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대화전 수싸움 ‘몸값 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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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는 모습 [게티이미지] |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직후 강경일변도로 충돌했던 북미가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서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무력시위를 펼치며 거친 언사를 주고받았던 8년 전과 달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스트롱맨 간 브로맨스’를 과시하며 향후 대화와 협상에 앞선 수싸움을 벌이는 모습이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수 차례 만남에도 불구하고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빈손’으로 그쳤음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이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당시 북미협상 실무를 맡았던 앨리슨 후커 전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선임국장을 국무부 정무차관으로 지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각국 정상들과 연이어 정상외교 일정을 수행하는 등 분주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주 이스라엘과 일본 정상을 만난데 이어 이번주엔 요르단 국왕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13일(현지시간)엔 모디 인도 총리를 만난다.
통상 미국은 신행정부 출범 3개월에서 6개월 사이 주요 대외정책 검토를 마치고 큰 흐름을 정립하는 만큼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서 향후 외교 우선순위를 엿볼 수 있다.
일단 정상외교 일정을 감안하면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외교·안보 전략을 수립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특히 북한에 지속적인 유화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미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도 김 위원장과 관련해 “김정은과 잘 지내면 모두에게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언론 인터뷰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와 대화조차 못했을 것”이라며 “나는 누구보다도 김정은을 잘 안다”고도 했다.
이는 1기 행정부가 출범했을 때와 확연히 다르다. 2017년엔 북한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메가톤급 도발로 미국의 대북기조에 강하게 반발했고, 북미는 상대 정상을 겨냥해 ‘망령든 늙다리’, ‘꼬마 로켓맨’ 등 자극적인 언사를 쏟아냈다.
아직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은 존재한다. 이시바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비핵화 등 문제에서 인식을 함께했다”며 “여러 형태로 (북미) 접근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보다 구체적인 전망도 나온다. 하반기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과 성과를 내야 하는 김 위원장이 이 이상 대화를 미루는 ‘눈치게임’만 벌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커 전 국장을 국무부 정무차관에 지명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후커 전 국장은 트럼프 1기 시절 백악관에서 근무하며 북미 대화에 깊이 관여한 바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선 주한미국대사 후보로 거론됐을 정도다. 만일 북미대화에 대해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진다면 후커 전 국장의 역할이 부각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 이어 조선중앙통신 논평, 국방성 대변인 담화로 발신주체를 변경해가며 대미메시지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근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와 한미 연합훈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를 두고 본격적인 북미대화 재개에 앞서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의도적으로 긴장을 조성해 미국의 태도를 보고, 협상에 나설지 여부를 결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핵 고도화의 명분으로 미국의 한미연합훈련과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내세우고 있다”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것들이 중단되면 협상의 장에 나갈 수 있다는 간접적인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양 교수는 “북미 양측 모두 대화 필요성엔 공감하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미대화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지만 북미대화와 미러대화는 연계돼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려면 북미관계 발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장은 “미국으로서는 북미대화에 그렇게 목을 매고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은 여유가 있다”면서 “북한도 당장 대화에 응할 마음은 없고, 몸값 올리기에 치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서정은·문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