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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 연방정부의 통제권을 되찾은 직후 미국은 세계 경제에 대한 무역 전쟁을 시작했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트럼프의 25% 관세 시행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지만, 이는 전면 취소가 아니라 연기된 것에 불과하다. 많은 투자은행들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캐나다와 멕시코를 경기 침체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한편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 10% 관세는 예정대로 시행되어 전체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이 이미 평균 30%를 넘었고, 일부 제품은 50%를 초과했다. 이에 따라 중국의 실질 연간 성장률은 소폭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발 무역전쟁은 한국에 적어도 네 가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먼저, 한국은 철강 및 기타 금속의 주요 수출국으로서, 국내 철강 기업들은 미국 시장의 수요 감소로 인한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또한 최근 몇 년간 약 400억 달러 이상의 대미 무역 흑자를 기록해온 국가인 한국은 트럼프의 ‘관세 때리기’ 목록에 분명히 포함된다. 나아가 근시일 내 트럼프가 한국 수출품에 대해 직접 관세를 부과하지 않더라도, 중국 및 타 국가에 대한 관세로 인해 해당국 경제가 약화되면 한국의 대중 수출이 감소하면서 국내 경제가 간접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트럼프의 무역 전쟁이 전세계 경기 침체를 불러올 경우 한국 경제 역시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에 의해 유발된 글로벌 경기 침체에는 상호 배타적이지 않은 (즉, 독립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작용할 수도 있는) 두 가지 경로가 존재한다. 먼저 무역 경로를 살펴보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에 모든 국가에서 수입되는 상품에 최소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으며, 비교적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떄에는 미국이 무역 적자를 기록하는 상대국에만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혔다. 후자는 비교적 덜 극단적으로 들리지만, 미국이 사실상 대부분의 대형 및 중형 경제권과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실제로 미국의 15대 교역 상대국 중 무려 13개국이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한국, 일본, 독일, 베트남, 대만, 인도, 프랑스, 이탈리아뿐 아니라 미국의 3대 교역국인 캐나다, 멕시코, 중국까지 포함된다. 영국은 미국이 무역 흑자를 보는 몇 안 되는 대형 경제국 중 하나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미국 가정의 생활비를 증가시키고, 미국 기업의 생산 비용을 높이며, 상대국이 보복 관세를 부과할 경우 해외 매출을 감소시켜 미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그는 법인세 및 최고 소득층의 개인소득세 감세로 인해 줄어든 정부 세수를 보완하기 위해 관세 수익을 원하고 있다. 관세 때리기 정책과 감세 프로그램과의 연관성을 이해하면, 관세 부담이 결국 미국 가계 (특히 중산층 및 저소득층)에 전가된다는 사실은 트럼프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도 명확해진다. 물론 관세가 미국의 무역 적자를 줄이는 데 효과적일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을 수도 있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미국의 이번 관세 정책은 본질적으로 한국 및 기타 경제권 상품에 대한 전반적인 수요 감소를 초래해 부정적인 수요 충격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는 이미 심각한 경기 침체의 벼랑 끝에 놓인 여러 유럽 경제권에 특히 큰 타격이 된다. EU, 일본, 인도, 중국 등 주요 경제국들이 실질적 성장 둔화를 겪게 되면, 한국을 비롯한 국가들로부터의 수요가 줄어들 것이며, 이는 세계 경제에 연쇄적으로 부정적 충격파를 불러올 것이 자명하다.
단기적 세계 경제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것은 비단 글로벌 무역뿐만이 아니다. 트럼프 관세가 세계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을 두 번째 이유는, 미국 금리의 변화와 다른 경제권으로 전달되는 그 영향의 여파 때문이다. 트럼프가 약속한 수준으로 미국 관세를 인상하고 연준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미국 내의 수입품과 국산 상품 (수입품과 경쟁하거나 수입 원자재를 사용하는 상품)의 가격은 모두 상승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2%를 초과한 현 상황에서, 연준이 물가 상승에 손쓰지 않고 방관할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연준은 금리 인하 계획을 연기하거나,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을 상쇄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할 수도 있다. 금융시장은 연준이 이러한 대응을 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새로운 트럼프 관세 정책이 발표될 가능성이 커질 때마다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관세 위협이 완화될 때 약세로 전환되는 현상이 이 예측을 뒷받침한다.
최근 사례에 비춰 보면, 미국이 긴축 통화정책을 시행할 시 글로벌 유동성, 특히 달러 유동성이 위축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자산 대비 달러화 부채 비중이 높은 기업 및 정부는 금융적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으며, 채무 불이행의 위험도 커진다. 또한 전 세계 여러 중앙은행이 미 연준의 정책을 따라 금리를 인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달러 부채 비중이 크지 않은 국가의 기업과 가계 역시도 금융 환경 악화로 인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는 트럼프로부터 자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직접적 무역 영향과 간접적 금융 영향을 완화할 수 있는 세 가지 대응책을 시행할 수 있다.
먼저, 미국 수출품에 대한 트럼프 관세가 빠른 시일 내에 부과될 가능성이 있다면, 가장 효과적인 보복 조치를 창의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미국 상품에 대한 일반적 보복 관세는 트럼프의 결정 번복을 이끌어내기 충분치 않다. 일단 미국산 상품에 대한 높은 관세가 미 기업뿐 아니라 자국의 가계와 기업에도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과 같은 국가들이 대미 무역에서 보통 흑자를 기록하기 때문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미국산 상품 자체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반대로 트럼프는 이들 국가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더 다양한 상품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한국과 기타 국가들은 관세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EU 집행위원회가 비무역적 수단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EU의 ‘반 (Anti) 강제 조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U는 미국의 지식재산권 보호를 철회하여 EU 시민과 기업들이 EU 내에서 미국 소프트웨어 다운로드 및 영화 스트리밍을 무료로 이용하도록 허용할 수 있다.
또한 미국 은행 및 금융 서비스 기업의 EU 시장 접근을 제한하거나 거부할 수도 있다. 이러한 조치는 EU 기업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진 않으면서 미국 기업의 수익성에만 타격을 가한다는 특징이 있다. 미국은 지재권 및 금융 서비스 부문에서 대다수 국가와 큰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이에 대한 보복 조치를 취하는 경우 그 범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교역국이 상품 무역에서 흑자를 기록하는 만큼 보복관세의 범위가 제한되는 것과 유사한 원리다.
트럼프 대통령은 종종 관세를 무역과 상관없는 이슈와 엮기 때문에,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은 향후 몇 년간 EU처럼 보복 조치를 관세 이외의 영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폭넓게 고려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비무역적 보복 조치의 위협만으로도 트럼프의 관세 부과를 단념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일 결과일 것이다.
둘째로, 특정 국가의 수출품에 트럼프 관세가 부과될지 여부와 관계없이, 간접적이지만 경제적으로 중요한 금리 및 환율 조치를 항상 신중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각국 정부는 단기 외화 부채 비중이 외환 보유액에 비해 과도하게 커지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세계 기업들은 장기간 고금리가 유지될 가능성에 대비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수행해야 한다. 특히 한국 은행들은 국제 차입을 통해 영업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면밀히 이러한 취약성에 대비해야 한다.
셋째로, 개별 국가 차원의 대응을 넘어,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들이 공동 대응 조치를 모색하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 특히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 회원국 간 무역 장벽 완화 추진이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 가입 검토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나아가 한국-EU, 한국-호주, 한국-중국 간 추가적인 무역 및 투자 협정을 신속하게 추진하는 것도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트럼프발 무역 전쟁은 마치 가장 강력한 5급 태풍과 같다. 어마어마한 여파를 불러올 수 있지만, 적절한 사전 대비를 통해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