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 “과잉물량에 직격탄, 당연한 조치”
조선업계 “글로벌 경쟁에 찬물 끼얹는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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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금까지 일반관세가 0으로 유지돼 온 중국산 후판에 ‘반덤핑(Anti-Dumping·AD)방지’ 관세를 부과하는 초강수를 선택했다.
업계 예상을 뛰어넘은 고강도 조치로, 위기에 빠진 국내 철강산업을 지키려면 장벽을 쌓지 않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반면 조선업계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다며 일제히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는 지난 20일 회의를 열어 국내로 들어오는 중국산 후판에 수출 기업별로 27.91~38.02%의 잠정 덤핑방지 관세를 부과하는 안을 심의·의결했다. 잠정 관세는 기획재정부의 검토를 거쳐 한 달 내로 확정해 중국산에 즉각 부과한다.
현지 가격보다 저렴하게 들어오면서 국산과는 20만원이상 가격 차이를 보여온 중국산 제품에 최대 38.02%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가격평균’ 맞추기에 나선 것이다. 최근 경영위기에 빠진 철강업계에는 숨통이 트일 수 있는 결정으로 풀이된다.
무역위는 “후판에 대해 예비조사를 거친 결과, 중국산 제품의 덤핑사실과 덤핑수입으로 인한 국내산업의 실질적 피해를 추정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반덤핑 규제란 현지가격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품 수출이 이뤄지고, 이를 통해 우리 산업에 타격이 생길 때 성립할 수 있다.
업게에서는 정부의 세부 조치 등을 감안해 반덤핑 관세가 실제로 부과되는 시점은 약 1개월 후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번에 제재대상에 오른 후판은 두께가 4.7㎜인 제품으로, 국내 철강업계에서 흔히 중판으로 불리는 3.0㎜~6㎜ 제품과 6㎜이상인 후판을 포함한 조치다. 기존 예상보다 더 전방위적이고 강도 높은 제재로 평가된다.
후판은 철강업계에서 수익성이 높은 품목은 아니지만, 비교적 원물에 가까운 상공정(고로나 전기로를 통해 철광석을 녹여 반제품을 만드는 공정)에서 활용되는 제품이다.
묵직한 두께감에 코일 형태로 말아서 보관이 힘들어 판재 형태로 매매가 이뤄진다. 철강업체들이 후판을 제작하면 주로 큰 물량은 기업 대 기업 판매가 이뤄지고, 일부는 중소 유통사에 잘라서 판매가 이뤄진다. 두꺼운 철이 필요한 건설업과 조선업 위주로 후판에 대한 수요가 많다.
정부의 이번 결정에 철강업계 안팎에서는 안도의 목소리가 나왔다.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대량 생산된 후판 가격은 톤당 90만원 초반대인데, 중국산은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국내에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중국 현지에서 제품은 톤당 70만원대 초반에 판매되는데 국내 판매가는 이보다 더욱 낮게 책정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덤핑 행위로 의심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중후판(중판과 후판) 관련 수출입 통계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알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집계한 지난해 중후판(MTI 6131 기준) 통계에 따르면 한국 시장에서 중국산 후판 물량은 전체 190만2341톤의 62.3%인 118만5410톤을 차지했다. 반면 액수기준 집계에서는 8억2238만 달러로 전체의 53.8%에 그쳤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재가 우리나라에 수입될 때 부과됐던 일반관세는 현재까지 0%에 그쳐, 철강업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마땅하게 없었다”면서 “최근 중국 업체들이 과잉공급된 물량을 해외 시장에 쏟아내기 시작한 상황에서 국내 철강업체들은 피해를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 간절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도 “현재 세계적인 보호 무역 주의가 국가별로 강화되는 가운데 보호장치가 없는 한국으로 후판 제품의 유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라며 “잠정관세 부과는 당연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결정이 우리 산업계에 미칠 영향도 상당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특히 자재비 인상 등으로 고통이 가중되는 건설업계에는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후판은 구조용강이나 내후성강, 송유관용강 등으로 사용이 이뤄지고 있다. 이들 강재는 커다란 건축물의 강성을 유지하는 데 활용된다. 그동안 저렴한 중국산 사용비중이 높았던 중소·중견업계에 가격인상 여파가 미칠 수 있다.
매년 후판 가격을 놓고 줄다리기를 이어왔던 국내 조선업계와 철강업계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공산도 크다.
조선업계는 “글로벌 선박 시장에서 중국과 힘겨운 경쟁을 펼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중국산 후판에 관세가 부과되면 우리나라 선박의 가격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글로벌 선박 시장에서 저가 및 물량 공세를 앞세워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선박 수주 시장에서 중국 점유율은 70.6%이다. 우리나라 점유율은 16.7%에 그쳤다. 지난달 우리나라가 선두 자리를 탈환했지만, 중국으로부터 언제든 1위자리를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조선사들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산보다 저렴한 중국산 후판 사용 비중을 늘리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제품 품질이 이전보다 많이 향상된 중국산 후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려는 추세도 나타난다.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국내 조선 3사의 중국산 후판 사용 비중은 20~30%, 중형 조선사는 50%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입 원자재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면 관세를 물리지 않는 ‘보세제도’를 활용할 경우 후판의 반덤핑 관세 우회가 가능하지만, 절차가 더욱 복잡해지는 것이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지금까지는 수입철강재에 붙던 일반관세가 0%였기에, 보세구역을 활용해 철강재를 다룬 대형업체는 HD현대만이 유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업체들도 중국산 후판을 활용하려면 보세구역을 활용해야만 한다.
보세구역을 활용할 수 없는 국내 유통 선박의 경우에는 선박 제조가격이 올라가는 여파도 있다. 주로 중소형 선박을 만들어 국내에 유통하고 있는 중소·중견 선박사들 입장에서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내 중형 조선사들의 주력 선종은 중국 조선사들의 핵심 선종과 유사하다”며 “중형 조선사들은 지금도 수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정부의 이번 조치로 중형 조선사들은 생존을 걱정해야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도 “정부의 이번 관세 조치는 오랜 불황의 터널을 지나 이제 막 기지개를 펴려던 조선업계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은 것”고 꼬집었다. 김성우·한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