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다 받는 건데” 졸업장 하나에 ‘박수갈채’…다들 펑펑 운 사연

18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희귀난치성 신경근육 질환자들을 위해 개최한 ‘특별한 졸업, 희망의 입학식’ 행사에 참석한 대학교 입학·졸업생 및 의료진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광우 기자.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인생이라는 배가 침몰하지 않았다는 징표”

졸업증을 손에 쥔 한 대학생의 소감. 대학 진학률이 75%에 달하는 시대, 남들 다 하는 졸업이 이렇게 비장한 일인가 싶다. 하지만 사연이 있다. 남들 다 하는 ‘호흡’도 힘겨운 희귀난치성 신경근육 질환을 앓고 있기 때문.

이들의 학교 생활은 도전의 연속이다. 몸이 점차 굳어가는 탓에, 통학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수업 간 이동, 과제, 팀 프로젝트 등 모든 활동에서 질환이 발목을 잡는다.

‘완치’가 선택지에 있으면 모른다. 하지만 ‘난치성’이라는 이름이 보여주듯, 증상은 되레 악화하는 경우가 많다. 병세가 짙은 날에는 주저앉고 싶은 마음도 든다. 하지만 이들의 선택지에 ‘포기’는 없었다.

입학과 졸업을 앞둔 7명의 주인공이 모였다. 나머지 50여명의 관객은 박수갈채를 보내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남들 다 하는 입학과 졸업을 위해, 수십 배는 더 쏟아부은 노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희귀난치성 신경근육 질환자들을 위해 개최한 ‘특별한 졸업, 희망의 입학식’ 행사에 참석한 대학교 입학·졸업생 및 의료진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지난 18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희귀난치성 신경근육질환자들을 위한 ‘특별한 졸업식, 희망의 입학식’ 행사를 개최했다. 여기에는 대학교 입학생 3명, 졸업생 4명과 함께 환자 가족들, 병원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지난 2008년 생명보험재단의 도움으로 호흡재활센터를 설립해 근육병,루게릭병 등 신경근육 질환자 1만5975명에 전용 병실과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호흡기 근육까지 쓰지 못할 수 있는 특성상, 호흡재활치료는 생명 연장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꼭 필요한 조치다. 이날의 주인공 7명 또한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를 다닌 환자들이다.

“순탄치 않은 대학 생활…행복한 기억만 남겼다”


18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희귀난치성 신경근육 질환자들을 위해 개최한 ‘특별한 졸업, 희망의 입학식’ 행사에 참석한 근육병 환자 표정환(오른쪽) 씨와 어머니 양희연 씨가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광우 기자.


주인공 중 한 명인 표정환(22) 씨는 이번에 한경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행사를 마치고 헤럴드경제와 만난 표 씨는 “센터에서의 치료 덕분에 입학부터 졸업까지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고 병원·재단 관계자들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표 씨는 생후 18개월경 진단을 받았지만, 2019년부터 강남 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에서 치료를 받았다. 질환이 중증으로 번지기 전에 호흡재활을 중점으로 받아야겠다는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표 씨는 호흡재활을 꾸준히 이행한 덕택에 대학 입학부터 졸업까지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

표정환(오른쪽) 씨와 어머니 양희연 씨.[표정환 씨 제공]


순탄하기만 한 과정은 아니었다. 중·고등학교에서의 생활과는 크게 달랐다. 늘 같이 생활하며 도움을 주는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아리 활동 등 막연한 두려움에 누리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표 씨는 대학생활을 떠올리며 “행복했다”고 소회했다.

그는 “쉽지는 않았지만 (대학 생활이) 힘들었다고 표현하기는 어렵다”면서 “몸이 불편한 것보다 휠체어 타는 모습에 시선을 보내는 것 자체가 불편했지만, 결국에는 ‘쳐다보면 어때’라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고, 많은 것들을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18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희귀난치성 신경근육 질환자들을 위해 개최한 ‘특별한 졸업, 희망의 입학식’ 행사에 참석한 근육병 환자 표정환 씨가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광우 기자.


가장 즐거웠던 것은 팀 프로젝트. 마음 맞는 이들과 좋아하는 것에 관해 얘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술자리에 참여한다던가 체육대회에 나간다던가 그런 것들을 못 해봤지만, 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관심사가 맞는 친구들끼리 좋아하는 것들에 관해 연구한 경험이 너무 즐거웠다”고 말했다.

졸업장을 받은 표 씨의 고민은 ‘취업’. 여타 졸업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표 씨는 전공을 살려 ‘작가’를 목표로 도전을 시작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는 장래희망일 뿐, 꿈은 아니다. 표 씨의 꿈은 끝까지 침몰하지 않는 것. 끝까지 인생을 즐기는 거다.

표 씨는 “제가 쓴 소설 안에 ‘적어도 내가 탄 배가 ’침몰한 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자’라는 구절이 있다”며 “내가 장애가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탄 배가 흠집있는 배라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침몰한 배가 되지는 않을 거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환자·보호자의 진솔한 소감…모두 눈시울 붉혔다


18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희귀난치성 신경근육 질환자들을 위해 개최한 ‘특별한 졸업, 희망의 입학식’ 행사에 참석한 대학교 입학·졸업생 및 의료진들.[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이날 행사에서는 졸업생 외에도 대학 입학생들이 참석했다. 부산대 사회학과 입학을 앞둔 근위축증 환자 이지성(19) 씨는 “의료진 선생님의 도움과 스스로의 노력이 합쳐져 일상과 학업을 이어나갈 만큼의 컨디션을 되찾았다”면서 “미래에 근육병 환우들을 도울 정책을 고안하고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근육병을 앓는 두 아들의 어머니 이명자 씨가 보호자 대표로 나와 호흡재활센터 등 관계자들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 씨가 담담한 목소리로 두 아들을 키운 경험담을 풀어놓자,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눈시울을 붉혔다.

18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희귀난치성 신경근육 질환자들을 위해 개최한 ‘특별한 졸업, 희망의 입학식’ 행사에 참석한 대학교 입학·졸업생 및 의료진들.[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이 씨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호흡재활센터를 통해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는 아이들을 보며 이겨낼 수 있었다”며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 노려을 했을지, 얼마나 더 마음을 쏟았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은퇴를 앞둔 강성웅 전 호흡재활센터 소장(재활의학과 교수)에 대한 감사 인사 순서가 있었다. 강 교수는 지난 2000년 근육질환자의 호흡근육을 살려 호흡을 가능케 하는 ‘호흡재활치료’를 국내에 처음 도입했다. 이후 30여년간 관련 질환 환자들을 돌봐왔다.

18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희귀난치성 신경근육 질환자들을 위해 개최한 ‘특별한 졸업, 희망의 입학식’ 행사에 참석한 강성웅(맨 오른쪽) 전 호흡재활센터 소장이 환자들의 감사 인사가 담긴 영상을 보고 있다. 김광우 기자.


현장에 참석한 환자들의 인사와 함께, 강 교수의 도움을 받은 해외 환자, 동료들의 축하 메시지가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 강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영상을 경청했다. 영상이 끝나고 참석자들의 박수가 이어지자, 연신 옷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강 교수는 “힘들 때마다 환자들이 고비를 넘기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었고, 보람된 일을 한다는 생각에 계속 근무할 수 있었다”면서 “환자와 보호자들, 후원자분들, 동료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생명보험재단은 2007년 18개 생명보험회사가 협력해 설립한 공익법인으로 희귀난치성 신경근육질환뿐만 아니라 뮤코다당증 환자를 위한 지원도 이어가고 있다. 재단은 2016년 삼성서울병원 뮤코다당증센터 설립을 지원해 지난 8년간 총 6464명에게 치료를 지원했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