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發 관세 난타전…‘수출 효자’ 기업들 초비상

대미 수출 51% 차업계 대응책 분주
HBM 북미 매출 폭증 반도체 초긴장
가격 경쟁력 약화 ‘공급망 조정’ 검토
무역불균형 이슈땐 직접 영향권 우려


울산 북구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부두에 수출용 차량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현대차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든 철강 및 알루미늄에 대해 25%의 관세를 물리기로 한 데 이어 자동차와 반도체, 의약품에 대해서도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본격적인 ‘관세 난타전’이 예상된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수출액 중 대미 비중은 18.3%로 중국에 이어 2위다. 국내 ‘수출 효자’ 종목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주요 기업은 미국 내 생산량을 높이는 등 시나리오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자동차 수출액 중 절반이 미국…현지 이원화 생산체계 구축 등 대비=11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지난해 3분기 보고서를 제출하고 북미 지역 매출을 별도 공시한 100개사를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의 지난해(1∼3분기) 북미 매출은 전년 동기(262조2714억원)보다 19.5%(51조2516억원) 늘어 313조5231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조사 대상 기업의 전체 매출도 1042조1534억원에서 1117조3468억원으로 증가했으나, 북미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5.2%에서 28.1%로 2.9%포인트 상승하며 의존도가 더욱 높아졌다.

특히 북미에서 매출이 급격히 증가한 반도체를 포함한 정보기술(IT)·자동차·제약·바이오 등에 대한 관세가 현실화하면 국내 기업의 타격이 클 전망이다. 무엇보다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완성차업계는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검토 언급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완성차업계 고위 관계자는 “(미국 행정부의) 구체적인 관세 방안이 나오지 않아 현재로서는 상세한 내용 파악에 주력하는 단계”라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시나리오별로 대응책을 고민하고 있고, 각국 정부의 움직임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수출 효자 품목’으로 꼽히는 자동차는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의존도가 빠르게 높아졌다.

한국무역협회의 ‘2024년 대미 수출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對)미국 자동차 수출액은 347억달러(약 50조4000억원)로 대미 수출품목 가운데 단연 1위에 올랐다. 반면 수입액은 21억달러(약 3조500억원)에 불과했다. 특히 전체 자동차 수출액(683억달러) 가운데 미국의 비중이 50.8%에 달하면서, 전년(47.1%) 대비 대미 의존도가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차는 지난해(1∼3분기) 북미에서 57조382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49조509억원) 대비 17%(8조3317억원) 증가한 수치다. 기아도 같은 기간 43조7245억원에서 48조9473억원으로 12%(5조2228억원) 매출이 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미·일 정상회담 직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가 자동차를 공급하지 않는데도 우리에게 파는 경우들이 있는데, 우리는 이걸 동등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상호 관세 가능성에 대해 직접 언급했다.

업계에서는 자동차 관세와 관련 미국의 첫 번째 타깃은 유럽연합(EU)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EU가 미국 자동차에 10%의 관세를 부과한 반면, 미국은 유럽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만 부과하고 있다”면서 이를 두고 ‘불공정 무역’이라고 주장해 왔다.

한국의 경우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관세 없이 자동차를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어 상호관세 문제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무역 불균형이 이슈가 될 경우 관세 부과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 현대자동차그룹은 국내와 현지 이원화 생산체계 구축 등으로 본격적인 대비에 나설 방침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미국에서 170만8293대를 판매했으며, 이 가운데 절반을 한국에서 생산해 수출했다.

현대차·기아는 올해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가는 조지아주 신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통해 미국 판매량의 60~70%를 현지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HMGMA는 연산 최대 50만대 규모로 기존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 조지아 공장까지 더하면 미국에서만 100만대 생산 체제를 갖추게 된다.

백악관이 2일 배포한 설명자료에서 현대차그룹이 미 조지아주에 건설한 HMGMA을 ‘관세 카드 효과의 모범사례’로 꼽은 점은 긍정적인 측면으로 지목된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는 8일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현대차그룹은 40년 가까이 미국 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에 투자한 금액만 205억달러(약 30조원)”라며 그동안의 기여를 강조했다.

▶반도체, AI 성장에 북미 매출 폭증…美中 사이서 ‘진퇴양난’=반도체의 경우, 아직은 대미 수출 비중이 높지 않다. 그러나 인공지능(AI) 열풍과 함께 북미 시장 의존도가 늘어나는 추세여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메모리 수출액(720억달러)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0.4%(3억달러)에 그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과 한국에 메모리반도체 생산 기지를 두고 있다. 생산된 메모리는 주로 대만, 베트남 등 다른 국가에서 조립·가공을 거쳐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난해 엔비디아, AMD 등 빅테크 기업들의 AI 가속기에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매출이 늘어나며 북미 매출은 크게 증가했다.

SK하이닉스의 2024년 3분기 누적 미국 매출액은 27조3058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58.8%를 차지했다. 전년 동기(2023년 3분기) 9조7357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며 3배 가까운 성장이다. 전체 매출 중 미국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도 13.4%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도 미주 지역 매출이 68조2784억원에서 84조6771억원으로 24% 증가했다.

트럼프의 반도체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국내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 경쟁력이 단기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글로벌 IT기기 수요 부진과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범용 메모리 저가 공세로 상반기 실적 악화가 예상된다. 여기에 트럼프발 관세 위협까지 더해지며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수 있단 지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서는 당장 미국 내 메모리 생산량을 늘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2027년 양산 목표로 미국 인디애나주에 HBM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텍사스주 오스틴에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 중이고 인근 테일러에 신규 공장을 건설 중이다. 파운드리 공장 일부 라인을 메모리 양산으로 변경할 수는 있으나, 여기에도 추가 자본과 시간이 소요된다. 양대근·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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