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가운 대신 나비넥타이 차림, ‘서울대 의사’였어?…의사들의 가슴 뭉클한 변신

곽재건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흉부외과 교수가 23일 제11회 빛의소리 나눔콘서트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고 있다. [한미약품 제공]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오늘만큼은 흰 가운을 벗고, 흰 나비넥타이를 맸다. 청진기 대신 악기를 잡았다. 36년 전통의 같은 학부 동아리였다는 인연으로 모인 서울의대 출신 의사들. 두 달여간 바쁜 시간을 쪼개 연습한 무대로 2시간을 가득 메웠다.

의사들이 이렇게 시간을 할애하며 직접 악기까지 든 이유가 있다. 이 무대가 특별한 나눔의 콘서트이기 때문이다. 이 콘서트로 조성된 기금은 장애어린이의 지원금으로 쓰인다. 의술을 넘어 예술적 재능까지 세상과 나누고픈 의사들의 마음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이 오케스트라의 악장은 곽재건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흉부외과 교수(49·서울의대 55회 졸업)다. 그는 지난 23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 ‘제11회 빛의소리 나눔콘서트’ 현장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나 “단순히 개개인의 취미 활동, 여가 활동의 의미를 넘어 음악을 통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 장애가 있는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전달하는 뜻깊은 기회”라고 밝혔다.

이날 무대는 1989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관현악단(SNUMO)이 창단한 메디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MPO)이 주인공이다. 곽 교수는 현재 악장을 맡고 있다. 그는 MPO와 관련, “학창 시절 열심히 했던 오케스트라 동아리 활동을 잊지 못하고 졸업 후 의사가 된 후에도 바쁜 시간을 쪼개어서 모여 연습하고, 간헐적으로 연주회를 해왔다”고 설명했다.

7살 때 처음 바이올린을 잡았다는 곽 교수는 서울대병원에서 전임의 시절을 보내던 2007년부터 MPO에 참여했다. 그는 “병원 일, 학교 일로 정신없긴 하지만, 워낙 학창 시절 열심히 임했던 동아리였고, 음악도 무척 좋아하는 터라 큰 망설임 없이 MPO의 악장과 총무를 맡기로 했다”고 말했다.

곽재건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흉부외과 교수. 최은지 기자


공연을 한 시간여 앞둔 오후 2시쯤. 관객들이 속속 콘서트홀로 모였다. 대기실은 악기를 점검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로 분주했다. 곽 교수는 이날 지휘를 맡은 강한결 한국예술종합학교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마지막으로 공연을 점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바쁜 진료 일정과 연구 활동 중에 오케스트라를 연습하는 것은 녹록하지 않았다. 집에서는 이웃집에 피해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소음기를 쓰며 연습했다. 콘서트 준비는 6개월 전부터 시작됐고, 본격적인 합주는 두 달 전부터 주말마다 이뤄졌다.

올해는 진료 때문에 악기와 거리를 두었던 선후배들이 새롭게 MPO에 합류했다. 곽 교수의 연락에 졸업 동기 2명이 새롭게 합류했다. 70대의 고참 선배는 연습을 위해 매 주말마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함께 연습하며 열정으로 가득했던 학부 시절로 돌아가곤 했다.

곽 교수는 “시기는 달랐지만, 학창 시절 서울의대 교향악단원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이전까지 잘 몰랐던 선후배님들과 금세 친해지고 서로의 마음에 공감해 가는 과정이 신기했다”며 “학창 시절 그 친구들과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던 생각이 나 가슴이 뭉클했고, 이번 연주회 연습을 하다가 동기들과 서로 눈이 마주치면 웃음도 짓는 것이 20년, 30년 전과 똑같아 재미도 있었다”고 했다.

메디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MPO)가 23일 제11회 빛의소리 나눔콘서트 공연을 마치고 무대인사를 하고 있다. 최은지 기자.


이들이 오케스트라 무대를 준비하는 데 열정을 쏟은 것은 단순히 취미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MPO는 2013년부터는 한미약품과 함께 ‘음악을 통한 사회 공헌’을 목표로 자선 공연 형식으로 ‘빛의소리 나눔콘서트’를 개최해 왔다.

빛의소리 나눔콘서트를 통해 조성된 희망기금은 장애어린이들의 예술교육을 위한 지원금으로 사용된다.

후원을 받는 한울림연주단과 어울림단이 이날 직접 무대에 서서 무대를 빛냈다. 발달장애인 단원으로 구성된 실로폰 합주단인 ‘한울림연주단’이 특별공연을 펼쳤고, 발달장애인 청소년으로 구성된 클래식 합주단 ‘어울림단’이 MPO이 협연했다.

곽 교수는 “개개인의 취미 활동을 넘어서 몸이 불편한 어린이, 청소년과 합주도 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MPO 모임에 더 큰 의미를 주고 있다”며 “매년 몸이 불편한 청소년들이 악기를 다루는 모습을 바라보며 많은 것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MPO는 첼리스트 이유민과 생상스의 첼로 협주곡 제1번 A단조, 작품번호 33, 첼로 수석인 이철민 단원(44회 졸업생)의 솔로와 피아노 듀엣이 인상적이었던 주페의 오페라타 ‘시인과 농부 서곡’ 무대를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선보인 베토벤의 교향곡 제1번 C장조, 작품번호 21은 MPO 선배 단원들이 학창 시절에 무대에 올렸던 곡을 후배들과 함께 연주해 더욱 격정적인 무대로 꾸며졌다.

2시간의 공연이 끝나자 500명이 넘는 관객들은 뜨거운 함성을 보냈고, 단원들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곽 교수는 “빛의소리 나눔콘서트는 MPO에게 큰 의미와 자부심을 안겨주고, 음악을 통한 나눔의 가치를 실현하는 원동력”이라며 “올해는 저희 모임의 가족과 같은 연주단원들도 힘을 보태 주셨고, 현재 서울의대 관현악단의 재학생 후배들도 함께 더욱 풍성한 소리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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