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대한민국 사교육시장…‘7세 고시’ 누구를 위한 시험인가?[추적60분]

추적60분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한국의 아이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교육은 가장 경쟁적이고, 가장 고통을 주는 교육이기 때문이다.”(르몽드지)

KBS 1TV ‘추적60분’이 14일 영유아까지 시험에 몰아넣는 대한민국 사교육 현실을 들여다본 <‘7세 고시’, 누구를 위한 시험인가>편을 방송했다.

인구가 감소하니 학령인구도 매년 감소하고 있는데, 사교육비 총액은 오히려 늘었나고 있다. 지난 1년 사이 학생수는 4만명이 줄었지만, 사교육비 규모는 10.8%나 상승했다고 한다. 2023년 사교육비 총액은 27조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왜 그럴까? 학원 시장이 학부모의 불안을 부추겨 선행학습 나이를 점점 더 어린 아이까지로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숫자만으로는 안되니까 신규고객 유치에 어린 아이들이 포섭된 양상이다.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10년 사이 3배나 늘어나 현재 847곳에 이른다. 한 유명 영유아영어학원의 한달 원비는 약 200만원. 4년제 대학 등록금보다 2배 이상 높다. 그런데도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렵다고 한다.

“문턱을 높이면 학부모들이 더 안달할 것이다.”

“학원도 돈을 벌어야 하는 사업이다. 신규고객유치에 가장 좋은 방법은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 ‘현재 너는 문제가 있어’라고 얘기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기존에 있던 방법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오면 이걸 해결해줄께’ 이 레퍼토리가 설득하기 가장 쉬운 구조다.”

“학원 입학 진도가 있다. 보통 자기 학년, 자기 학기 부분만 잘해서 갈 수 있는 학원들이 아니다. 선행을 어느 정도 해야 갈 수 있는 학원들이기 때문에 무리한 선행에 대한 관념이 확산되는 역할을 한다.”

학원 선생 또는 원장들의 이 같은 말들은 학원도 살아남기 위해 도를 넘는 마케팅을 하고 있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전문가들은 부모의 불안과 사교육시장의 이익, 학벌주의의 3각구도가 맞물려 대한민국 교육이 더욱 기형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추적60분’팀이 대치동 카페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학부형을 만나 인터뷰한 결과 “지금은 저희도 불안하기 때문에 학원이라는 기둥을 잡고 있는 상황이긴 한데…너무 달리는 분위기다 보니까 겁이 나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사교육을 시작하는 아이들의 연령대가 계속 낮아지면서 학부형의 부담은 날로 커질 수밖에 없다. 돈이 많은 사람이야 비싼 유아전문학원 교육비를 댈 수 있지만, 이들을 따라가려다 가랑이 찢어지는 ‘에듀케이션 푸어’(부채가 있음에도 높은 교육비를 지출하며 빈곤하게 사는 가구)를 양산하고 있다. 3세 수업을 하는 한 유아입시 전문학원의 한달 수업료는 무려 42만원~52만원선이었다.

이런 학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다. 과외를 받은 한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아 말더듬이가 된다거나, 처음에는 재미있다고 한 아이가 비교당하면서 더 이상 다닐 수 없다고 해 집에서 엄마와 함께 영어를 공부하는 케이스도 있었다.

‘7세 고시’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만 5, 6세 아이들이 일명 빅3, 빅10으로 불리는 유명 영어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보는 시험이다.

한때는 서울 일부 지역에서만 쓰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대한민국 전역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거기에 ‘이제 7세도 너무 늦다’란 인식이 퍼지며 ‘4세 고시’란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아이들은 대체 어떤 시험을 보고 있는 것일까.

4세, 5세가 본다는 ‘7세 고시’의 시험난이도는 어느 정도일까?

“(영어)문제유형은 수능시험 문제와 같습니다. 만 5세 아이들에게 추론을 물어보고 있거든요. 이건 지적인 학대에 이르는 수준이라고 생각해요.”(김현 ‘ㅇ’ 고교 교장, 29년차 영어교사)

“고1 모의고사 뒤에 나오는 장문독해를 지금 초등 1학년 아이들에게 풀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정지연 ‘ㅂ’ 중학교 20년차 영어교사)

‘추적60분’ 제작진은 지난 6개월간 다양한 현장에서 학부모, 학생, 학원 관계자, 전문가들을 만나며 대한민국 사교육 시장 현실을 밀착 취재했다.

-유아기에 ‘영어’ 진도를 빼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수학’을 달리는 황금 로드맵

지난해 11월 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건물 주변은 입학시험을 보러 온 아이들과 학부모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초등 전문 수학학원으로 알려진 이 학원은 전국 60여 개 지점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각에, 같은 문제로 입학시험을 치른다. 이날 시험에는 전국 초등학생 9,657명이 응시했다. 학원 측이 공개한 아이들의 평균 점수는 100점 만점에 19.5점. 21점만 맞아도 합격권이다.

난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한 이 학원의 입학시험 문제. ‘추적60분’팀은 이 학원의 실제 입학시험지를 입수, 서울대학교 재학생 5명과 함께 풀어봤다. 그 놀라운 결과가 방송에서 공개됐다. 점수는 36점~100점으로 다양하게 나왔다.

이들 서울대생들은 초등학생 2~3학년 문제라고 하자 깜짝 놀라며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문제” “실수하기 쉬운 문제” “나만 어렵나” “일반 아이들이 풀 수 없는 문제가 많다” “이런 문제를 어릴때 풀면 수학의 흥미를 잃어버리지 않을까…”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빠를수록 좋다? 점점 낮아지는 사교육 연령대. 4세 고시까지 등장.

요즘 학원가에서는 3대 고시가 성행 중이다. 유명 영어학원 입학시험인 7세 고시, 초등학교 입학 후 꼭 거쳐야 한다는 ‘ㅎ’ 수학학원 입학시험, 그리고 일명 영어유치원이라 불리는 유아 전문 영어학원 입학시험인 4세 고시가 그것이다.

‘4세 고시’ 준비는 어떻게 이뤄질까. 놀랍게도 제작진은 취재 도중 기저귀를 떼기도 전인 24개월 무렵 아이들을 위한 입시 전문 학원도 찾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알파벳 발음은 물론 손에 힘을 주어 연필 잡는 법까지 알려주는 학원. 사교육을 시작하는 아이들의 연령대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학원을 위한 학원, ‘새끼학원’까지 늘고 있다

‘고시’라 불릴 정도로 고난도의 문제가 출제되는 유명 학원들의 입학시험. 아이들은 이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입시 전문 과외를 받거나 일명 ‘새끼학원’으로 불리는 또 다른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학원 입학을 위해 또 다른 학원에 다녀야 하는 기이한 상황.

유명 학원들은 ‘어릴 때부터 학원에 다니며 선행을 해야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교육 기관들은 학부모들의 불안한 마음을 자극하며 계속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학업 스트레스에 병들어 가는 아이들

서울대학교 소아청소년정신과 김붕년 교수는 어린 나이부터 시작되는 학업 부담이 아이들의 뇌 발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4세에서 7세 사이는 전두엽 특정 부위들과의 연결망이 만들어지는 시기. 이 초기 단계에 문제가 생기면 아이들이 우울감이나 불안에 빠지고, 반동 형성으로 공격성이나 반항성이 나올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진다”-김붕년 교수 인터뷰 중-

대치동에서 정신건강의학과를 운영하는 이선화 원장은 “병원을 찾는 환자들 중엔 어릴 때부터 분노를 쌓아온 아이들이 많다”며,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났을 때는 이미 우울증, 불안증이 심각해진 상태”라고 말했다. 우울증을 앓는 아동과 청소년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 현실. 우리 아이들, 이대로 두어도 괜찮은 걸까.

-경쟁적인 교육, 출산율에 직접적인 영향 미쳐

이런 분위기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유아기 때부터 입시 경쟁이 시작되며, 학부모들의 부담 역시 커지고 있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1% 늘어나면 합계출산율이 최대 0.3% 감소한다는 최근 연구 결과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