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초비상 트럼프발(發) ‘상호관세’ 뭐길래…철강·알루미늄 다음 표적은? [디브리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뉴올리언스에서 열리는 미국프로풋볼 결승전 ‘슈퍼볼’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AP]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 관세’ 발표를 예고하면서 전세계가 ‘트럼프발 관세전쟁’ 사정권에 들어갔다. 특히 대미 무역적자 8위인 한국도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이 관세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로 이미 관세를 대부분 폐지한 한국과 같은 나라에는 불리한 규제를 고치라는 식의 비관세 장벽을 압박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프로풋볼 결승전인 슈퍼볼이 열리는 뉴올리언스로 이동하는 전용기 안에서 “오는 11일이나 12일에 상호관세를 발표할 계획이며 상호관세는 거의 즉시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호관세란?… ‘눈에는 눈, 관세엔 똑같은 관세’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s)란 무역을 하는 국가끼리 서로 같거나 비슷한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등장한 개념으로, 통상 보호무역에서 자유무역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상대국과 비례해 관세를 낮추는 데 사용됐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적용을 위한 상호무역법’을 촉구하고 상호관세를 발표한 즉시 발효할 것이라며 무역장벽을 높이는데 사용하고 있다.

예를들어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를 예고한 유럽연합(EU)의 경우 미국산 자동차 수입에 10%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반대로 미국은 EU산을 포함한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수입되는 자동차에 2.5%의 기본관세를 매긴다.

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EU산 자동차 수입에 7.5%의 상호 관세를 추가 부과함으로써 EU와 관세율을 같은 수준으로 맞출 수 있다.

상호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시절부터 꾸준히 언급한 정책이다.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은 국회에 상호무역법 제정을 촉구했다. 지난해 대선 공약에도 ‘상호관세 적용을 위한 상호무역법’이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그들이 우리에게 관세 130%를 부과하는데 우리가 아무것도 부과하지 않는다면 그런 상황이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도 상호관세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미국 국가별 무역적자 [헤럴드경제]

 

트럼프 ‘상호관세’ 타깃 국가는?

상호관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각국의 관세율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 관세가 상대국과의 평균 관세율을 기준으로 운영된다면 터키나 인도와 같이 높은 대미 관세율을 부과하는 국가들이 더욱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보수성향의 싱크탱크인 해리티지 재단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대비해 작성한 ‘프로젝트 2025’ 보고서에서도 상호관세가 등장한다. 보고서는 상호관세 대상 국가들을 3단계로 나눠서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가장 먼저 관세 대상 국가는 ‘위험국’으로 꼽히는 중국과 인도다. 2단계 국가들은 무역적자를 유발하는 유럽연합(EU), 대만, 베트남이고, 마지막 3단계에 해당하는 국가는 일본과 말레이시아였다.

한국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최근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 대한 관세 부과를 예고한 만큼 대상국이 될 가능성도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7일 자신의 ‘집권 1기 성과’로 한국산 세탁기에 부과한 관세를 언급했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한국의 경우 그 파장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제기되지만, ‘트럼프식 상호관세’가 일반적인 상호관세의 의미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도 사정권 안에 들어갈 수 있다.

한미 FTA를 체결하면서 한국은 품목 수 기준으로 99.8%, 금액 기준으로 99.1%의 상품에 대해 대미 관세를 최종 철폐하고, 미국은 품목 수 및 금액 기준으로 대한국 관세를 전면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2022년 3월 발간된 한국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자료에 따르면 그 당시 품목 수 기준으로 양국 모두 98% 이상의 상대국 상품에 대해 관세 철폐를 완료했다.

그러나 미국이 무역적자를 이유로 상호주의에 어긋난다고 주장할 경우 주요 대미 무역 흑자국 가운데 하나인 한국도 표적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 작년 한국은 대미 무역 흑자액 557억달러(약 81조원)를 기록해 미국 무역적자액 ‘8위’ 국가에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워싱턴DC 백악관에서 7일(현지시간) 정상회담을 하기 전 악수를 하고 있다. [로이터]

일본의 경우 상호관세의 직격탄은 면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일본의 대미 관세율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에 속해 타격이 덜할 것으로 보인다고 10일 보도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불공정 무역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미국의 모든 품목에 대한 단순 평균 실효 관세율은 3.3%다. 일본은 3.9%로 미국보다는 다소 높지만, EU(5.1%), 중국(7.5%), 터키(16.8%), 인도(18.1%)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일본은 쌀 등 농산물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지만 공업 제품은 관세 철폐가 진행되고 있다. 농산품을 제외하고 보면 일본의 실효 관세율은 미국보다 낮으며 주요 국가 중에서도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경제산업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구상하는 상호 관세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면서도 “일본은 주요 국가들 가운데 관세율이 낮은 편이기 때문에 도입되더라도 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일본 자동차에 대한 관세부과 여지는 남아 있다.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조시 립스키 지리경제학센터 선임 이사이자 전 국제통화기금(IMF) 고문은 트럼프 행정부가 캐나다와 멕시코산 자동차와 부품에는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주요 자동차 수출국인 한국과 일본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것은 “전략적으로 말이 안 된다”라고 짚었다.

그는 북미 자동차 공급망에 관세를 부과하면 한국과 일본에 반사 이익이 가는 “매우 이상한 역학”이 된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 일본산 자동차 및 부품에도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을 조심스레 제기했다.

닛케이는 “일본의 주요 수출 품목인 자동차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려는 상호 관세에 대한 정보를 신속히 수집해 대응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전했다.

철강·알루미늄 다음 표적은?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 다음 표적으로는 석유제품과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입품이 점쳐진다.

트럼프는 지난달 31일 기자들에게 관세 부과 계획을 간략히 소개하는 자리에서 오는 18일을 석유와 가스 관세 부과 시점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걸림돌은 인플레이션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4일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보편 관세를 선포하면서 원유 등 캐나다산 에너지에만 10%의 비교적 낮은 관세를 적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내에서 처리되는 원유의 약 40%가 해외에서 수입되고 이중 약 60%가 캐나다산이다. 캐나다산 원유에 고관세를 부과할 경우 이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은 자명하다. 미국의 멕시코산 수입 비중은 7%에 불과하다.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 부과 유예 조치가 오는 3월로 유예된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산업 겨냥 관세 부과도 다음 달로 미뤄질 가능성은 남아있다.

EU의 자동차도 관세 유력 대상이다. 미국와 유럽의 자동차 관세율이 상호 맞지 않은데다 EU를 콕 집어 조만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밝혔기 때문이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럽 정상들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내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날 차기 총선 토론회에서 미국의 관세에 맞서 ‘고통을 줄 대응 방안’(list of cruelties)이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 외교적인 표현으로 설명하자면, 유럽연합(EU)은 1시간 내에 대응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CNN과 인터뷰에서 “관세를 부과한다면 미국의 물가가 오르게 된다. 그것을 원하느냐”며 유럽과 미국의 경제 모두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EU가 “우리 자신을 위해” 미국의 움직임에 대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이와 함께 EU는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내리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베른 랭 EU의회 국제통상위원장은 지난 7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EU는 미국산 자동차 관세율을 미국이 EU산에 부과하는 2.5%에 가까운 수준으로 낮출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협상을 바란다고도 했다.

한국 품목별 수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품목에는 한국의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도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반도체를 비롯해 석유, 가스, 의약품 등에 대한 보편관세 차원의 별도 관세 부과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궁극적으로” 반도체도 관세 대상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만의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TSMC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10일 대만언론에 따르면, TSMC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내 반도체 생산 정책에 협조해 미국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10∼11일 이틀간 미국 애리조나주 공장 단지에서 열리는 TSMC 이사회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도체 정책에 대한 투자 대응 등이 핵심 안건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특히 이사회에서는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21 팹(fab·반도체 생산공장)에 1.6㎚(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신규 건설안과 관련한 투자가 결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트럼프의 반도체 관세 카드가 관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미국 현지에 반도체 공장을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