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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가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광우 기자. |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상승”
기후 위기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숫자. 많은 이들이 1.5도, 혹은 2도 이상 지구 기온이 상승할 경우, 인류가 멸망의 길로 빠질 거라고 경고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현재의 지구는 이미 ‘멸망’ 문턱에 진입했다. 지난해 지구 평균 기온은 처음으로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 올랐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시급한 환경 정책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어떻게든 ‘마지노선’ 아래로 기온을 낮추기 위해서다.
하지만 20여년 간 한반도 기후·환경을 연구한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의 입장은 다르다. 그는 “1.5도라는 근거 없는 숫자에만 치중한 실수”라고 세태를 비판한다.
특히 그는 신속함 만을 추구하는 기후 위기 대응 방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기온 상승에만 매몰된 정책이 되레 여타 환경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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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가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광우 기자. |
박정재 교수는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라는 기준을 지키지 않을 경우, 인류 사회가 붕괴할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근거가 없는 얘기”라며 “숫자에만 매몰된 기준이 환경 정책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기온 상승 등 기후 위기에만 치중해 있는 환경 문제를 ▷토양·해양 오염 ▷생태계 파괴 ▷생물다양성 감소 등 여러 분야로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나의 부분에만 치중한 환경 정책이 되레 다른 문제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가 언급한 대표적인 예시는 ‘재생에너지 발전’이다. 탄소 배출이 적은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을 늘리기 위한 정책이 되레 토양·해양 오염을 일으키며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는 목적만 가지고, 여타 환경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주먹구구식으로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발생하는 토양 침식과 산림 훼손은 주변 생태계를 붕괴하는 데다, 농민들의 먹거리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혹자는 모든 부작용을 고려할 만큼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박 교수는 환경 정책을 ‘속도전’으로만 보는 시각이 되레 패착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다소 김빠지는 소리라고 볼 수도 있지만, 빨리 해결하려다 오히려 더 느려질 수 있는 게 지구 생태계 문제”라면서 “환경 오염, 생물다양성 감소 등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한 정책 설계 시스템을 도입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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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발전기.[게티이미지뱅크] |
박 교수가 ‘기온 상승’에만 집중된 환경 문제에 대한 시각을 넓히기 위해 제시한 개념은 ‘인류세’. 지질학자들은 지구 생태계에 격변이 일어났을 때를 기준으로 지질시대를 구분한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1만1700년 전부터 이어져 온 ‘홀로세’ 시대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1950년대를 기준으로 ‘인류세’로 지질시대를 새로 구분해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시기부터 지층에 플라스틱, 콘크리트 등 부산물이 누적됐으며,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격히 증가하는 등 지구 환경에 큰 변화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에 박 교수는 지리학적 개념을 넘어 환경 문제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인류세’를 보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는 환경 문제라고 하면 ‘기후 위기’, ‘지구 온난화’ 같은 기온 상승에만 치우친 인식이 대부분”이라며 “인간이 환경 전반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 전제된 ‘인류세’ 개념을 확대해, 지구 생태계 전체가 위기에 닥쳤다는 인식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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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에 폭설이 내리고 있다. [연합] |
박 교수는 최근까지 과거 역사 문헌, 지질 자료 등을 통해 한반도의 기후 역사를 연구했다. 지금처럼 기온이 높았던 과거 상황이 충분히 파악할 경우, 향후 기온 상승에 따른 환경 변화도 더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기후가 정확히 기록된 시기가 그리 길지 않은 탓에, 향후 예측 모델을 정확히 만드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과거에서 자료를 생산해, 예측 모델을 개선하는 데 활용하는 작업에 일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과거 기후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한반도에서 가장 우려해야 하는 부분은 혹한, 폭우, 태풍 등 ‘기상 이변’이다. 지구의 온도 변화가 급작스럽게 이뤄질 때마다 기상 이변이 빈번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역사 문헌 자료를 통해 분석한 결과, 온도가 갑자기 올라가거나 내릴 때 폭우·가뭄·태풍 등 기상 이변이 더 많이 발생했다”며 “향후 우리나라에도 기상 이변 빈도가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해수면 상승이나 산불, 태풍 등 환경 문제로 인한 피해가 심한 나라와 비교해서는 안전한 나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향후 환경 정책의 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모두가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피해가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박 교수는 1999년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 석사를 취득하고, 미국 UC버클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국내로 돌아와 20여년간 생물지리학·고생태학·고기후학 분야 연구를 진행했다. 최근에는 각종 매체를 통해 대중들에 ‘인류세’ 개념을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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