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롱고리아 “라틴계 활동 더 많아져야”
뉴욕타임스 “다양성 정책? 마케팅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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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개봉하는 디즈니의 실사화 영화 ‘백설공주’에서 주인공 백설공주를 맡은 라틴계 배우 레이첼 지글러[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빨간 머리의 북유럽 백인으로 그려진 인어공주 ‘애리얼’ 역을 실사판에서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에 맡긴 데 이어 디즈니 최초의 공주인 백설공주는 콜롬비아 혈통의 라틴계 배우 레이첼 지글러가 맡는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왕자는 원작 그대로 백인 남자배우가 연기한다. 모순적인 디즈니의 행보에 대해 말이 많은 까닭이다.
13일 영화계 등에 따르면, 디즈니의 영화 ‘백설공주’가 드디어 내달 개봉일을 확정했다.
당초 지난해 3월 개봉할 예정이었던 ‘백설공주’는 미국배우조합의 파업으로 1년가량 연기됐다. 디즈니가 개봉일을 차일피일 미루던 그 1년 새 하필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폐지 의사가 확고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뜻하지 않게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한 상황에서 개봉하게 됐다.
이미 디즈니는 회사 경영 방향을 일부 조정하고 있다. 최근 임원 평가 지표 중 ‘다양성 및 포용성’ 부분을 삭제하고 ‘인재 전략(Talent Strategy)’으로 대체한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에서 ‘PC(정치적 올바름)주의’의 총본산으로 여겨지는 디즈니의 다양성 정책이 앞으로 5년 동안 어떤 변화를 추가적으로 겪게 될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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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
일단 백설공주는 오랜 ‘원작 파괴’ 논란을 딛고 라틴계 여배우와 함께 드디어 관객을 만난다. 인어공주보다도 원작 파괴 반감이 거셌던 이유는 백설공주의 출생과 이름이 모두 ‘흰 피부’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설공주의 친모인 왕비는 어느 날 흑단나무로 만든 자수틀로 작업을 하던 중 그만 손을 찔려 세 방울의 피를 하얀 눈 위에 떨어뜨렸다. 왕비는 이를 보고 ‘피부가 눈처럼 하얗고, 입술은 피처럼 새빨갛고 머리는 흑단처럼 까만 아이’를 가지길 소망했고, 정말로 그런 딸을 낳아 이름을 ‘백설(Snow White)’로 짓는다.
공개된 영화 예고편에서는 갈색 피부의 백설공주가 ‘백설’이란 이름을 갖게 된 이유로 눈보라가 몰아치던 겨울날 태어난 데다 그의 눈처럼 맑고 깨끗한 심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외면보다 내면을 중시하라는 메시지다. 또 원작 애니메이션에선 백설공주가 독사과를 먹고 잠들었다가 왕자의 키스를 받고 깨어나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끝나지만, 예고편은 백설공주가 돌아와 사악한 계모 왕비에 주도적으로 맞서는 장면을 보여줘 상당한 각색이 들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곱 난쟁이 캐스팅에 대해선 디즈니가 차별과 고정관념의 오랜 피해자인 ‘난쟁이’를 그대로 등장시키면 대중의 비판을 받을 것으로 의식해 실제 인물이 아닌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대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이와 함께 할리우드의 왜소증 배우들에게 주어진 기회마저 박탈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왜소증 배우인 피터 딘클리지는 “(디즈니가) 어떤 면에서는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일곱 난쟁이에 관한 한 뒤처진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고 뼈 있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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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화 영화 ‘인어공주’에서 에리얼은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가, 에릭왕자는 백인 배우 조나 하워 킹이 맡았다. 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
아울러 왕자 캐릭터는 여전히 백인 남성 배우를 기용하면서 디즈니의 ‘이중 잣대’에 대한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실사판 ‘백설공주’에서 왕자는 백인 배우 앤드류 버냅이 맡았으며, 앞서 인어공주에서도 에릭 왕자를 백인 배우 조나 하우어 킹이 연기했다.
엑스(X), 레딧(Reddit)과 같은 온라인커뮤니티에서는 “왜 다양성은 항상 여성 주인공에게만 적용되나?”, “상징적 캐릭터의 인종을 바꾸려면 전체 캐스트에 일관성 있게 적용해야 하지 않나?” 등의 날 선 질문이 쇄도한다.
진보적 매체로 꼽히는 뉴욕 타임스조차 여러 오피니언 칼럼을 통해 ‘디즈니의 캐스팅 전략이 진정한 다양성 추구인지, 아니면 그저 마케팅 전략인지 모르겠다’고 의구심을 표현한 바 있다.
물론 지지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라틴계 할리우드 배우 에바 롱고리아는 지글러의 백설공주 캐스팅을 축하하며 “이제 할리우드에서 상징적인 역할에 라틴계 배우들을 보는 시대가 왔다. 할리우드의 다양성은 너무 오랫동안 미뤄져 왔다”고 밝혔다.
또 지글러는 ‘라틴계’가 아닌 유럽 백인에 가깝기 때문에 애초에 인종을 걸고 넘어져선 안된다는 반론도 나온다. 실제로 지글러는 콜롬비아와 폴란드 혼혈로, 유럽에서 태어나 미국 북동부 뉴저지에서 자랐다.
백설공주/ 감독 마크 웹· 출연 레이첼 지글러, 갤 가돗, 앤드류 버냅/ 3월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