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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를 이용해 제작] |
[헤럴드경제=이영기·안효정 기자] 지난 60년 사이 300건의 재난이 한국을 할퀴었다. 자연재해와 화재, 건물 붕괴, 침몰 등 여러 얼굴을 하고 닥쳐온 참사에 인간은 매번 무력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한국 사회의 ‘민낯’이 고스란히 노출됐고 참사 피해자와 가족, 현장 구조대원 등은 무방비상태에서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우리 사회가 남겨진 사람들의 트라우마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2014년 세월호 참사부터다. 그 전까지 일부에서 제한적으로 챙기던 재난 이후의 정신 건강을, 온나라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돌보기 시작한 시점이다.
우리나라의 재난관리 시스템의 3대 분수령은 1990년대 중반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2014년 세월호 참사다. 극심한 진통을 겪었고 그러면서 재난 트라우마에 대응하는 전반적 시스템이 느리지만 조금씩 발전했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대구 참사 때는) 화상 같은 신체적 부상이 하나도 없는데 사회로 복귀를 못하고 심지어 고기를 구워 먹지도 못하고 연기와 관련된 모든 걸 회피하는 전형적인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이 관찰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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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 |
특히 대구의 경우 사고 당사자와 가족들이 같은 지역 내에 있다는 특징 때문에 지역 기반의 지속적인 관찰과 연구가 이뤄질 수 있었다. 이때 많은 학회에서 관련 연구를 벌였다.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는 2007년에 큰 재난 이후 구호의 차원에서 심리회복 지원이란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이듬해엔 전국 시도 단위에 재난 피해자 심리지원 센터도 설치되기 시작했다.
2010년엔 법에 처음으로 ‘재난 심리 상담’의 근거가 생겼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재난 이후의 심리적 안정과 회복을 돕기 위해 상담 지원이 필요하단 조항이 들어간 것. 2013년에는 국립서울병원에 심리적 외상관리팀도 발족했다.
겉으론 ‘한국도 재난 심리지원 체계가 만들어졌다’는 자화자찬이 나왔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 보면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빛좋은 개살구였다.
심민영 센터장은 “2014년 세월호 사고가 나니 공공은 물론 민간 학회까지 나서서 심리 지원을 했다”며 “그러면서 제대로된 상설 체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정부와 민간에서 생겼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엔 한국에선 처음으로 재난 피해자들의 정신 건강 실태를 연구하는 2014~2024년 10년 코호트 연구(장기 추적 조사)도 이뤄졌다. 이런 연구 덕분에 트라우마 고위험군이 90%를 차지했는데 최근에 50%까지 줄었단 수치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심리 지원은 ‘재난 구호’의 당연한 일부로 인식된다. 2018년 출범한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심리 지원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았다. 심 센터장은 트라우마 심리 지원의 효과를 묻는 질문엔 “어느정도 기여했는지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다만 고통을 겪는 피해자, 유가족에 대해 필수 서비스로 인식이 된 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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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대구 중구 동성로에 설치된 ‘세월호 참사 10주기 시민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2024.4.16 [연합] |
현재 재난 심리지원은 행정안전부가 대한적십자에 위탁해 운영하는 ‘재난심리지원센터’가 있고, 보건복지부가 중심이 돼 운영하는 국가트라우마 센터와 권역별 트라우마센터가 있다. 이렇게 되니 어떤 재해가 터졌을 때 두 기관이 모두 현장에 출동해 불필요한 ‘중복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두텁게 심리 지원이 이뤄지면 재난 피해자 입장에선 유리하지 않을까. 심 센터장은 “내 얘기를 어렵게 누군가한테 했는데 다른데서 전화해서 같은 얘길 또 물으면 피해자들 입장에선 더 해가 된다”며 “서비스 누락도 안되지만 중복도 굉장히 경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라우마센터는 참사 이후 온라인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조롱, 모욕 등을 주목한다. 이는 생존자나 가족들에게 치명적인 ‘2차 가해’가 된다.
심 센터장은 “SNS 공간에서 참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지침이나 경계할 행동을 정리한 가이드라인을 연구용역을 거쳐서 만들어 보려고 한다. 어떤 한 방법이 유효하다 할 수 없어서 계속 브레인스토밍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