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액션·CG로 제작비 2600억여 원
볼거리 빼곤 남는 건? 메시지 부재 비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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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캡틴 아메리카가 된 전직 팔콘 샘 윌슨은 새로운 비브라늄 날개를 탑재했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스틸컷 |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와칸다에서 선물 받은 비브라늄 소재 날개를 장착한 뉴 캡틴 아메리카 샘 윌슨(앤서니 마키 분). 날개 달린 캡틴 아메리카는 그 자체로 네이비실(Navy Seal, 미 해군 소속 특수부대)의 ‘전투기 1대’로 카운팅된다. 캡틴이 목표지점에 이르러 날개를 접고 하늘에서 땅으로 수직낙하 하는 모습은 짜릿한 쾌감까지 선사한다.
12일 개봉한 영화 ‘캡틴 아메리카:브레이브 뉴 월드’는 마블 영화답게, 엄청난 자본(제작비 1억8000만 달러, 한화 약 2614억원)이 투입된 화려한 컴퓨터그래픽을 선보인다. 눈에 거슬리는 미진한 특수효과 따위는 없다.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라면 예고편에 늘상 등장하는 ‘스펙타클’이라는 홍보 문구가 모자람 없이 알맞다.
하지만 문제는 화려한 액션 장면을 제외하고 서사가 진행되는 보통의 장면들은 긴장감과 몰입을 불러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캡틴이 미합중국 대통령이 된 새디우스 로스(해리슨 포드)와 재회 후 국제적인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전 세계를 붉게 장악하려는 사악한 음모 뒤에 숨겨진 존재와 이유를 파헤쳐 나간다는 내용이다.(※아래부터 스포일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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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스틸컷 |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2편 ‘윈터 솔져’(2014) 때부터 ‘팔콘’으로 활약한 샘은 지난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에서 캡틴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로부터 비브라늄 방패를 건네받고 그의 후계자로 지명된다. 초인적 능력을 부여하는 슈퍼솔져 혈청을 맞지 않은 순수 인간 상태의 캡틴 아메리카다. 하지만 원년 어벤져스 멤버들은 엔드 게임을 마지막으로 해체됐기에 고립무원의 무사(武士)가 된 샘은 로스 대통령과 협력하는 중이다.
영화의 기본 설정은 비브라늄보다 더 강한 우주 물질인 ‘셀레스티얼 매스’가 인도양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로스 대통령은 모두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셀레스티얼 섬을 개발하는 조약을 프랑스, 인도, 일본과 맺고, 그곳에서 발견된 비브라늄보다 단단한 아다만티움 광석을 전 세계에 공평하게 배분하려고 한다.
그런데 아다만티움 광석의 샘플을 도둑맞는 일이 벌어진다. 샘은 인질을 구하고 샘플을 되찾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작전 성공 후 백악관에 초청받은 샘은 그의 멘티이자 새로운 팔콘인 호아킨 토레스(대니 라미레즈)와 친구 이사야 브래들리(칼 럼블리)와 함께 방문한다. 하지만 회담 장소에서 이사야와 몇몇 인물들이 어떤 노래가 흘러나오자 갑자기 돌변해 로스에 총을 쏘며 테러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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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팔콘. 현직 팔콘 호아킨 토레스(왼쪽·대니 라미레즈)와 전직 팔콘이자 현직 캡틴 아메리카인 샘 윌슨(앤서니 마키) |
치매환자처럼 자신이 벌인 테러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이사야에게 이상함을 느낀 샘은 그 배후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어벤져스 원년 멤버인 헐크(마크 러팔로)의 피에서 나온 감마선에 감염된 ‘새뮤얼 스턴스’가 바로 이 모든 일을 꾸민 배후임을, 그리고 스턴스가 로스와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임도 알게 된다. 이번 캡틴 아메리카 편의 빌런인 스턴스는 감마선에 감염되고도 헐크의 가공할 힘은 물려받지 못했으나 비상한 지능만은 갖게 됐다는 설정이다.
마블 히어로 영화에서 메인 빌런이 베일을 벗으면 앞으로의 이야기는 그저 어떻게 캡틴이 빌런을 격퇴할 지만 남는다. 관객들은 캡틴이 얼마나 시원하고 파괴적인 액션을 보여줄까 기대할 뿐이다. 그러니 영화가 아무리 긴 시간을 할애해 심각한 투로 로스가 스턴스와 어떤 모종의 계약을 뒤로 맺었고, 어쩌다 둘의 사이가 틀어졌는지 설명해도 관심 밖의 일이 된다.
로스가 하루 세 번 알약 통에서 꺼내 먹는 흰색 정제 알약은 사실 뻔한 장치다. ‘저 알약이 나중에 어떤 반전을 선사하겠구나’ 정도의 예상은 수십 년간 마블 영화를 본 팬들이라면 쉽게 할 수 있다. 스턴스는 로스에게 배신당하면서 이 알약에 감마선을 넣기 시작했다. 로스의 체내에 쌓이는 감마선의 농도는 해가 갈수록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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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내에 쌓인 감마선이 작용하면서 레드 헐크로 깨어난 새디우스 로스 |
육체적인 능력으로는 절대로 캡틴과 대적하지 못하는 지능형 빌런 스턴스는 영화의 클라이맥스 직전에 체포된다. 대신 스턴스가 괴물로 키워낸 로스가 붉은 헐크로 깨어나 캡틴과 최후의 전투를 벌인다. 캡틴의 비브라늄 날개도 잠자리 날개 찢듯이 뜯어내 버리는 가공할 괴력의 레드 헐크는 불타는 트럭에 깔려도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는다. 그래서 비브라늄 날개를 잃어 맨몸이 된 캡틴이 최후의 수단으로 로스의 딸 베티를 거론하며 ‘딸 얼굴을 보려면 그만 행패를 부리라’고 하는 감성에 기대 설득하고, 또 그 한마디에 레드 헐크가 그저 스르르 녹아버리는 전개는 사실 맥이 빠진다.
요약하자면,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늘 먹던 ‘앙꼬 품은 빵’이다. 앙꼬(액션)의 맛은 늘 그랬듯이 훌륭하다. 아는 맛이다. 그러나 회차가 거듭될수록 물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새로워지려고 노력하는데도 전달이 안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관성에 젖어 단골 장사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