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엔 허풍인 줄 알았는데”…中 D램 몬스터, 이젠 韓美 ‘3강구도’에 도전장 [차이나는 칩①-CXMT]

<편집자주> 중국 정부는 2014년 ‘반도체산업발전추진요강’을 발표, 관련 투자펀드를 조성함으로써 반도체 굴기(起)를 본격화했다. 하지만 2022년에는 당시 중국 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우한훙신반도체·취안신집적회로가 23억달러(약 3조3000억원)의 투자를 받고서도 단 한 개의 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하는 등 굴욕의 순간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미국이 화웨이를 대상으로 반도체 수출을 금지하자 중국 정부가 ‘스푸트니크 모멘트(Sputnik moment)’를 맞게 됐고, 이를 계기로 기술 지배를 향한 추구에 더 불을 당기게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한 후 미국이 우주기술에 뒤쳐졌다는 위기감에 전폭지원에 나섰던 것처럼 중국도 수출 금지 충격이 되레 자극이 돼 반도체 기술을 빠르게 꽃 피우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지속 맺게 되면서 최근 조사(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서는 대부분의 반도체 기술 부문에서 중국이 한국을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헤럴드경제는 ‘차이나는 칩’을 통해 우리나라를 맹렬히 추격하고 있는 중국 반도체 기업들을 집중 분석, 개별 회사들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다시 한번 초격차를 향해 뛰고 있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을 독려하고자 한다.

중국 D램 괴물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
정부 자금력 힘입어 무섭게 성장
범용 D램 덤핑 전략으로 시장 점유율 야금야금
HBM 등 고부가가치 첨단 D램도 노린다


[챗GPT와 망고보드를 이용해 제작함]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중국 업체들이 상업용 D램을 대량양산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2019년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가 메모리 반도체인 D램 양산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을 때 한국 반도체 업계는 ‘허풍’이라며 무시했다. “실물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실체에 대해 의심했다. 낸드플래시 보다 내부 구조가 복잡한 D램 기술은 중국에겐 난공불락으로 여겨졌고, 중국의 상업용 D램 대량 양산은 불가능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포기하지 않았다.

5년이 지난 지금 CXMT는 D램 시장의 ‘삼강구도’ 체제를 위협하는 4위 사업자로 성장했다. 정부의 천문학적인 자금 지원과 라이센스 계약, 엄청난 규모의 인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D램 괴물’로 커버린 중국 CXMT의 역사와 경쟁력을 분석해봤다.

정부 자금력과 칭화대 브레인의 합작으로 탄생=2016년 설립된 CXMT는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시가 주이밍 회장에게 설립을 제안하며 탄생됐다. 주이밍 회장은 당시 중국 내 최대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회사인 자오이창신의 창립자였다.

주 회장은 칭화대 물리학과 졸업생이다. 뉴욕 주립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모놀리식파워시스템 등 미국 반도체 기업에서 4년간 일하며 첨단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2005년 귀국해 자오이창신을 설립했다. 경영 수완이 뛰어났던 그는 치열한 중국 팹리스 시장 경쟁에서 자오이창신을 1, 2위 기업으로 키웠다.

주 회장은 D램 기술에 대한 열망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때마침 중국 정부가 ‘중국 제조 2025’를 발표하며 반도체 분야에 대해 대대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CXMT 설립 자금인 180억위안(약 3조5000억원) 중 허페이시시가 4분의 3을 부담하고, 나머지를 자오이창신이 냈다. 이후 중국 정부가 10년 동안 조성한 6870억 위안(약 135조원) 규모의 ‘중국 국가반도체산업 투자펀드’(빅펀드)도 CXMT에 일부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CXMT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뛰어난 기술·경영 전문가의 합작으로 탄생했다.

CXMT


자체 생산 역량 전무했지만…‘돈’으로 기술 사들이며 성장=당시 중국에게 D램 기술은 완전히 생소한 분야였다. 자체 생산 역량이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D램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체의 70%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분야였다. 30년간 이어진 한국의 ‘메모리 1등’ 타이틀이 너무나 공고해 파고들 틈이 없었던 것이다.

이에 중국은 돈으로 기술을 사들이며 난관을 해결했다. 2019년 독일 키몬다, 2020년 미국 램버스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D램 특허를 확보했다. 자신감을 얻은 CXMT는 이때부터 칼을 갈며 D램 대량양산을 기술 발전에 총력을 가했다.

2019년 CXMT는 D램 반도체 양산을 공식 선언하면서 “연내 8기가비트(Gb) DDR(더블데이터레이트)4와 LPDDR(저전력DDR)4 12만개를 양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국 반도체 업계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 DDR4는 당시 기준으로 최신 D램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들리던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실체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양산 성공을 둘러싼 시각은 엇갈렸다. 시장에 판매되고 있는 제품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허풍’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공정 기술 문제로 양산이 지연됐다거나, 양산은 성공했으나 낮은 수율로 시장에 출시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거나, 비밀리에 테스트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등 다양한 추측이 나왔다. 그만큼 CXMT의 기술에 대한 신뢰도는 높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언한 것보다 조금 지연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CXMT는 2020년 하반기 DDR4, LPDDR4를 시장에 내놓으며 업계를 놀라게 했다. 단순 블러핑이 아니라, 중국 반도체 굴기의 실체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CXMT DDR4 [CXMT 홈페이지]


설립 9년만 4위 ‘우뚝’…저가공세로 삼성·SK 위협 =CXMT는 현재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으로 이어지는 D램 시장의 삼강구도를 무너뜨릴 수 있는 ‘괴물’로 성장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글로벌 D램 시장에서 CXMT 점유율이 5%까지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2020년만 해도 0%에 가까웠지만, 5년 만에 급속도로 성장한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CXMT의 D램 시장 점유율이 올해 말 12%까지 늘어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CXMT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자국 시장을 기반으로 생산량을 늘리며 물량 공세를 펼치며 성장했다. DDR4, LPDDR4를 처음 내놨을 때는 수율이 낮아 생산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였지만,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은 CXMT는 이를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생산 경험이 쌓이면서 수율은 자연스럽게 올라갔고, 공급 과잉에도 불구하고 가격 덤핑 전략을 이어가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기존 강자들의 수익성을 낮췄다.

노무라는 CXMT가 DDR4 생산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면서, 웨이퍼 생산능력이 2022년 매월 7만장 수준에서 지난해 말 기준 매월 20만장으로 늘었다고 분석했다. 이는 전 세계 D램 시장의 15% 수준이다.

정창원 노무라 아시아리서치 공동 대표는 “CXMT의 부상으로 한국 반도체업체들은 저가 시장에서 중국 제품이 넘쳐나는 새로운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며 “이는 기술적 우위가 아니라 물량의 문제이며, 특히 삼성이 공급 과잉과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타격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챗GPT를 이용해 제작]


범용 발판 삼아 HBM·최첨단 D램도 노린다=문제는 CXMT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포함한 고부가가치 D램 기술도 넘보고 있다는 점이다. 범용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익성을 위협하며 시간을 버는 동시에 차세대 D램 R&D에 집중한 결과다.

CXMT는 지난해 LPDDR5, DDR5 양산에 돌입했다. 물론 수율은 높지 않지만, 기술 발전 속도가 매우 빨라 국내 반도체 업계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중국이 DDR4에서 한국을 추격하는 데 6년이 걸렸지만 DDR5는 4년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CXM는 이미 HBM2 및 HBM2E 제품도 양산하고 있다. 딥시크 등 가성비 AI를 공략하며 HBM2 공장 확대도 계획 중이다. HBM3 개발에도 매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최정동 테크인사이츠 박사는 “CXMT는 G1 기술 기반으로 HBM2를 개발해 화웨이에 공급하기 위한 테스트를 마쳤다”며 “16나노급 D램 기술인 G4로 HBM3 정도는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고, 내년 초 개발 완료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CXMT가 10나노급 4세대(1a)와 5세대(1b) 공정도 현재 개발 중이며, 빠른 속도로 양산까지 성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마이크론도 극자외선(EUV) 장비 없이 1a와 1b 공정 개발에 성공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CXMT의 성장세는 내년에 다소 주춤할 전망이다. 트렌드포스는 최근 CXMT의 2026년 캐파(생산능력)와 공급 비트그로스(Supply Bit Growth) 전망치를 각각 하향 조정했다. 미국 정부의 대중 규제가 심화되면서 반도체 장비 반입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시간을 번 셈이어서 중국과의 좁혀진 격차를 다시 빠르게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기술 발전 속도가 무섭게 빨라지는 가운데,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는 한국 기업에겐 절호의 기회”라며 “HBM 기술뿐 아니라 차세대 D램 연구 개발에 총력을 다해 반드시 초격차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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