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17’로 돌아온 봉준호 “오스카 이후 이름만 대도 다 알아 편해”[인터뷰]

쉽고 재밌다는 반응…사실 기대했던 반응

“더이상 주인공 구석으로 몰고 싶지 않아”

원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사랑 이야기

 

‘기생충’으로 오스카상을 휩쓸고 5년이 지난 오는 28일 봉준호 감독이 신작 ‘미키17’로 돌아온다.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콘래드에서 봉준호 감독을 만나 인터뷰했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5년 전인 지난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최고상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과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휩쓸며 4관왕에 올랐다. 아시아계 영화로도 최초, 한국 영화 역사상도 최초이며, 외국 영화가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수상한 사례로도 또 최초다.

명실상부 ‘거장’의 반열에 오른 그가 오는 28일 ‘미키17’로 돌아온다.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에서 만난 봉준호 감독은 “오스카상을 받은 이후 개인적인 삶은 크게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주 크게 바뀐 것이 하나 있다”고 곧바로 덧붙였다.

“할리우드 배우들에게 제가 누군지, 어떤 작품을 해왔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더라. 그 전에는 (배역을)제안하고 거절당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이젠 거절을 안 당한다. 심지어 (배우들이)서로 제 작품을 더 많이 봤다고 강조하며 어필하기도 한다. 로버트 패틴슨도 자기가 아주 예전에 이미 제 영화 ‘살인의 추억’을 봤다고 제게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봉 감독이 두터운 신뢰를 얻고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할리우드 배우들과 함께 만든 ‘미키17’은 개봉하기도 전에 국내에서 예매율 1위를 기록하며 흥행 조짐을 예고하고 있다. 아래는 봉준호 감독과의 인터뷰 즉문즉답.

20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열린 영화 ‘미키17’ 기자간담회에서 봉준호 감독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

-이제는 다른 창작자와 경쟁한다기 보다는 봉 감독 스스로와 경쟁하는 느낌 아닌가. 이전 작품들과 겹치진 않았나.

▶아무래도 ‘크리퍼’(식민행성 토착 생명체)가 나올 때 ‘괴물’도 좀 떠오른다. 저도 찍다보니까 ‘괴물 때 이런 상황이 있었는데’하고 기시감이 좀 느껴지더라. 하지만 전작과 비슷하려고, 또는 전작과 다르려고 미리 어떤 부분을 어떻게 목표를, 깃발을 들고 접근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캐릭터가 말이 되게 만드는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어서다. 시나리오 쓸 때는 정신이 없다. 30마리의 토끼를 한 지점으로 몰아야 하고, (이야기의)구멍을 하나씩 막으면서 나아가야 하니까. 그러고 나서 다 찍고 나중에 편집하다보면 ‘아 그때 그거랑 비슷하네’ 이럴 때가 종종 있는거다. 낙관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설사 반복되거나 비슷해도, ‘당연하지 내가 찍은건데. 내가 어디가겠어?’ 이런거다.

-할리우드 배우들은 소위 ‘봉준호 톤’을 어떻게 익히던가.

▶제가 ‘한국적 연기’를 해달라고 주문한 적은 없다. 다만 제가 배우들의 연기톤을 다른 작품에서 봐 왔듯이. 그들도 제 다른 영화들을 보면서 제 스타일에 익숙해졌을 거다. 또 할리우드에는 현장 편집이란 개념이 거의 없는데, 제가 몇 번 보여주니까 배우들이 촬영장 올 때마다 자꾸 보여달라고 한다.(웃음) 토니 콜렛이 자기가 미키 이마에 난 뾰드락지를 터뜨리는 장면을 현장 편집본으로 보곤 너무 좋아하는거다. 그때 그가 ‘이거 완전 봉준호 톤이네!’ 이런 말을 했던걸 보면 토니의 머리 속에도 ‘아 내가 저 사람(봉감독)의 영화를 옛날부터 봐왔는데 역시 이번에도 이런게 나오는구나!’ 했던걸 테다.

-이번 영화 ‘미키17’은 어둡고 복잡하기보단 쉽고 재밌는 느낌이 컸다.

▶(쉽고 재밌다는 반응을)바랬던 바다. 특히 미키가 착하고 다소 어리숙한 캐릭터니까. 미키(로버트 패틴슨 분)는 손해를 잘 보게 생겼다. 손해보고도 계속 웃기만 하고, 화도 잘 못 내고. 그 상태에서 미키18이 나온다. 반면 미키18은 소위 ‘또라이’지만,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 주인공의 관점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찍었다. 그동안 제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가혹하게 대한다는 평이 있었는데, 돌아보니 정말 그렇더라. 현실의 쓰라린 모습을 풍자하거나 보여주는 것까진 좋았는데, 그 한복판 있는 주인공은 자연스레 가혹한 상태에 몰렸던거다. 이번 주인공 미키는 심지어 죽는게 직업이니, 아마 이보다 더 가혹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은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그래서 더 미키가 망가지거나 부서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게 이번 영화에서 제게 있어 변화라면 변화였다.

20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열린 영화 ‘미키17’ 기자간담회에서 봉준호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

-처음으로 남녀 간의 러브라인을 그려냈다. 영화 소개를 하며 이 부분을 많이 강조했는데….

▶미키가 파괴되지 않게 도와주는 게 나샤(나오미 애키)다. 미키의 보호자 같은 나샤. 이 둘의 사랑에 대한 묘사가 원작에서 참 좋았어서 영화에서 절대로 빼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제 이야기에서 처음으로 사랑이야기가 나오게 됐다. 원작소설에서 미키가 나샤를 어떻게 지켜주는 지에 대해서 잘 그려진 부분인 챕터 번호도 기억할 정도였다. 그래서 미키만큼이나 나샤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었다. 런던에서 스크리닝을 며칠 전에 하고 왔는데, 나샤가 마샬(마크 러팔로)한테 엄청 크게 욕하면서 맞서 싸우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박수가 나오더라. (나샤는) 그런 여자다.

-마지막 ‘악몽 신’은 어떤 의미인가. 분명 해피엔딩인데 약간 찜찜한 느낌이 든다

▶악몽 장면, 되게 공들여서 찍은 부분이다. 그 장면 바로 이어서 악몽에서 깨어난 미키가 햇살이 쩅쩅한 한가운데로 걸어가 나샤에게로 간다. 그래서 악몽 신 자체가 아주 짧은, 다크한 단편 영화처럼 강하게 찍혔다. 토니 콜렛도 그 장면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악몽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가 언제든지 다시 주저 앉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를 그 장면을 통해 남기고 싶었다. 근데 스튜디오쪽에서도 악몽 신을 뻇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관객이 혼동이 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근데 제가 ‘싫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그럼 그러라’고 하더라.

-원작과 다른 부분이 눈에 띈다. 영화상 배경은 2050~2054년이다

▶원작소설은 훨씬 더 미래다. 행성 거리도 훨씬 더 멀고. 영화는 좀 더 현실적으로, 땅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실제로 휴먼 프린터 만드는 회사가 지금도 있다. 인체가 아닌 재료를 넣어서 귀, 피부 일부분 등 피부 조직과 똑같은 걸 만들어낸다. 그러니 2054년에는 아마 우리 형제자매들이 진짜로 출력될 지도 모르는거다. 어쨌든 최대한 (영화를) 현재적으로 끌어내리려다 보니까, 더 과거의 느낌이 나는 걸 동시에 포함시켜 시간대를 상쇄시키고, 중화시키려 했다. 미키의 기억이 저장되는 적벽돌도 그렇고. 그건 제가 런던에서 영화를 찍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영화상 비쥬얼이 과거·현재·미래가 뒤섞이고,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을 바랐던 것이기도 하다. 보시면 첨단 디지털 느낌이 나는건 휴먼프린터기 하나 뿐이고 나머지 사물과 배경은 다 청소가 잘 안된 공장이나 화물선의 느낌이다.

-토니 콜렛이 연기한 마샬의 아내, 일파는 완전히 새롭게 창작된 캐릭터이던데.

▶시나리오는 2021년도에 다 썼다. 그리고 2022년에 영화를 찍었다. 일단 이 타임라인을 명확하게 기재해달라. 제가 볼 때 부부가 독재자일때가 더 시너지 효과가 좋다. 제가 어릴 때 필리핀의 마르코스-이멜다 부부에 대한 블랙코미디 같은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독재자)부부가 일으키는 이상한 상승효과가 있더라. 그리고 제가 너무 좋아하는 배우인 마크 러팔로와 제가 꼭 일해보고 싶었던 토니 콜렛을 대입시켜보니까 주체할 수 없는 욕심이….(웃음) 이 콤비네이션이 참 신선하다 싶었다.

-일파는 왜 그렇게 소스 만들기에 집착하나.

▶영화에서 일파가 ‘소스는 문명의 리트머스지’라고 한다. 일파의 여러 허세중 하나다. 또 여러 행성에 원정대들이 가면서 우주 식민지끼리 경쟁하는 느낌이 있다. ‘우리 식민지는 이렇게 달라’,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우리는 고기에 여러가지 소스를 내어줄 수 있어’ 이런 거다. 미키랑 다른 선원들은 제대로 먹지 못하는것과 대조된다. 즉 ‘설국열차’의 제일 앞칸 부부가 벌일 법한 행동인거다. 일파가 소스를 만드는 그들의 방도 보면 영화 전체의 룩(look)과 완전히 다르지 않나. 화려한 컬러에 미술품이 가득하고. 소스는 일파와 마샬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장치라고 간단히 이해하면 되겠다.

20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열린 영화 ‘미키17’ 기자간담회에서 봉준호 감독이 간담회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

-마크 러팔로가 연기한 독재자 마샬은 누구를 모델로 했나.

▶영화가 워낙 현재적인 모습이다보니까 미국 언론들은 (마샬이) 트럼프가 아니냐고 묻는다. 게다가 미키18이 먀살을 총으로 쏘는데 총알이 뺨에 스치는 장면이 (트럼프 암살시도와)너무 비슷하다고 말이 많더라. 다시한번 말하지만 2022년도에 다 찍었다.

이태리의 한 나이 지긋한 기자는 마샬이 턱을 치켜드는 모습이 꼭 무솔리니와 닮았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각 나라마다 자신들이 받는 정치적 스트레스를 마샬 캐릭터에 투사하는거 같다. 그만큼 러팔로가 찰지게 표현해줘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원래 악역이 묘한 매력이 있어야 한다. 실제로 전세계의 과거 독재자들을 가만 보면 은근히 귀여운 부분이 있다. 그게 대중을 현혹하니까 되게 위험한거다. 저는 한국의 좀 옛날 정치인 중에서 개성있는 몇 명을 좀 참고했다고만 말하겠다.

-마샬과 나샤, 그리고 마마 크리퍼를 통해 리더의 자질에 대해서 묻는 거 같던데.

▶개인의 순수하면서도 상식적인 마음과 실제 행하는 정치가 서로 어긋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게 아닐까 싶다. 나샤의 정치인 변신을 통해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마마 크리퍼는 한 4선 의원? 아니면 원내대표급 정도 되는 아주 노련한 협상가 리더라고 보면 되겠다. 위엄이 있고 위트도 있는 정치인이고, 대범한 뻥카도 치고,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좋은 정치인의 모습이다. 동물이나 크리처를 영화에 등장시키는건 그런 재미가 있다. 그들을 보면서 얼마나 인간이 한심한지 돌아볼 수 있다. 대의도 엄청 다르지 않나. 크리퍼들은 베이비 크리퍼 ‘조코’ 하나를 살리겠다고 모두가 몰려와서 마샬의 우주선 앞에서 시위를 벌인다. 근데 인간들은 미키 한 명한테 온갖 죽을 일을 몰아준다. ‘너 싸인했잖아’, ‘그게 네 직업이잖아’, 이러면서 죄책감은 하나 없다. 명백한 대조다.

-정말로 2054년이 되면 봉 감독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은하철도999’에 나오는 기계몸을 장착하고 앉아서 시나리오 작업하고 있을거 같다. 184번째 작업을 하고 있을수도 있다. ‘기생충’ 때 예기치 못하게 상을 많이 받아버려서 다들 제게 ‘이제 목표가 뭐냐’고 묻는다. 저는 지금도 ‘이상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계속 기억되고 싶다. 어떤 상황, 어떤 조건에 놓여도 끊임없이 이상한 영화를 내놓는 그런 감독. 할리우드에서도 제가 작업하는거 되게 이상하다고 하면서도 존중해주더라. 지금은 2019년부터 준비한 애니메이션 만들고 있지만, 그게 차기 행보로 특별히 선택하고 그런 게 아니다. 앞 작품 개봉하기 전에 늘 그 다음 걸 준비하고 있던 상황이고, 계속 이런 작업 패턴을 유지하고 싶다.

이날 “그 어떤 매체도 시네마(극장)의 원초적 파괴력을 따라갈 수 없다”며 영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낸 봉 감독은 아울러 조만간 한국 영화도 한 편 찍을 것이란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한국 감독으로서, 한국 배우들과 함께, 한국 관객들과 밀착해서 찍을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극장이 또 다이나믹하게 굴러갈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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