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다 죽었는데’ ‘시체팔이 그만’…참사 유족은 두번 죽는다 [60년의 트라우마③]

참사를 정쟁화…과실 소재 찾는데만 급급
유족들 조롱, 혐오 등 2차 악플 피해에 정신적 트라우마 극대화


시청역 인근 역주행 사고 현장에 추모 꽃 등이 놓여 있다. 2024.7.7 [연합]


[헤럴드경제=김도윤·이용경 기자]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안전문제 활동가인 제시 싱어는 자신의 책 ‘사고는 없다(원제 There Are No Accidents)’에서 사고 앞에서 항상 ‘인적 과실’을 색출하고 탓하는 인간의 습관을 꼬집었다.

인간의 실수는 애당초 원천 차단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큰 사고가 터지면 ‘누구의 잘못이냐’가 블랙홀처럼 모든 논의를 빨아들이면서 사회 전반에 혼란이 번져나갔다고 진단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2014)와 이태원 참사(2022) 같은 메가톤급 사고 때 이를 경험했다. ‘책임 공방→정치 쟁점화→사회적 분열’의 질긴 악순환이다.

이 와중에 참사 피해자나 유가족의 목소리는 무시되거나 왜곡되곤 했다. 심지어 근거 없는 음모론과 유언비어가 각종 매체를 통해 퍼져 나갔다. 이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트라우마가 소리 없이 퍼져나가 사람과 사회를 괴롭혔다.

‘누구 잘못이냐’만 남은 참사 이후의 풍경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정부 시스템 전반에 대한 국민의 믿음은 급격히 떨어진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정부는 미흡한 초동 대응과 구조 실패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참사 직후 실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참사 전인 2014년 4월 3주 차에 59%였던 국정 수행 지지율이 참사 직후인 4월 5주 차에 48%로 약 11%포인트(p) 하락했다. 당시 야당은 정부의 무능을 강하게 비판했고, 여당 내에서도 책임론이 제기되며 정치권에서는 격렬한 공방이 펼쳐졌다.

이태원 참사 2주기인 지난해 10월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 인근 사고 현장에서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 [연합]


이태원 참사 이후에도 정부와 지자체의 안전 관리 부실이 도마 위에 올랐다. 경찰도 사고 위험을 감지하고도 충분한 조처를 하지 않았단 사실도 윤석열 정부를 향한 신뢰가 크게 흔들렸다. 사고 직후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21명에게 물은 설문조사 결과 윤 정부에 대한 부정 평가는 62.4%로 크게 올랐다. 대통령 지지율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한국 정치는 기본적으로 진영대결의 성격을 가진다. ‘정치적 내전 상태’인데 이런 정치에선 상대방의 약점만을 찾게 된다”며 “정부 여당이 대처가 미흡했을 때 정부의 무능과 정권의 부도덕성 등 국민의 부정적 인식을 극대화하는 그런 양상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치된 가족들…선 넘는 혐오에 ‘2차 피해’


물론 비극적인 사고가 나면 안전체계를 만들고 운영해야 할 공공 시스템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순 없다. 하지만 한국은 고질병처럼 그 대목에만 치중하며 갈등을 키웠다. 이 상태에서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은 이 언론의 취재 경쟁에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이유 없는 혐오 공격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태원에 놀러 가서 죽었는데 추모는 왜 하냐’, ‘마약 한 애들이 수두룩하다며’

2022년 10월 29일의 밤에 터진 이태원 압사 사고. 159명이 목숨을 잃은 비극적 참사에서도, 희생자를 향한 선 넘는 비난과 혐오가 온라인 공간에서 뒤따랐다. 일부 보수단체는 사고 현장 인근 시민분향소에 아예 자리를 잡고 “정치 선동 그만해라”, “시체 팔이 멈춰라”라고 폄훼하고 위협하기도 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광장에 마련된 10.29 참사 시민분향소 인근에 신자유연대 등 보수단체 천막과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 [연합]


심지어 이태원 참사의 생존자인 고등학생 이재현(참사 당시 16세)군은 같이 있던 친구 중에 자신만 살았다는 트라우마와, 온라인 공간에서 끊이질 않는 조롱과 비난 등 악성 댓글에 마음을 다쳐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

16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지난해 ‘시청역 역주행 교통사고’. 시민들은 사고 현장에 국화꽃과 추모 메시지를 뒀는데 여기에 “토마토주스가 돼버린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힌 쪽지가 나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는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명백한 ‘2차 가해’라고 본다. 이들에게 치유할 수 없는 치명적인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어 사회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받은 사회적 좌절과 분노를 해소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사회 갈등이 심화할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는데 정치권이 사회 분열을 조장해 이익을 얻으려 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권준수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악성 댓글이나 유언비어는 유족에게 2차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다”며 “사람에 따라 불안감이 극심해지거나, 작은 자극에도 매우 놀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모든 감정에 무감각해지는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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