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살기 위한 조치” 강조
일각선 “되레 수출길 막을 수 있다” 우려도
20일 중국산 후판 예비조사 결과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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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 철강 공장에서 후판에 대한 공정이 이뤄지고 있다. [헤럴드DB] |
[헤럴드경제=김성우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철강과 알루미늄 업종부터 관세 전쟁을 본격 시작한 가운데 우리나라의 일본산과 중국산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조사까지 본격화하며 국내 철강업계 안팎에서는 기대와 우려 섞인 목소리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19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이번 반덤핑 조사 착수와 관련 최근 중국산 저가 철강재의 글로벌 시장 점령으로 위기에 빠진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제재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중견 업체를 중심으로 반덤핑 조사를 기점으로 수출 비중이 50% 이상에 달하는 국내 철강산업이 오히려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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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열연강판 수출입 국가별 무역 수지 |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는 일본 및 중국 열연강판의 반덤핑 조사 착수에 대한 내용을 이달말까지 관보에 관련된 내용을 게시할 계획이다. 아울러 20일에는 중국산 후판의 반덤핑 조사에 대한 예비결과를 발표하고, 업계의 의견을 청취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조사에서 정부가 열연강판 및 후판 분야에서 국내 철강 업체들이 피해를 봤다고 인정할 경우 향후 중국산 후판, 일본·중국산 열연에 대한 잠정적인 덤핑 방지 관세를 부과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두 제품은 철강산업에서 근간과 같은 역할을 대표적 제품군이라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열연강판은 주로 쇳물을 녹여서 만든 슬래브를 원하는 두께로 가공한 뒤 코일(Coil) 형태로 말아서 탄생하는 제품이다. 후판은 코일이 아닌 판재형태로 구성된 제품으로 열연보다는 비교적 제품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두께가 6㎜ 이상으로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쓰임이 많다. 두 제품 모두 여러가지 ‘하공정’ 제품의 생산에 쓰인다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다.
앞서 중국산 스테인리스스틸 후판 등에 잠정 덤핑 방지 관세를 부과한 사례가 있지만, 제품 사업군 규모에서 후판과 열연이 차지하는 비중은 일부 후판군에 한정됐던 이전 조치와 큰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이번 조치가 철강산업 전반에 커지고 있는 위기감을 반영했다는 시각도 있다. 앞서 현대제철은 지난해 두 제품군에 대한 반덤핑 여부를 확인해 달라며 지난해 7월 후판, 12월 열연에 대한 제소를 각각 단행한 바 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앞선 회의를 통해 “글로벌 공급과잉으로부터 국내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무역구제 조치도 강화하겠다”며 “이를 통해 당면한 산업 위기를 극복하고 산업 경쟁력이 지속되도록 강화할 예정”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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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3사 로고 |
실제 지난해 국내 주요 철강사 실적은 전반적인 글로벌 업황 부진과 중국산 저가 철강재 수입 증가로 감소세를 보였다.
업계 1위 포스코를 사업회사로 둔 포스코홀딩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조1740억원으로 전년 대비 38.4% 감소했다. 현대제철은 3144억원으로 전년 대비 60.6% 줄었고, 동국제강도 1025억원으로 전년 대비 56.5% 각각 감소했다.
더불어 중국산 철강의 ‘저가 밀어내기’가 지속되고, 국내 건설경기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못해 국내 철강산업이 존폐 위기에 놓였다는 우려도 나오는 실정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 선진국이 관세정책을 강화하며 최근 글로벌 자유무역 기조가 약화되고 있는 점은 또다른 주요 이유로 꼽힌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일본과 중국 등 해외 저가 수입산 철강재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철강 산업 자체가 위기에 놓인 상황”이라며 “철강은 ‘산업의 쌀’로 불리는 만큼, 국산 철강 산업의 붕괴는 그 자체로 우리 산업계에 대한 위기 상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반덤핑 규제 등을 통한 보호 조치가 실효성이 클 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는 국내 철강산업이 수출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고, 생산량 대비 내수 소비량이 50~60% 수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 중 남는 제품을 수출해야 하는데, 우리가 먼저 관세나 규제 장벽을 칠 경우 되레 상대국이 장막을 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도 있다.
실제 한국무역협회 통계 기준 우리나라의 철강 제품군 전체 무역흑자는 지난해 121억6446만 달러(약 17조5000억원)에 달했다. 여전히 수출시장에서 효자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철강재에 일부러 장벽을 놓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 가운데 고부가 제품군으로 여겨지는 차량용 강판이나 가전제품에 많이 쓰이는 컬러강판의 경우 국내 업체들이 생산하는 품목이 주요국 시장에 활발히 수출되고 있다. 포스코는 일본 완성차 업체들을 공략하면서 현지 차량용 강판시장에서도 큰 우위를 보이고 있고, 철강 빅3가 생산하는 컬러강판은 중국과 유럽과 미국 시장등지에서 선호가 높다.
또다른 철강업계 관계자는 “대개 하공정(중간재 가공을 통해 최종 철강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이 우리 특허와 전문 기술이 들어간 고부가 제품인 경우가 많다. 상공정(고로나 전기로를 통해 철광석을 녹여 반제품을 만드는 공정)에서의 규제로 인해 수출길이 막히게 해선 안 된다”면서 “하공정 제품인 아연도금이나 컬러 제품은 중소·중견 업체들의 생산이 많은데 관세가 들어올 경우 이들은 강력한 타격을 입게 된다”라고 꼬집었다.
수입제품 가격이 높아질 경우 중소·중견업체들이 지게 될 원가부담도 우려가 되는 대목이다. 특히 중소·중견업체들은 국내에서 대량생산되는 열연이나 후판 제품이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 중소·중견 철강업체 관계자는 “국산 열연 제품이 일본산과 비교했을 때 크게 비싸지 않다면, 굳이 복잡한 수입절차가 필요한 수입산 제품을 사용하겠냐?”라면서 “우리 업체들이 공급하는 제품의 판매가격이 30% 가량 비싼 상황에서 어려운 업황까지 겹치니 외국 업체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