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인근 상가 등 서민경제 망쳐
미분양 출구전략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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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찾은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원종동 주상복합 1층 상가가 모두 분양되지 못한 채 창고로 쓰이고 있다. 홍승희 기자 |
[헤럴드경제=홍승희 기자] #. 지난 17일 찾은 경기도 부천시의 한 주상복합은 1층 상가가 주인을 찾지 못해 창고로 쓰이고 있었다. 2022년 4월 입주를 시작한 후 3년째지만 132가구 중 76가구는 빈 집이다. 건물 고층에는 빛바랜 ‘잔여세대 특별매매·월세문의’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지만, 분양이 아닌 임대 문의만 잇따르자 ‘월세’ 글자를 아예 지워버렸다.
이 지역은 마곡, 여의도, 목동까지 차로 20분 거리인 ‘사실상 서울’이다. 서해선이 지나는 원종역에서 도보 5분 거리 역세권으로 분양 당시 전용 70㎡ 가 5억8000만원, 전용 84㎡가 6억8000만원에 분양됐다. 시행사와 건설사는 미분양 해소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해엔 최대 1억2000만원을 할인한 무순위 청약도 나섰다. 하지만 빈 집은 줄지 않고 있다. 지방은 물론, 서울 턱 밑까지 미분양 여파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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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찾은 부천시 오정구 원종동 주상복합 주차장에는 차가 한 대만 덩그러니 주차돼 있었다. 홍승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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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 오정구 원종동 주상복합 1층은 사람이 다니지 않아 마치 ‘유령도시’를 떠올리게 했다. 홍승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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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주요도시 미분양 현황 |
1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경기도의 미분양 주택 수는 1만2954호로, 약 8년 만(2017년 4월· 1만3309호)에 최대다. 부천 원종역 주상복합과 같은 ‘준공 후 미분양’도 수도권에서만 4251호로 집계된다.
시장에선 지난해 미분양으로 집계된 주택 상당수가 서울에 인접한 1~3기 신도시(성남·고양·부천 등 14개 시)에 몰려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 미분양 물량의 55%(7089호)가 이들 지역에 집중돼있다. 서울에 넘쳐나는 주거 수요를 받아주기 위해 만들어진 신도시에서 미분양이 급증한다는 건, 실거주 목적의 주택 매수는 물론이고 투자 움직임까지 멈췄다는 걸 방증한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미분양 주택을 사고 싶어도 기존 주택이 팔려야 한다”며 “자금 여력이 되는 투자 수요도 잘 움직이지 않으면서 시장이 악순환에 빠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경기권 주택가격은 상승세를 멈췄다. 한국부동산원의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경기 지역의 아파트 매매가격지수 변동률은 지난 12월 -0.01%로 하락전환하더니, 올해 1월 -0.11%로 10배 넘게 급락했다. 아파트를 포함한 주택종합 매매가격지수 변동률도 같은 시기 -0.08%로 급락했다. 더 빠른 속도로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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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 소사역 초역세권 한 아파트에 여전히 미분양 가구가 남아 건물에 ‘할인매매’ 현수막이 걸려있다. 홍승희 기자 |
미분양 주택 수 증가가 단순히 건설 경기 위축만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빈 집’은 지역 경기 악화의 선행지표기도 하다.
실제 부천 원종역 주상복합 1층 상가 편의점에는 오전 1시간 동안 두 명의 손님이 전부였다. 주차장에는 차 한 대가 덩그러니 주차돼있었다. 편의점 사장 A씨는 “처음 입주를 할 때 100% 입주할 거란 약속을 받고 (월세로) 들어온 것”이라며 “장사가 안된다”고 한숨지었다.
이 주상복합을 제 가격에 분양 받은 이들은 팔지도, 임대를 주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최소 1억8000만원의 ‘마피(마이너스피)’가 적용된 매물들이 시장에 나와있지만, 매수문의는 없다. 대출 이자에 맞는 가격으로 임대를 내놔도 들어올 사람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같은 날 찾은 부천 소사역 인근에도 주인을 찾지 못한 집과 상가가 가득했다. 통신사 대리점과 스타벅스를 제외하곤 ‘임대문의’라고 적힌 공실이 대부분이었다.
소사역 초역세권에 자리해 지난해 1월부터 입주를 시작한 아파트는 1년이 지난 현재에도 180가구 중 143가구만 분양됐다. 미분양이 두 자리수를 이어가다보니 시세는 분양가 대비 한참 떨어졌다.
미분양 물량을 털어내기 위한 할인도 진행 중이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현재는 에어컨과 붙박이장 등 3000만원 가량의 옵션비를 안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미분양 물량 적체에는 경기가 좋을 때 주택 개발이 확대된 때문도 있다. 4년 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흘러갈 곳을 찾지 못한 유동성이 집값을 밀어올렸는데, 이 때 주택 공사 추진이 활발했다.
때문에 수도권에서도 미분양 물량은 더 쌓일 것으로 보인다. 기자가 찾은 부산 소사역 미분양 아파트 바로 건너편에는 600세대가 넘는 또다른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었다. 사실상 대규모 미분양이 또다시 예고된 셈이다.
이렇게 되면 수분양자는 물론 인근 상인들도 경제적 손실을 떠안게 되고 지역경제, 이른바 내수가 더 힘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건설업계는 정부가 올해부터 1주택자가 지방의 준공후 미분양 주택 구입 시 세제지원에 나선 것을 경기도 등 수도권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지원 정책에서 제외된 수도권 지역의 미분양이 앞으로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준공 전 선분양에 나서는 국내 건설업 특성 상, 준공 후 이른바 ‘악성 미분양’ 뿐 아니라 준공 전 미분양에도 세제 등 관련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호소한다.
전문가들도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부가 추진중인 미분양 주택을 임대로 전환·운영하는 CR(기업구조조정)리츠 운영도 속도를 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CR리츠는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고 운용한 뒤 이익을 배당하는 방식이다. 투자자는 임대 수익을 얻다가 부동산 경기 회복 시,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 서울에 비해 경기도에는 저렴한 주택 수요가 넘쳐나는 만큼, 이를 소화해낼 ‘기업형 임대’가 미분양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윤지해 수석연구원은 “가장 좋은 방법은 시장 환경 자체가 개선되는 것”이라며 “그게 어렵다면 기업형 임대 형태로 거주 수요를 소화하고 금융·세제 혜택을 통해 임대 수요를 매매수요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