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이 웬수” 52시간 예외에 상법까지…골든타임 놓칠까 애끓는 기업들

대내외 불확실성 속 ‘상법 족쇄’에 재계 반발
반도체 특별법은 표류, 규제 입법은 속도전
경제단체 부회장들 26일 국회 공동방문 계획
27일 본회의 상정 앞두고 마지막 설득 ‘총력’


지난해 11월21일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을 비롯한 주요기업 사장단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상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가 담긴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주요 기업 사장단 긴급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제공]


[헤럴드경제=김현일·한영대 기자]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이제 국회 본회의 문턱을 향하면서 재계의 불안감은 여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경제단체들은 작년부터 공동 건의서와 호소문 등을 쉴 새 없이 발표하고 기업 사장단 긴급 성명서까지 내며 국회를 설득해왔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 상정을 예고한 가운데 경제8단체(한국경제인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코스닥협회) 부회장들은 26일 직접 국회를 방문해 마지막 설득 작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재계는 저성장의 장기화 속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중국의 첨단산업 굴기로 전례없는 대내외 불확실성에 직면한 지금 국회의 ‘기업 옥죄기’ 움직임에 허탈하다는 입장이다.

각종 규제 입법보다 기업 살리기 법안이 필요한 상황에서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을 주 52시간 적용에서 제외하는 반도체 특별법은 표류하고, 오히려 상법 개정에 속도가 붙자 애꿎은 ‘골든타임’만 흘러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단독 처리한 상법 개정안은 주주가치가 훼손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이사에게 주주 보호의무를 추가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사가 충실 의무를 다해야 하는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고 상장회사의 전자 주주총회 도입을 의무화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기업들은 ‘상법 족쇄’까지 채워지면 주주소송에 시달릴 것을 우려한 이사회가 주요 의사결정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인수합병(M&A) 같은 중요한 투자 결정 등도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의 투자심리 위축은 곧 우리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연쇄적인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은 “화학이나 건설업종처럼 구조조정이 필요한 산업의 경우 사업 재편과 M&A에 나서야 하는데 주주들이 반대하면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과거 IMF 위기 때 정부 주도의 빅딜처럼 국가적인 사업 재편은 불가능해진다. 기업들의 투자 결정과 사업 재편에 큰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상법 개정안이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공격 증가를 야기할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송승혁 대한상공회의소 금융산업팀장은 “지난해 기준 경영권 분쟁을 벌인 기업들을 분석한 결과 중소기업 비중이 높았다. 만약 법안이 통과되면 중소기업들이 외국계 사모펀드 등의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상법 개정안이 명시하고 있는 ‘총 주주의 이익’이라는 표현을 두고도 모호함 때문에 큰 혼란을 낳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업의 주주가 대주주부터 소액주주, 사모펀드 등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이해관계가 다양한 주주들로 구성돼 있는데 총 주주의 이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불명확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대주주가 장기 투자재원 확보를 우선시하는 반면 소액주주는 일반적으로 배당금 확대 등 단기 이익을 더 중요시한다. 만약 이사가 대주주의 의견을 반영해 업무를 집행할 경우 이를 반대하는 소액주주로부터 법적 책임추궁을 받게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반대로 소액주주의 이익에 충실할 경우 장기적인 투자 집행이 어려워져 사업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송승혁 팀장은 “총 주주의 이익이란 표현 자체가 모호해 재판 때마다 정의가 달라질 수 있다”며 “기업들 사이에서는 판사가 주주의 이익을 결정하게 되는 만큼 ‘판사가 기업의 회장님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와 법원행정처도 이러한 모호함 때문에 상법 개정안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김석우 법무부 차관은 지난 1월 22일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에서 “총 주주라 했을 때 기준점을 어디에 둘 지 찾기가 어렵다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배형원 법원행정처장도 “총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되고 특정 주주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다양한 견해가 있고 일반조항 특성상 다양한 해석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이사가 부담하는 의무책임이나 주주의 구제수단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규정을 두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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