는 소실된 집터에 쭈그려 앉아 있던 한 주민은 눈이 마주치자 잔뜩 성난 얼굴로 들으라는 듯 중얼거린다. “지옥에나 가라지…” 우리 말로 풀어보면 ‘뭔 구경거리 났다고 왔느냐’라는 뜻일게다. 지난 7일 연합뉴스가 전한 한인 이모씨(64)는 23년간 살았던 집이 불타 사라진 잿더미 속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그래도 다치지 않고 몸이 괜찮으니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위로하는데, 사실 지금은 그런 말도 위로가 안 된다”

잘 못한 것도 없이 그저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긴 이재민의 마음 속 상처는 무엇으로 치유될까. 새해 벽두부터 도무지 속이 편할 날이 없다.

2025021101000008500000231황덕준/미주헤럴드경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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