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vs 유럽 분열 이 정도였어?…“이라크 전쟁후 가장 심각”

안보리, ‘러 침략’ 뺀 미국 제안 우크라전쟁 결의안 채택

‘미국우방’ 영국·프랑스 기권…러·중국은 미국에 동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례적 상황 연출

독일 총리 후보 “안보 미국에 의존 끝내야” 자강 강조

외신 “우크라전 종전 추진에 미국·유럽 단합 산산조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EPA]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을 둘러싸고 미국과 유럽 국가들 간 분열이 격화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책임 추궁 없이 신속한 전쟁 종결을 촉구하는 별도 내용의 결의안 밀어붙였으며 유엔 안정보장이사회(안보리)는 이를 채택했다. 최근 조기 총선을 치른 독일에서는 미국 의존도가 높은 유럽의 안보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신속히 끝내려고 하면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설전이 고조되는 등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미국과 서방의 3년간의 단합이 산산조각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러시아 규탄 결의안 반대…‘러 침략’ 빠진 결의안 별도 제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원국들이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 및 안보 유지 회의에 참석한 모습. AFP]

24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유엔 뉴욕 본부에서 열린 회의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미국 주도로 제출된 결의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해 찬성 10표, 반대 0표, 기권 5표로 가결처리 했다.

이 결의안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에 대한 책임 추궁 없이 신속한 전쟁 종결을 촉구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담고 있다.

해당 결의안에는 영국 등 유럽 국가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러시아의 침략은 언급하지 않으면서 “분쟁의 신속한 종결”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항구적 평화”를 촉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의안의 수정안이 잇달아 부결된 뒤 이뤄진 표결에서 찬성 과반에다가 5개 상임이사국의 반대가 한 표도 없어 가결됐다. 유럽의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해당 결의안에 기권 의사를 밝혔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주년을 맞아 실시된 이번 투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둘러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주요 동맹국 간의 분열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AP통신도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촉구하는 세 가지 유엔 결의안에 대한 투표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러시아의 책임을 묻지 않음으로써 유럽 동맹국들과 분열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결의안은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 정책 뒤집기와 러시아에 대한 유화적인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며 “반면 조 바이든 전 행정부는 전쟁 내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한 유엔의 노력을 주도했다”고 평가했다.

국제분쟁 전문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유엔 전문가 리처드 고완은 미국과 유럽 국가들간의 분열에 대해 “이라크 전쟁 이후 유엔의 서방 강대국들 사이에서 나타난 가장 큰 분열”이라고 평가했다.

독일총리 유력 메르츠 “안보체계 개편해 미국 의존 끝내야”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는 24일 베를린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AP]

최근 조기 총선을 치른 독일에서도 미국과의 관계에 잡음을 예고하면서 미국과 동맹국과의 분열이 심화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러시아와 밀착하는 것은 물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과 유럽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 것에 대한 영향이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는 24일 베를린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럽은 정말로 자정까지 5분 남았다”며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서 ‘미국 단독주의’(America alone)로 나아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에 대응해 유럽의 자체 방어 능력을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메르츠 대표는 “우리가 미국에서 수신하고 있는 모든 신호들은 유럽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며 “‘미국 우선’을 넘어 ‘미국 홀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세력이 득세한다면 (유럽은)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메르츠 대표는 지난 23일 총선 당일 출구조사 발표 직후 인터뷰에서 “유럽을 강하게 만들어 미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에 의존했던 독일의 안보 체계를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냉전 시대에 미국 주도로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유럽을 지켰던 나토의 집단 방어 체계가 향후 수개월 동안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2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독일 하원)이 있는 라이히슈타크 건물의 큐폴라 앞에 독일 국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AFP]

영국 BBC는 메르츠 대표의 이 같은 입장과 관련해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미국과 유럽 간 전통적 동맹의 가치를 중시하는 열렬한 ‘대서양주의자’인 메르츠 대표의 이 같은 태도는 불과 몇달 전만 하더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지각변동’ 급의 변화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을 계기로 2차 대전 이래 80년 동안 이어 온 미국과 유럽의 관계가 유례없는 시험대에 든 현실이 반영돼 있다고 짚었다.

WP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1945년 이후 유럽에서 처음으로 벌어진 대규모 전쟁으로, 유럽 국가들로 하여금 안보를 재고할 여지를 줬다”면서도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하의 미국 리더십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미국에 대한 유럽이 안보 의존도를 두고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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