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다가오는 COP16, 생물다양성의 깨진 유리창 고치자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


건물의 유리창 하나가 깨져 있으면 ‘방치된 곳’으로 인식돼 점점 더 많은 유리창이 깨지다가, 건물 전체가 버려질 수 있다. 사소한 문제를 방치하면 더 큰 무질서와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이다.

지금 한국은 수많은 유리창을 잃어가고 있다. 국회와 법원의 창문이 부서지고, 상식의 창마저도 금이 가고 있다. 국내 상황과는 달리, 국제 정세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미국은 파리협정을 탈퇴하고,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의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UN 생물다양성 협약도 진행되고 있다. 그간 한국 정부는 생물다양성 협약과 관련해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2021년 P4G 서울 정상회의에서 생물다양성 보호지역 확대 연합(HAC·High Ambition Coalition for Nature and People) 가입을 선언하고, 2022년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KMGBF)를 채택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HAC는 30×30 목표(2030년까지 육상과 해양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를 중심으로 생물다양성 보전과 지속 가능한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결성된 국제 연합체다.

그러나 현재 한국 정부의 모습은 생물다양성 보호지역 확대 연합 가입 선언 당시와는 사뭇 다르다. 지난해 10월 열린 제16차 UN 생물다양성 협약(COP16)에서 한국 정부는 리더십을 상실했다. 생물다양성 목표 달성을 위해 개발도상국이 요구한 기금 조성이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KMGBF 이행을 위한 국가별 목표 이행 점검 체계 구축이 실패할 때, 한국 정부는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방관이 아니라 국제적 신뢰를 스스로 저버리는 행위였다.

KMGBF의 국내 이행 계획인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NBSAP)도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다. WWF와 그린피스가 구축한 NBSAP 트래커에 따르면, 한국의 전략은 구체성이 부족하며, 국제 목표에 비해 실질적인 보호지역 확대와 재정 기여 계획도 미흡했다.

2030년까지 국토의 30%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하겠다고했지만, 현재 보호지역 비율은 육상 17%, 해양 1.8%에 불과하다. 보호지역 확대는커녕 기존 보호구역조차 개발 압력에 놓여 있으며, 생물다양성 보호를 위한 예산은 기후변화 대응 예산과 비교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처럼 협약의 기본적인 이행 사항인 NBSAP조차 구체성이 부족하다면, 생물다양성 보호지역 확대 연합 가입 선언은 공허한 말뿐인 선언이 될 것이다.

오는 2월 25일부터 28일까지 로마에서 열리는 COP16 후속 회의의 핵심의제는 생물다양성 재정 조달 방안과 국가별 목표 이행 점검(PMRR)이다. 이번 회의에서도 생물다양성 보호지역 확대 연합 가입을 선언했던 한국이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면, 이는 국제적 협력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다. 나아가 생물다양성 협약 자체가 붕괴할 위험이 있다. 지속가능성을 상실한 자연을 후대에 남겨서는 안 된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결국 모든 유리창이 깨진다. 지금이라도 한국 정부는 생물다양성 보호지역 확대 연합 가입 선언에 걸맞은 구체적인 재정 기여 계획을 제시하고, 보호구역 확대와 더불어 실효성 있는 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이 유리창을 함께 다시 달아야 한다. 그리고 이는 선언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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