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서 북한 비핵화 원칙 ‘CVID’ 재등장…북한 또 ‘CVIG’ 거론할까

2004년 6자회담서 北반발 속 CVID 첫 적용
북한, 트럼프 1기 때 완전한 체제보장 요구
CVIG, 검증가능한 불가역적 체제 보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AP]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2기에 접어들면서 북한 비핵화 관련, ‘CVID’ 원칙이 재등장해 눈길을 끈다.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인(돌이킬 수 없는) 해체’다.

북한의 핵능력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미 보수 강경파 ‘네오콘’이 득세하던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생겨난 개념이 지금까지 유지돼 오고 있다.

이 개념은 앞서 리비아의 비핵화 과정에 적용됐던 개념으로, 당시 미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이 존 볼턴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해체’라는 의미의 ‘Dismantlement’ 대신 ‘비핵화’라는 의미의 ‘Denuclearization’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2004년 2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2차 북핵 6자회담에서 CVID 원칙이 북한을 제외한 다섯 나라에 의해 공식 수용됐다.

하지만 북한은 이에 강력 반발했다.

북한은 CVID는 패전국에만 강요하는 방법이며, 평화적인 핵계획을 송두리째 말살하는 굴욕적인 조치라고 항변했다.

또한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6자회담 의장국이던 중국에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당시 부시 정부는 북한과의 협상을 택했고,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아 첫 참가한 2005년 7월의 4차 6자회담에서부터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2005년 9월 4차 2단계 6자회담에서 미국과 북한을 포함한 6자회담 참가국들은 한반도 비핵화의 설계도를 담은 것으로 평가되는 9.19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후 CVID라는 용어는 미국과 북한 관계, 그리고 북한 비핵화 협상 고비고비마다 다시 등장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 북한 비핵화가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하던 2009년 7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가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에 동의하면 우리는 관계정상화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해 CVID는 역사에 다시 등장했다.

북한은 또 반발했다.

북한 대표단의 리흥식 외무성 군축국장은 “이것은 부시 행정부 시기의 이른바 ‘CVID’를 그대로 넘겨받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아무 움직임도 취하지 않는 이른바 ‘전략적 인내’ 정책을 표방하며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는 한때 ‘영구적이고(permanent)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폐기를 의미하는 ‘PVID’ 개념이 등장했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추진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자극하는 용어를 최대한 자제했다. 그 결과 2018년 6월 1차 미북 정상회담의 성과를 담은 공동성명에서 CVID라는 표현은 명시되지 않았다.

공동성명에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담겼지만, 북한은 당시 미국의 뜻대로 공동성명에 CVID를 명기하려면 그에 준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대북안전보장(CVIG)을 요구했다.

세계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은 지난 15일(현지시간) CVID를 거론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모든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모든 핵무기, 기존 핵 프로그램 및 기타 대량살상무기(WMD) 및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포기할 것을 북한에 요구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G7 회의에서 북한 비핵화의 CVID 원칙이 다시 거론된 것이다.

북한은 또 한 번 등장한 CVID에 반발하겠지만, CVIG를 재론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1기 당시 북미 제2차 정상회담이 ‘노딜’에 그치자 ‘더 이상 대화는 무용하다’는 인식이 북측 외교가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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