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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제조업 위기를 걱정하는 경고음이 들린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구호도 뒤따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도 중요하다. 어떻게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지속 가능한 제조 경쟁력을 확보할 것인가의 방법론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제로 한국 제조업은 시장, 기술, 생태계가 흔들리는 트릴레마(Trilemma) 상태에 놓여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둔화세가 뚜렷해지기 시작했지만 혁신적 신기술, 효과적 정책 및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는 형국이다. 인구 및 지역소멸, 세계 1등 기술 고갈 등의 문제가 심화되고 있고, 강대국들의 노골적 보호무역주의 기조에 따라 공급망도 경색되고 있다. 리쇼오링(Reshoring) 및 심지어 프랜드쇼오링(Friendshoring)으로 나아가는 미국의 사례는 제조업 없이 경제 성장도 없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GDP 대비 제조업 비중 28%로, 선진국보다 그 비중이 2~3배 높은 한국은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 제조업의 약진을 막는 대내·외 걸림돌을 치우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시급한 현안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젊은 층의 생산현장 기피, 둘째 주력산업의 경쟁력 약화, 셋째 신산업 부재가 그것이다. 한국은 강한 제조업 기반을 갖고 있음에도 젊은 인력들을 유인할 만한 매력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기존 산업이 한계에 봉착했음에도 다양한 신산업 창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제조를 뜻하는 매뉴팩처링은 ‘manu(=hand)’와 ‘facturing(=making)’이 결합된 용어로, 모여서 함께 생산하는 작업 형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안착된 대량생산 방식을 말하며,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250여년 세월을 거치며 제조방식의 생산성 혁명을 통해 발전해 왔다. 초연결 시대로 명명되는 현재는 생산성과 제품의 개인고객 가치를 동시에 높여 제품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밸류팩처링(Valufacturing)이라고 명명, 한국 제조산업의 새로운 철학으로 제안해 본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만의 특화된 제조력을 확보해 제품설계, 생산, 제조서비스 등 제조산업 전주기 가치사슬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도출함으로써 한국 제조업의 산업부문별 미래전략과 실천방안을 구체화할 시점이다.
1차 산업과 제조기술을 연결해 경계를 허물고 부가가치를 고도화하는 방식으로 제조산업 영토를 확장해 신산업을 잉태하는 노력도 필요한 시점이다. 제조업이 발전해도 지방소멸을 막는 데 한계가 따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디지털 농업, 어업, 축산업 기술 태동의 소리가 들리고 있다. 1차 산업 첨단장비를 개발·보급하는 것과 함께 지능화 운영 플랫폼을 구축해 1년 주기로 농작법, 수산업, 축산기술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제조된 제품을 기반으로 소비자의 개인 욕구에 대응하는 서비타이제이션도 제조업과 3차산업의 경계를 허물며 고수익 신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통상 XaaS(as a Service) 개념으로 모빌리티, 로봇, 소프트웨어 등 전 산업영역에서 새로운 개념과 비즈니스 모델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K-뷰티, K-컬쳐, K-메디컬 분야 등 신산업 창출의 아이디어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뿜어져 나오길 기대한다. 모두가 어려운 지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의 자랑인 눈썰미, 솜씨, 은근한 끈기와 더불어 무궁무진한 창의력을 발휘해 보자.
이상목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