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손님 얼굴 본 지 몇 달 됐어요”

을지로입구역 인근 상가 가보니
“계엄 이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
지하철 상가 공실률 매년 증가세


을지로입구역 인근 을지로 지하상가 내 한 상점. 공실 중이어서 ‘유리주의’ 팻말이 더 눈에 띈다. 손인규 기자


“여기서 장사를 17~18년 했는데 코로나 때보다 더 심각해요. 단골 손님 얼굴 본 지 몇 달은 됐다니까요.”

경기 침체, 고물가, 여기에 지난해 말 터진 12·3 비상계엄 사태 등으로 소상공인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추운 겨울철이면 유동 인구가 많아지는 지하철 상가도 이런 경제 한파를 비껴갈 수 없었다.

지난 18일 오후에 찾은 을지로입구역 인근 을지로 지하상가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상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만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을지로입구역 근처에서 네일숍을 운영하는 A(47) 씨는 “주변에 호텔·백화점·면세점이 있다. 거기에서 일하는 여직원들이 주 고객인데, 이들 단골이 안 온 지 꽤 됐다”며 “예전에는 하루에 5~6명은 됐는데 요새는 1~2명이 전부”라고 말했다.

이어 “경기가 안 좋으면 이런 미용 쪽에 나가는 돈부터 줄이게 된다”며 “17년 넘도록 꿋꿋하게 이 자리에서 일했는데 ‘이제 접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상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수제화가게 사장인 B(55) 씨는 “이 근처 지하상가 중 먹는 장사 빼고는 거의 다 개점휴업 상태”라며 “특히 지난해 말 계엄 이후로는 관광객까지 줄면서 장사가 더 안된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 때에는 소상공인 지원금 같은 거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어 더 힘들다”며 “주변에 문 닫는 상가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둘러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부터 을지로3가역까지 을지로 지하상가 내 점포 중에는 오후 4시께였지만 문을 닫거나 공실인 곳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 입구 쪽 상가도 마찬가지였다. 을지로입구역에서 롯데백화점으로 올라가는 쪽 입구에 있는 호두과자 가게에는 관광객 1~2명만이 음식을 주문하고 있었다.

호두과자 가게 직원 C씨는 “지나다니는 사람은 많은데 그냥 지나갈 뿐 사 먹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예전에는 줄 서서 먹기도 했는데 이젠 준비한 재료가 남기 일쑤”라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서울 지하철 1~8호선에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총 1526개의 상가가 운영 중이다. 이 중 계약 해지에 따른 공실률은 2022년 13.3%에서 지난해 15.6%로 3% 이상 증가했다.

상가의 임대료 체납액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소속 김원중(국민의힘) 의원이 서울교통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하철 상가 상점들의 임대료 체납액은 2022년 14억원에서 지난해 43억원으로 늘었다.

서울시설공단이 운영하는 지하상가는 을지로, 시청광장, 명동, 남대문, 영등포, 고속터미널, 잠실지하광장 등에 총 2788개 점포가 운영 중이다.

이와 관련, 교통공사는 최근 상가 임대료 연체 요율 인하와 상가 업종전환 규제를 완화하는 개선안을 마련했다. 그동안 서울 지하철 상가 연체요율은 10% 내외 수준이었는데 이를 6%로 내리기로 했다.

다만 이런 개선안이 정작 소상공인에게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을지로입구역 인근에서 20년 넘게 안경점을 운영하는 D(62) 씨는 “임대료가 연체돼서 내는 이자를 조금 줄여준다고 크게 도움이 될 거 같지는 않다”며 “차라리 임대료 자체를 내려주든가 아니면 코로나 때처럼 전기세 등을 감면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될 거 같다”고 하소연했다. 손인규 기자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