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야경[연합] |
[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공직 생활 30년 동안 국가를 위해 무엇을 했나 돌아보면, 많은 정책을 입안하고 실제 현장에서 집행됐을 때의 뿌듯함이 있지만 아쉬움도 크다”
최근 만난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은 사회생활을 공직에서 시작했다. 일가를 이루고 자녀들의 학업을 모두 끝냈다. 고위공무원단에 들어가 지금은 ‘실장님’으로 불린다. 어느 하나 남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지만, 숨가쁘게 달려 온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정녕 자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회의감이 밀려온다.
중년의 자기 회고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대통령 탄핵 상황에서 세종 관가의 침체된 분위기가 그에게 투영돼 있었다. 탄핵이라는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기존의 정책들은 동력을 잃었고, 젊은 후배들의 이직률은 어느 때보다도 높다.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2023년 재직 5년 미만 공무원 중 퇴직자는 1만 3823명이다. 2019년(6663명)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6월 실시한 ‘저연차 공무원 대상 공직사회 조직문화 인식 조사’에서도 응답자 4만8248명 중 68.2%(3만2905명)가 ‘공직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낮은 금전적 보상’, ‘악성 민원’, ‘과다한 업무’, ‘조직문화에 대한 불만족’ 등 이직을 생각한 이유는 다양하다.
중앙부처가 모여 있는 세종의 분위기가 좋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정부세종청사의 불은 밤늦게까지 꺼지지 않는다.
경제부처는 당장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하면서 거세지고 있는 통상 압력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관세 이슈가 발 등에 떨어진 불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하는 대외경제현안간담회가 현재 관련 정부의 최고 회의체로 매주 1회 이상 열리고 있다. 회의를 준비하는 해당 과는 일정상 주말 출근을 해야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통상교섭본부를 중심으로 미국의 관세 정책 등 행정명령 동향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기 위한 전담팀을 24시간 가동하고 있다.
![]() |
정부세총청사 야경[연합] |
사회부처들도 현안 대응에 여념이 없다.
보건복지부는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연금 논의가 진행될 것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근무하는 이른바 ‘세븐일레븐(7-11)’ 근무날도 적지 않다.
재난업무 소관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지난 설 연휴에도 당직 근무로 인해 고향을 다녀오지 못하거나 설 당일 차례만 지내고 근무한 직원이 부지기수다.
언급하지 않은 다른 중앙부처들도 현안 대응과 정책 집행을 위해 불철주야하고 있다. 청사 주변 상가와 아파트에는 불이 꺼져도 청사 곳곳에는 자정이 다 돼도 불이 켜져 있는 이유이다.
최근에 퇴직한 공무원이 공직사회를 꼬집은 책을 내면서 공무원 사이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거짓말’. 다분히 자극적인 책 제목과 내용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없는 것은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 정부 부처에는 더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수선한 정치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제 할 일에 매진하는 세종 공무원들이 어느 때보다 소중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