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계열사 규정 없어”…규제 대상에 한계
플랫폼 규제 “통상환경 변화 종합 고려할 것”
‘하도급대금 지급보장 강화’ 종합개선책 추진
결혼업체 지역별 가격 및 분석정보 추가 공개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17일 영풍·MBK파트너스와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자료요청·의견청취 등 통상적 사건처리 절차를 거쳐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에 대해 면밀히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위가 고려아연 사태와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 위원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지난 1월 말 고려아연의 공정거래법 위반행위 관련 신고사건이 접수됐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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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연합] |
이는 국내 최대 비철금속 제련사업자인 고려아연이 경영권 방어 과정에서 해외 계열사를 통해 국내 계열사 주식을 매수한 건 ‘상호출자·순환출자 규정 위반’이라며 영풍·MBK 측이 신고한 사건을 말한다. 고려아연이 해외 계열사의 명의만 이용해 규제를 회피하는 탈법행위를 했다고 신고인 측이 주장하고 있는 만큼 이를 들여다보겠다는 게 한 위원장의 설명이다.
다만, 한 위원장은 “현행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의 ‘국내’ 계열사에 대한 상호출자와 순환출자는 원칙 금지되지만, ‘해외’ 계열사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어 해외 계열사가 개입된 경우 규제대상으로 인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부연했다.
미국 민·관·의회가 강한 우려를 드러내면서 ‘통상 리스크’로 떠오른 온라인 플랫폼 규제에 대해서는 “플랫폼 분야 경쟁 촉진, 입점 업체 보호를 위한 다수 법안이 이미 국회에서 발의돼 계류 중인 상황”이라며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른 통상 환경 변화 등이 종합 고려될 수 있도록 향후 법 논의 과정에서 국회와 협의하고 미국 측과도 지속적으로 소통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추진 중인 플랫폼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소수 거대 플랫폼 기업의 부당행위를 금지한다는 취지이지만, 미국 재계는 규제가 중국 기업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미국 기업에만 부담을 줄 것이라고 주장하며 공개적으로 반대해왔다. 앞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USTR) 지명자는 지난 6일 인사청문회에서 유럽연합(EU)과 한국 등의 온라인 플랫폼 기업 독과점 규제 움직임에 대해 질문받고서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최근 재조사를 시작한 국내 4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담합 의혹에 대해선 “업계 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조사나 심의 과정에서 세심하게 고려하겠다”고 약속했다.
한 위원장은 반도체칩 설계 소프트웨어 공급시장의 1위 사업자인 미국 시높시스와 4위 앤시스의 기업결합건과 관련해서는 “이달 초 전원회의 안건으로 상정해 심의를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회사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엔비디아, 애플 등 국내외 주요 반도체 사업자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
한 위원장은 “해외 사업자 간 결합이지만 로봇·인공지능(AI) 등 미래산업 경쟁력과 직결된 반도체 설계와 관련돼 국내 반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면서 “시장에 미치는 경쟁제한 우려를 심층적으로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작년 8월 시행된 공정거래법상 ‘기업결합 자진 시정방안 제출제도’를 적용한 최초 사례”라며 “시장 정보를 보유한 기업이 먼저 경쟁제한 우려에 대한 시정방안을 제출하면, 이를 고려해 시정조치를 부과하는 선진적·효율적 제도가 첫발을 내딛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 위원장은 관계부처와 민·관 합동 ‘광고대행 TF’를 신설해 민생 피해구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 광고대행 불법행위로 자영업자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플랫폼 사업자나 공공기관을 사칭한 온라인 광고대행 계약 체결, 효과가 낮은 키워드광고 등록 후 계약해지 시 과도한 위약금 부과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 위원장은 “이달 11일부터 ‘온라인 광고대행 사기 신고센터’ 운영을 시작했다”면서 “피해를 본 자영업자는 언제라도 사기죄에 해당할 수 있는 기만적 영업행태를 신고할 수 있으며, 다음 달부터는 분기별 TF 회의를 통해 사기업체 수사의뢰와 경찰 수사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올해 업무계획에 담긴 하도급·유통·소비자 분야 등의 주요 과제도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중소 하도급업체가 대금을 제때 지급받을 수 있도록 보호장치를 확대하는 종합 개선대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학계·법조계·사업자단체 추천 전문가로 ‘하도급대금 지급보장 강화 TF’를 구성했고 다음 주 1차 회의를 개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도급대금 일부를 묶어놓고 지급하지 않는 건설업계의 유보금 설정 관행을 ‘부당특약’으로 명시한 고시 개정도 다음 달까지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유통분야에서도 신속한 납품대급 지급방안을 마련한다. 직매입·특약매입 등 전통적 소매업의 대금지급 기한 적정성과 제도개선 필요성을 검토한다.
‘깜깜이 결혼 비용’ 문제 해결과 관련해서는 “지난달 24일부터 11개 협약체결 결혼식장·결혼준비대행업체가 필수·선택품목 가격을 공개했고, 추후 분기별로 변동사항을 업데이트할 것”이라며 “소비자원을 통해 전국 2000여개 결혼식장·준비대행업체에 대한 가격조사를 하고, 지역별 가격정보나 가격변화 추이 분석정보 등을 추가로 공개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