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12일 서울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87체제 극복을 위한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진·주소현 기자] 보수 진영의 잠룡들이 물밑에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13일 탄핵심판 변론을 마지막으로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연일 정치권 원로들과 접촉하고 메시지를 내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12일 서울시·서울연구원 공동 주최,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실 주관으로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개최된 ‘87체제 극복을 위한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에는 당 지도부를 포함해 전체 의원(108명)의 절반에 달하는 48명의 현역의원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처음으로 국회를 찾아 대선 아젠다 중 하나로 손꼽히는 개헌 청사진을 띄운 자리다.

오 시장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번 토론이 대선 행보와 연계돼 해석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지만, 당 내에서는 “대선 출정식 같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친윤(친윤석열)·친한(친한동훈) 등 계파를 불문한 현역의원 뿐만 아니라 원외 당협위원장 10여명, 김병수 김포시장 등이 토론회를 찾았고, 참석 행렬은 토론회가 시작된 지 30분 가깝도록 이어졌다. 오 시장이 개회사를 마친 뒤에는 “오세훈” 연호가 나오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로 인해 이날 행사를 사실상 ‘세 몰이’로 해석하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여권 내 오세훈계 인사 대다수가 지난 총선 낙선의 고배를 마시며 국회 입성에 실패했지만, 유력 주자로서 입지를 재확인했다는 것이다. 한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그동안 국회에서 개헌 토론회가 여러 번 열렸는데 이렇게 많이 (현역이) 온 적이 없지 않나”라며 “다들 (오 시장에게) 얼굴도장 찍으러 온 것”이라고 말했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같은 날 잠행을 깨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친윤계로 분류되는 조정훈 당 전략기획부총장의 지원이 있었다. 지난해 7·23 전당대회에서 친윤 당권 주자로 나섰던 원 전 장관은 “지금은 공정한 헌법재판이 되도록 모든 힘을 기울이는 게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라며 헌법재판소에 대한 비판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는 13일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탄핵심판 및 내란의 핵심 진술이라고 할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의 ‘의원 끌어내라’는 진술이 민주당 의원들의 공작이자 기획이었다는 증언이 나왔다”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국민의힘 소속인 성일종 국회 국방위원장이 전날 대정부질문 도중 “지난해 12월 6일 김병주 민주당 의원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을 회유했다”는 김현태 707특임단장(대령)과의 면담 중 발언 일부를 공개한 데 따른 것이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관련 헌법재판소 규탄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오른쪽은 조정훈 국민의힘 전략기획부총장. [연합]

원 전 장관은 “이렇게 공작 의심 정황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헌재가 탄핵심판을 반헌법·불법 논란까지 자초하며 황급히 종결하려 한다면, 헌재는 머지않아 국민의 심판, 역사의 심판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청계재단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약 1시간 동안 예방한 직후 “(이명박·박근혜·윤석열 대통령) 세 분은 똑같이 당내 배신자들 때문에 당하는 치욕”이라는 메시지를 냈다. 13일에도 페이스북에서 “우리 당에서 비상계엄에 찬성한 사람은 없습니다만, 탄핵에 찬성한 반란자들이 일부 있다”며 “앞으로 우리 당에서 정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홍 시장의 메시지는 원 전 장관과 마찬가지로 강성 보수층 정서를 고려한 것으로 해석됐다.

유승민 전 의원도 설 연휴 이전 ‘정치적 스승’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예방하는 등 보수 진영 인사들과 물밑 접촉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 전 의원은 통화에서 “총재님을 몇 달에 한 번씩 찾아뵙는 건 25년째 하던 일”이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 언론 인터뷰 등 공개 행보를 본격화한 유 전 의원은 내달 청년층과 접점을 늘릴 계획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연휴 기간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를 만난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한 전 대표의 본격적인 정치권 재등판 시점으로는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변론이 최종 종료된 이후 이르면 이달 말이 거론된다. 친한계 정성국 의원은 전날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정권을 재창출하고 보수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한동훈이 대안이구나’ 하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그러니까 너무 늦게 나올 수는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