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한국산 상품가격 5% 올라
“미국이 공정하다 생각하는 관세
무역상대국에 부과하겠다는 것”
![]() |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현안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상호 관세’ 부과를 공식화하며 부가가치세(VAT·부가세)를 콕 집어 관세로 간주하겠다고 밝히면서 한국도 영향권에 놓이게 됐다.
부가가치세는 상품(재화)의 거래나 서비스(용역)의 제공 과정에서 얻어지는 부가가치(이윤)에 대해 과세하는 세금이다. 한국과 유럽,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부과되지만 미국에서는 부과되지 않는 소비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상호 관세 부과 결정이 담긴 대통령 각서에 서명하면서 검토 요인으로 각국이 미국 상품에 부과하는 관세와 함께, 비관세 장벽 또는 조치를 지목했다. 특히 각서에서 “부가세를 포함해 무역 상대국이 미국 기업, 근로자 및 소비자에게 부과하는 불공정하고 차별적 세금이나 역외 부과 세금”도 상호 관세 책정의 검토 요소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가세를 관세보다 더 징벌적인 세금이라고 평가하면서 부가세가 관세전쟁 확대의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미국의 판매세는 일반적으로 최종 제품 구매 시점에 한 번만 징수하는 반면 부가세는 제품이 공급망을 거치면서 부가가치가 추가될 때마다 부과된다는 점이 다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100달러에 자전거를 구매하는 경우 소비자는 자전거를 살 때 한 번에 판매세 전액을 낸다. 독일의 경우를 예로 들면 자전거 제조업체가 50유로에 철강과 알루미늄을 사서 자전거를 만든 다음 자전거 상점에 80유로에 넘기면 자전거 제조업체가 30유로만큼의 부가가치를 창출했다고 보고 30유로에 대해 부가세를 매긴다. 다시 자전거 상점이 소비자에게 이를 100유로에 판매하면 차액인 20유로에 대해 자전거 상점이 또 부가세를 내게 된다. 제조업체나 상점이 부가세를 내지만 이는 제조·유통비용에 포함돼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에 결국 최종 소비자에게 부담이 된다.
부가세는 원산지에 관계없이 자국에서 판매되는 상품과 서비스에 적용된다. 유럽으로 수입된 미국산 자동차는 유럽산 자동차와 동일한 부가세가 부과된다. 반면 관세는 수입품에만 적용되므로 현지 생산자는 내지 않는다. 이런 방식 때문에 부가세가 미국 수출업체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유럽의 평균 부가세율은 20%로 미국의 평균 판매세율 6.6%보다 훨씬 높다. 일본의 부가가치세는 10%다. 한국은 국내 제조 상품과 수입물품에 대해 똑같이 10%의 부가세를 부과하고 있다.
14일 우리 정부 관계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로 양국간 관세는 대부분을 철폐한 상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를 부가세에 적용할 경우 미국으로 수출된 우리 상품의 가격이 약 5% 올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여한구 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위원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상호관세는 각국의 관세, 비관세 장벽, 환율, 국내 세재, 정부조달, 기술장벽, 지적재산권 탈취 등 모든 관련 사항을 검토해서, 미국이 무역상대국에게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부가세도 미국에 대한 관세로 간주하겠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부가세를 부과하고 있는 유럽연합과 일본 등과 공조를 통해 대응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관세는 대부분 무세화돼 있어 타국에 비해서는 낫지만, 미국 통계에 따르면 2024년 660억달러 무역적자를 시현하고 있어 안심할 수는 없다”면서 “각종 비관세 장벽, 환율 등 미국이 비관세 무역장벽이라 제기할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해 문제소지를 최소화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기재부 세제실 한 관계자는 “미국이 상호관세를 적용해 수입물품에 상대국의 부가세를 적용시킬 경우, 학자들과 미국 소비자, EU 등의 반발이 클 수 밖에 없다”면서 “무엇보다 미국에서 수입하는 물품의 가격이 오르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상호관세로 부가세를 적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구글세 등 디지털세를 적용하지 않아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언급한 디지털세하고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이날 미국 백악관은 비관세 장벽의 대표적인 사례로 구글이나 애플 등 미국의 거대 다국적기업에 매겨지는 ‘디지털세’(digital service tax)를 내세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관련세를 도입하지 않아 무관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캐나다와 프랑스가 이 세금을 통해 미국 기업들로부터 매년 5억 달러 이상을 징수하고 있으며, 모든 국가를 통틀어 미국 기업에 연간 3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배문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