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예술단체 통합 날벼락…“전문성ㆍ고유성 배제…한치 앞도 몰라 불안”

문체부, 5개 국립예술단체 통합 추진

단체 “업계 졸속행정 비판 한목소리”

특성 배제ㆍ공론화 없이 밀어붙여

 

국립발레단 [국립발레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합창단, 국립현대무용단 등 5개 국립예술단체가 한데 묶인다. 정부는 우선 5개 단체의 이사회와 사무처를 통폐합하는 한편, 이르면 상반기께 법인 통합과 사무처 신설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각 단체는 충분한 논의와 이해 없이 밀어붙이는 ‘졸속 행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21일 문화계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발표한 5개 국립예술단체 통합 방안에 대해 각 단체들은 졸속 행정의 전형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문체부 산하 국립예술단체 중 독립 재단법인은 ▷국립극단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정동극장 ▷국립팝창단 ▷서울예술단 등이다. 문체부는 이중 예술의전당에 상주하는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합창단, 국립현대무용단 등 5개 단체를 대상으로 통폐합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5개 단체는 각자 운영해 온 법인과 이사회를 하나로 합치는 한편, 통합 사무처를 신설해 각 단체의 예산·회계·홍보 등의 업무를 총괄 수행토록 하게 된다.

문화계에 따르면, 정부의 통합 구상안은 이미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 법인 이사진은 15~20명 규모로 구성, 각 단체의 단장 겸 예술감독 5명을 포함한다. 이사회가 통합돼도 각 단체의 기존 명칭과 정체성은 유지한다. 단장 겸 예술감독들도 기존대로 시즌 프로그램 선정과 개별 공연 프로그램 결정, 지휘·연출·안무에서 자율성을 보장받도록 했다. 통합사무처엔 ▷기획조정국(12명) ▷운영지원국(12명) ▷재무관리국(11명) ▷ 홍보협력국(7명) 등 4개국을 두도록 했다.

이처럼 5개 국립예술단체 통합 방안이 신속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이번 통합 추진은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이다. 우선 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이 불투명했고, 그렇다 보니 충분한 공론화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다수의 국립예술단체 관계자들은 “지난해부터 (통합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해 올해 들어 추진 속도를 높이는 상황”이라며 “통합의 방향성과 운영 방식에 대해 각각의 단체의 입장을 나누고,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과정이 없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각 단체의 특성과 운영 방식이 모두 다른 만큼 일괄 통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국립예술단체 관계자는 “각각의 예술단체는 현재 예산의 규모, 구성원의 숫자와 직원들의 연봉 체계가 저마다 다르고, 운영 방식과 노하우도 제각각”이라며 “통합을 위해선 각 단체의 특성을 면밀히 살펴야 하는데 예술단의 특성은 배제한 채 경영 효율성만 내세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국립예술단체 통합 사무처와 이사회 조직 관련 세부적인 사항은 국립예술단체들과 협의해 구체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용호성 1차관. 이상섭 기자

사실 정부가 이번 통합안을 만들면서 국립 오페라 극장을 중심으로 오페라, 발레, 오케스트라, 합창 무용 등을 운영하는 해외 유수의 문화계 사례를 참고했다. 업계에선 그러나 “하드웨어 없는 국립예술단체 통합”이라고 꼬집는다.

또 다른 국립예술단체 관계자는 “유럽처럼 전용 극장을 가진 뒤 극장 아래 단체들이 모이는 상황이 아니라 극장도 없는 상태에서 각 단체를 하나로 통합해 협업을 기대하는 실체 없는 추진”이라고 지적했다. 예술의전당에 상주하고 있는 5개 단체는 공연 때마다 민간 단체와 똑같이 대관 신청을 통해 예술의전당 공연장(오페라하우스, 콘서트홀, 토월극장) 무대에 선다.

특히 가장 큰 우려는 전문성과 고유성의 침해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추진은) 각 단체가 가진 고유의 특성과 전문성은 배제한 밀어붙이기식 통합”이라고 일갈, “각 단체의 예술적 전문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공통적으로 내놓고 있다. 문체부에선 그러나 사무처 기능의 통합인 만큼 전문성을 해칠 일은 없다고 강조한다.

다만 문체부의 5개 국립예술단체 통합안은 표면상 명분이 좋다. 행정업무의 일원화를 통해 그간 체계화되지 않았던 국립예술단체들의 경영과 행정 업무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단체 간 긴밀한 협업을 통한 예술성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고도 한다.

한 국립예술단체 관계자는 “각 단체의 조직이 아주 작아 경영 누수가 발생, 일정 부분 변화가 필요한 측면도 있다”며 “보다 전문적인 시스템 구축을 통해 운영의 효율성이 강화한다면 긍정적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과정에서 충분한 공론화가 이뤄지지 않은 데다 각 단체의 특성을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해 단체 통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통합안에 대한 각 단체의 입장은 미묘하게 엇갈리는 상황이다. 단체마다 처한 환경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단체는 통합 법인의 설립으로 (N분의 1을 통해) 예산을 지금보다 더 확보할 수 있어 보다 우수한 공연 레퍼토리를 구성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 그럼에도 공연계 관계자는 “진행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과정에 있어 구체적인 내용이 공유되지 않다 보니 (우리의 앞날을) 한 치 앞도 몰라 불안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문체부는 국립예술단체 통합에 대해 사무처 신설까지 이르면 4월, 늦어도 상반기에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체위 소속 의원들은 이날 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하고, 다음 달 5일 전체 회의에서 진위 파악에 나설 계획이다. 업계에선 일방적 추진이 아닌 공론화 과정을 가장 강조한다.

다수의 국립예술단체 관계자들은 “우선 5개 예술단체가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입장을 나누고 논의하는 자리를 가진 뒤, 각 단체와 각계 전문가, 문체부 관계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청회를 열어 현 상황을 다각도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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