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버크셔’·더덕장어로 기력 충전
남원추어탕·다슬기해장국 등 일품
광한루원·김병종미술관 등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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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인 남원 서도역 인근 |
예로부터 건강미식은 산·강·들녘이 파란만장하게 조화를 이루고, 다양한 물산의 교류가 많은 곳에서 이뤄졌다.
남원은 백두대간 호남 정맥의 거점인 지리산이 굳센 정기로 굽어보고, 신라 이후 당상관이 이끌던 광역단체(남원경·남원도호부·남원부)의 중심지였기에 경제·문화·지방정치 교류가 활발하던 곳이었다.
지리산·교룡산·천마산·풍악산·대성산·약산 사이로, 섬진강·요천·남천·구원릉천·신흥천·궁동천이 대지를 적시며 남원 흑돼지·꿀·더덕에 지리산메뚜기쌀·섬진강쌀과 파프리카·다슬기는 물론 허리 힘 좋은 민물고기 등을 건강하게 키워준 고장이 남원이다.
서편제와 조응하는 국악 동편제와 성춘향과 이도령의 러브스토리의 고향인 남원이 흥과 멋을 넘어, 건강한 미식 백화점으로서 ‘맛’의 진면목까지 꺼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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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에서 열리는 국립민속국악원 단원들의 공연 |
웅장한 동편제의 고향답게 그간 남원은 ‘소리 자랑’은 했어도, ‘음식 자랑’은 하지 않았다. 청정 식재료를 바탕으로 오랜 전통을 전수받은 장인들의 솜씨가 건재한 데다, 청년 셰프·파티셰·바리스타의 스마트한 창의력과 마케팅이 더해지면서 얼마 전부터 남원은 ‘미식도시’로서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남원의 ‘K-버크셔’는 스페인이 경계할 만한 발효육 슬라이스 ‘K-하몽’을 빚어냈다. 남원추어탕은 여행자에게 한 그릇의 뚝배기만으로 강한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
판소리 ‘춘향가’의 한 구절처럼 ‘이리 오너라, 먹고 놀자’고 할 만한 곳이 바로 남원이다. 매년 2~3월 남원 미식체험 여행의 붐업이 시작되면서, 4월 말부터 미식 열차 패키지 ‘트레인스토랑’이 서울과 남원을 오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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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식당 더찹샵의 ‘K-하몽’ |
“스페인 비켜라” 남원에 있는 ‘고품질 하몽’
‘한국형 건강 돼지’인 K-버크셔를 개발한 농학박사 박화춘 선생은 남원시 운봉면 출신이다. 그는 20여년 전 낙향해 영국산 버크셔 순종에 한국에서 가장 건강한 돼지의 DNA를 결합, 흑돼지 K-버크셔를 육성했다. 네발 끝과 코, 꼬리 끝만 흰색이라 생김새도 매력적이다.
남원 흑돼지는 치밀한 연구개발로 탄생되어 로스하면 잡내 없이 담백하고 고소하며, 쫀득하고 쫄깃한 식감으로 국내 최고 한돈구이 맛을 선사한다.
켄싱턴리조트에서 요천을 건너면 쌍교동 맛집 거리가 있다. 그중 소문난 오돌뼈에서는 독특한 식감의 양념오돌갈비, 쫄깃한 비계맛이 특징인 덜미살 등 다양한 부위를 내어놓는다. 일반 한돈에서 맛보기 힘든 흑돼지 덜미살은 부드러운 식감에 진한 풍미로 돼지고기 요리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준다.
K-버크셔의 놀라운 매력은 K-하몽에 있다. 수개월 발효한 돼지고기를 샤퀴테리(햄,소시지,하몽 등 육가공품을 뜻하는 프랑스어)라 부른다. 지리산 자락 운봉면 동편제 마을에 위치한 더찹샵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흑돼지 전문 샤퀴테리아(육가공장)다.
더찹샵과 1만3000두를 키우는 지리산 농장은 박화춘 박사의 두 아들, 자연·정원 씨가 각각 운영중이다. “아버지가 개발하고 동생이 키운 돼지, 형이 맛있게 공급한다”고 박자연 더찹샵 대표는 정리했다. 더찹샵에서는 K-하몽 등을 여행자들이 구입하고, 소시지·살라미 제조 체험을 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넓적다리 하몽을 비롯해 생햄 잠봉, 살라미, 초리조, 소시송 등 다양한 샤퀴테리를 만들어 낸다. 신세계, 매일유업, 무인양품, 조선호텔, 하얏트호텔 등에 납품하고, 홍콩 등지에 수출한다.
K-하몽은 스페인의 그것보다 고소하고 염도는 낮으며, K-살라미는 피스타치오를 넣고 좀더 두툼하게 만들어, 씹는 식감은 물론 견과류와 풍미도 조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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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식당 청룡가의 ‘섬진강 메기매운탕’ |
추어탕·더덕장어·메기탕 등으로 ‘원기 충전’
서울, 부산, 대전, 원주 전국 곳곳에 남원추어탕 간판이 있는 것은 남원이 추어탕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남원에 있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오가는 민물고기는 전국 최고의 남원추어탕을 빚어냈다. 지리산 맑은 물 머금은 계단식 논 역시 건강한 미꾸리의 터전이다.
미꾸리를 갈아 된장을 풀고 들깻가루를 넣은 육수에 아삭한 시래기를 듬뿍 넣고 팔팔 끓여내는 것이 남원식 추어탕이다. 추어탕의 경우 도심 요천변에 커다란 미꾸라지 캐릭터를 세워놓은 전문 식당가가 있다. 산골 구석구석에서도 추어탕을 만날 수 있다.
도심 샐러리맨들이 즐겨찾는 죽항동 황토식당의 추어탕은 진국에 시래기를 가득 넣어 뻑뻑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국물이 모자라면 더 주니 후한 인심이 맛을 더한다.
남원 식정동에는 더덕장어 거리가 있다. 소금구이나 양념구이와는 다르다. 고추장 베이스 소스 장어를 돌판에 구워내고 그 위에 생더덕을 한가득 썰어 덮어준다. 부드럽고 기름진 장어맛을 싱싱한 생더덕채가 잡아준다.
요천변에 청룡집, 청룡가, 해용집, 삼포가든 등 노포들이 ‘장어요리 아케이드’를 이룬다. 청룡집은 부드러운 양념맛, 해용집은 맵고 칼칼한 맛으로 유명하다.
청룡집의 원조 플래그쉽 메뉴인 메기매운탕은 탱글탱글 육질이 매콤 양념에 버무려져 이른 봄 온기를 불어넣는다. 깻가루와 된장으로 맛을 낸 국물에 우거지와 시래기를 듬뿍 넣는다. 팔팔 끓는 소리 경쾌하고, 목 넘김 뒤엔 “시원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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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카페 노슈가의 ‘현미쌀빵’ |
‘MZ감성 물씬’ 남원에서 즐기는 ‘빵지순례’
다슬기탕은 남원산이 순도 100% 자연산이다. 올갱이(충북), 골부리(안동), 고디(대구), 대사리(전남)로 불리는 다슬기는 간 해독성분이 있어, 탕으로 먹으면 해장에 그만이다.
부추를 곁들이는 등 다양한 요리법이 있지만, 남원식은 통통한 다슬기를 맑게 끓여내는 방식, 아욱을 넣어 다슬기와 조화를 도모하는 방식, 두가지가 있다.
남원 금동의 맑은뜰에는 이 같은 다슬기탕 2종 외에 다슬기전, 장조림, 다슬기 닭백숙, 다슬기 오리전골 등도 맛볼 수 있다.
동서고금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베이커리도 남원에 참 많다. 남원의 베이커리카페에서 전문 파티셰들이 직접 만든 빵을 향긋한 차와 함께 맛보며 웨스턴 스타일의 여유를 즐긴다.
농협창고 건물을 현대식으로 리뉴얼해 베이커리 카페로 변신한 카페 노슈가는 2023년 행정안전부 농촌살리기 공모사업으로 조성한 곳으로, 직접 구워 만드는 다양한 빵맛이 좋아 입소문이 번지고 있다.
속편한 건강을 추구한다는 뜻에서 설탕을 쓰지 않는다는 철학은 상호에 대놓고 묻어난다. 쌀스틱빵, 현미초콜릿빵, 소금빵, 마들렌, 쌀식빵 등 다양한 빵과 함께 커피, 차, 에이드, 주스 등을 마실 수 있다.
떠날 때 들르면 좋은 남원역 인근 카페미드슬로프는 아트막한 구릉지에 꼭대기에 자리 잡아, 가까이는 도시와 전원 풍경을, 멀리는 지리산을 구경할수 있는 곳이다. 근사한 통유리 건물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있고, 앞마당엔 잔디밭 야외 테이블이 배치돼 있다.
실내에서든 실외에서든 커피, 차, 백향과(패션프루트) 에이드, 젤라토 등 다양한 음료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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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요천 벚꽃 길의 야경 |
‘천국 형상화’ 광한루원·‘드라마 촬영’ 서도역
남원에는 전통문화예술과 모던 아트가 공존한다. 국립민속국악원, 우주를 형상화한 국내 대표정원 광한루원이 헤리티지를 담당하고, 어린이·청년 예술가도 키우는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과 지리산 허브밸리가 모던아트를 책임진다.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에서는 ‘여행’을 테마로 한 ‘낯익은 도시, 낯선 이야기’ 특별전이 오는 4월 13일까지 열리며. 이곳에 있는 ‘미술관 안(미안)에 있고, 맛있어서 미안하다’는 미안카페에서는 도서관 같이 꾸민 다방에서 남원식·서양식 디저트와 음료를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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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몽심재 고택의 나무에 봄을 맞아 새순이 돋고 있다. |
이 밖에 ‘미스터 션샤인’ 등-드라마·영화 단골 촬영지 서도역, 지리산 뱀사골과 다음달부터 개방하는 청령치, 개성 넘치는 조선 후기 건축물 몽심재 고택, 신라 이후 군사요새였던 교룡산성, 근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혼불문학관, 요즘 생활상을 엿보는 춘향골 공설시장 등 ‘느낌이 있는’ 여행지들이 남원에 많다.
청사초롱 불 밝힌 요천벚꽃길은 사시사철 수려한 야경을 뽐내는데, 다가오는 봄은 특히 금상첨화다. 남원 미식 식후경하기에 최적의 산책길이다.
남원=함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