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제3자 변제안’ 대신 일본기업 국내자산 추심…”법원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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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 피해자가 제3자 변제안이 아닌 일본 기업에 직접 책임을 묻겠다며 제기한 자산 추심 소송에서 승소했다. 사진은 지난 2023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대리인 임재성(오른쪽), 김세은 변호사가 외교부 청사 앞에서 정부의 제3자 변제공탁 발표에 위법성과 부당성을 지적하는 모습. [뉴시스] |
[헤럴드경제=정호원 기자]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가 제3자 변제안이 아닌 일본 기업에 직접 책임을 묻겠다며 제기한 자산 추심 소송에서 승소했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추심을 통해 일본 기업의 배상금을 받도록 하는 첫 사례가 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951단독 이문세 부장판사는 18일 강제동원 피해자 고(故) 정창희씨의 유족 등이 미쓰비시중공업의 손자회사인 엠에이치파워시스템즈코리아를 상대로 8천3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낸 추심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전부 승소로 판결했다. 원고들이 채무자인 미쓰비시중공업으로부터 받을 돈을 제3채무자인 엠에이치파워시스템즈코리아에서 대신 받을 수 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이날 가집행도 가능하다고 선고했다. 가집행이란 판결이 확정되지 않더라도 배상금을 임시로 강제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앞서 지난 2023년 3월 윤석열 정부 외교부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해법으로 ‘제3자 변제안’을 공식 발표했다. 제3자 변제안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민간기업의 기부금을 받아 배상 재원을 마련하는 구조다. 2018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한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아닌 재단이 대신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는 것이다. 제3변제안을 두고, 사실상 정부 산하 기관이 일본 기업의 책임을 대신하는 방식이라 논란이 이어졌다.
피해자 정씨의 유족을 비롯한 일부 피해자는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을 거부하고, 일본 기업에 직접 책임을 묻겠다며 엠에이치 측 자산을 추심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 변호사는 선고 후 “법원이 반역사적 정책에 반대하는 분들에게 미쓰비시의 돈으로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제3자 변제안에 반대해 온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일본이 배상 판결의 이행을 막았고, 미쓰비시중공업도 전혀 배상하지 않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가 제3자 변제안으로 이 문제를 덮으려고 한 것을 거부하고 판결을 통해 배상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